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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드헌터 Ashaj May 20. 2017

혼자 산다는 것

나 혼자 산다


올해로 자취 13년 차.


부산 토박이 소녀가 서울로 유학(?) 오게 되면서 시작된 홀로서기,

그땐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도 모르고 처음 서울 가는 기차를 타던 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더랬다.


"엄마, 한 달에 한 번은 꼭 올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터벅터벅 홀로 부산역으로 향하던 그 날, 나는 그 말을 남기고서 집을 떠난 후 3달 만에야 다시 집에 올 수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서울-부산은 생각보다 아주 멀고, 시간과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집에 올 생각도 하지 못했던 탓도 있음은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홀로서기는 때로는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방황했던 여정을 지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은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모든 1인 가구에 연민을 가진다.


어쩌면 그들만이 나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삶과 혼자 사는 삶은 180도 모든 것이 다르다.


첫째, 누구도 집안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코딱지만 한 원룸에 사는 1인 가구 주제에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쩌다 하기 싫어 미뤄두어도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므로 결국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에조차 적응하는데 수년은 걸렸던 것 같다. 이불 빨래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줘야 한다는 것도, 습도가 높은 날은 환기를 따로 시키지 않으면 방에 곰팡이가 필 수 있다는 것도, 냉장고에 반찬이 그렇게 빨리 상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누리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정돈되고 청결한 환경도 내가 가꾸지 않으면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는 것도. 지금이야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분리수거 등의 일련의 집안일이 각각의 우선순위와 스케줄을 가지고 돌아가지만, 가끔은 우렁각시라도 와서 나의 공간을 깨끗하게 해줬으면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둘째, 매 끼니를 때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루가 24시간, 그중 8시간을 수면시간이라 생각하면 남는 시간은 16시간. 하루 3끼를 먹으려면 5시간에 한 끼씩은 먹어야 한다. 그 시간이 어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가끔은 신기할 지경이다. 아침은 매일 선식과 과일로 간단히 챙겨 먹고 점심은 회사 식당에서 해결한다 하더라도, 저녁 한 끼 집밥을 먹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사실 이십 대 중반까지는 건강 생각 없이 편의점 음식, 길거리 음식, 인스턴트 음식 등 그냥 아무거나 먹었었는데, 몸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어서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내 체력 저하로 돌아왔다. 그래서 최대한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엄마처럼 후다닥 밑반찬을 해내는 일은 아직까지도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나에게 '집밥'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특별한 의식처럼 중요한 일이어서 '일주일에 1번은 예쁘게 밥 차려먹기'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지만, 어쩐지 매번 식단이 된장찌개 아니면 김치찌개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셋째, 내가 채워야 할 시간이 너무 많다.


어쩌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 오면 이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바쁘게 시간을 보내려고 이런저런 스케줄을 만들어 놓는 편이지만,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한지라 매일을 그렇게 밖으로 나돌아 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주말은 좀 쉬어야지.'하고 하루를 텅 비워놓으면, 집안일도 하고, 고양이들도 케어해주고, 밥 해 먹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더라도 시간이 남는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1편 보고 음악도 듣고, 이런저런 것들로 시간을 채우고 나면 비로소 밤이 온다. 그래서 연애가 끝나면 텅 빈 주말이 가장 두려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 시간을 함께 좀 써주었으면'하는 마음이 들 때, 나는 가장 외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아, 요즘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탓에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넷째, 내가 돈 쓰는 기계가 된 것만 같다.


혼자 사는 데도 돈이 정말 정말 많이 든다.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게다가 서울 집값은 또 어찌나 비싼 지, 집을 사기는커녕 은행의 힘을 빌어 전세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이자가 그렇게 높지는 않은 탓에 은행에 월세 내는 느낌으로 살고는 있지만) 생필품은 왜 꼭 한꺼번에 동이 나는지, 마트에 한 번 갔다 하면 10만 원은 금세 넘는 것 같다. 게다가 공과금, 통신료처럼 정기적으로 나가는 비용도 쌓이면 만만치 않다. 아낀다고 아껴도 이것저것 쓰고 나면 저축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시집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족과 함께 사는 삶과 지금의 삶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 모든 역경(?)을 견뎌내어 얻을 수 있는 '오롯한 나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공간을 챙기고 꾸리는 시간으로부터 오는 충만함, 나의 안식처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평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완벽한 자유로움.


나를 위한 오롯한 나의 시간.


아마도 몇 년 후(?)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100%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평생 어려울지도 모른다. 잠못이루던 새벽의 고요와 누구라도 곁에 있어줬으면 하던 간절한 시간들조차도, 그립고 그리운 젊은 날의 특권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1인 가구 자취인들이 있다면, 이렇게 응원을 보내본다.

 

"지금 이 시간도 나중에는 사무치게 그리워질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서도 잘 살아내야 하니까,


오롯한 나의 시간을 100% 나다운 시간으로 채워봅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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