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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Nov 27. 2019

내가 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산 적이 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디든 내 한 몸 뉘일 곳을 찾아야 했다.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적당한 동네를 검색하고 돈이 맞는 집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한번 만나 방과 룸메이트 얼굴을 확인하고 두 번째 만남부터 우리는 같이 살았다. 나는 옷상자만 들고 그들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싶지만 그때는 방법을 그것밖에 몰랐다. 승용차 트렁크에 다 실리는 단출한 살림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기며 세 명의 룸메이트 혹은 하우스메이트를 만났다.



시작은 신림동 2층짜리 주택(에 달린 방 한 칸)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갖가지 살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단칸방에서 두 살 위 언니와 같이 살았다. 집주인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잤다. 언니는 주말마다 걸레를 들고 침대 밑에 들어가 먼지를 닦아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침대는 들어갈 때는 어찌어찌 들어가지만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만큼 낮았다. 침대 밑에 들어간 언니는 걸레질을 할 때마다 으으으으으 소리를 냈다. 그 힘든 몸부림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반복했다. 내가 청소할 겨를도 없이 방은 항상 반짝반짝했다.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일 년쯤 됐을 때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언니는 그 정갈함을 나에게도 요구했다. 언니는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쓰고 나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법까지 정해주며 지켜 주길 당부했다.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규칙들이었다. 내 물건들이 언니 방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생각에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게 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니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건대에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집주인은 나보다 어린 동생이었는데 집에서 큰돈을 대줘서 전세로 집을 얻었다. 집주인은 큰 방을 쓰고 나는 책상도 들어가기 어려운 작은 방에 알록달록 어지러운 상자들을 쌓아 놓고 살았다. 그래도 나만의 방이 생겼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볕이 잘 들어 주말에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한 집이었다. 우리는 거실과 주방, 욕실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에서 생활했다. 동생은 스케줄에 따라 출퇴근이 들쭉날쭉했기에 둘은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세금을 나눠 낼 때면 고지서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편지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내야 할 금액을 적어 문 앞에 꽂아 두는 다정한 동생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칫솔이 축축했다. 설마? 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에 새 칫솔을 꺼내 양치질을 하고 출근을 했다.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거실 빨래대에 널어 둔 내 팬티가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하우스 메이트의 빨래 바구니에서 내 팬티를 발견했다. 나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그 집을 나왔다. 집을 나가는 이유에 대해 하우스메이트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새로 이사 간 방은 내 짐을 상자 밖으로 모두 꺼내 놓고도 이불을 펼 자리가 있을 만큼 넓었다. 그 방을 현모양처가 꿈인 친구와 같이 썼다. 내가 갖고 온 상자를 방 가운데 놓아두고 암묵적인 경계선이 지어졌다. 룸메이트는 창문 쪽을 썼고 나는 출입구가 있는 쪽에 짐을 풀었다. 친구는 퇴근 후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에 있는 물건까지 모두 꺼내 제자리에 정리해 놓는 깔끔한 친구였다. 속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방을 닦으면서도 상자가 놓여 있는 경계선까지만 청소를 했다. 이렇게 철저하지만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언니 자?” 하면서 말을 걸어오던 따뜻한 동생이었다.


방 넓이만큼 창도 넓어 환기도 잘 되는 좋은 방이었는데 나 혼자 답답해했다. 나는 그 방에서 단 한 번도 혼자 있어본 적이 없다. 퇴근할 때 골목길에서 환하게 불이 켜진 내 방 창문을 보면 차라리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도 없나. 좀 나가 놀지.라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쉬며 방문을 열었다. 가끔은 집에서 광광 음악을 틀어 놓고 싶기도 했는데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밤늦도록 책을 보고 싶었지만 동생이 푸덕거리며 이불을 펴면 나는 슬슬 형광등을 끌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밖으로 나도는 삶을 살았다. 룸메이트는 언제 오냐는 메시지도 자주 보냈는데 그게 나를 더욱 숨 막히게 했다. 누군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안도감에 부응해야 하는 게 힘겨웠다. 우리는 끝내 서로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웃으며 지내다가 헤어졌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작정하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더라도 한쪽에서는 불편하고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 부모 밑에서 나고 몇십 년을 같이 살아온 자매끼리도 맞지 않아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데, 내내 따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집에 모여 살기로 마음먹은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같이 사는 사이에서는 너무 과해서도 안 되고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된다. 청결해야 하지만 옆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고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숨 막히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늘 내 기준에 맞추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게 된다.


혼자 있는 방에 가만히 앉아 지난날 같이 살았던 친구들과 그 방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때는 온통 내 감정에 휩싸여 돌보지 못했던 그들의 인내심과 내 단점들, 내가 그들에게 뿌리고 다녔을 부정적인 말과 표정들이 떠올랐다. 신림동 언니는 참고 참고 참다가 나에게 규칙을 정해주며 잘 지내보자 메세지를 보냈을 것이다. 건대 동생은 같이 사는 사람끼리 칫솔 바꿔 쓰는 정도로 너무 민감하게 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현모양처 동생이 밤마다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던 게 내 밤길이 걱정되서 일수도 있지만 밤늦게 들어와 부스럭거리는 통에 계속 잠을 설쳤기 때문일수도 있다. 이 마음들이 이제서야 보인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그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와 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한 두 가지였을까. 누군가 말만 시켜 주면 2박 3일을 읊고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입을 꼭 다물고 참고 있을 뿐.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는 내 이야기를 씹어댔을지도 모른다. 룸메이트의 안주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을 참게 했던 것이 돈이었든 외로움이었든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또 어떤 어려움이었든 간에 그들은 나를 참아주었다. 그 너른 마음과 견딤이 새삼 고마워진다. 그리고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들을 돌려주고 싶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자부할지 몰라도 관계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다. 반짝반짝 청소를 잘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숨 막힐 수 있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한 사람도 장단이 맞지 않는 사람에겐 개념 없어 보일 수 있다. 어딘가 조금씩 모자라고 넘치는 사람들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모여 산다. 내가 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마음과 표정으로 살아왔는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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