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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Oct 14. 2022

내려가는 길

내려가는 길



주말에 넷플릭스, 그 사이사이 유튜브를 들여다보았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의 SNS를 생각없이 보는 듯 안 보는 듯 훑어내렸다. 그러다 내심 가책이 들어 더는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지 말고, 하며 겨우겨우 책을 펼쳤다. 책에는 무언가 긴 것들이 있는데 긴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와 시간이 도대체 생기지 않았다. 허전하고 헛헛하고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유난히 커 보였던 주말, 세 사람의 소식이 전해졌다. 


로저 페더러, 2003년부터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총 20번의 국제오픈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 테니스 장인이 은퇴한다는 소식. 아쉽다. 나는 그의 백핸드를 사랑했다. 완전히 꼬인 몸이 풀려나가는 힘으로 온 몸이 좍 펴지며 상대의 홍심을 정확하게 노리는 원핸드 백핸드를 구사한다. 현존하는 테니스 선수 중 가장 아름다운 백핸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구석구석 원하는 곳에 뿌리는 그의 부드러운 코너웍의 포핸드도 일품이다. 백스핀이 걸리는 예술과 같은 그의 발리 영상을 보고 또 본적이 있다. 유사이래 우리나라 선수들이 단 한 번도 거머쥔 적 없는 우승 트로피를 혼자 스무 번 차지했다. 아름다운 스위스 국기처럼, 마흔 한 살, 그의 퇴장은 치열했던만큼 쓸려나간 발목과 무릎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꿈꿨던 것보다 오래 버텨준 내 무릎에 감사한다.” 오직 치열한 자의 퇴장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이본 취나드, 아웃도어 의류회사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자신의 전 재산을 지구의 기후변화 저지를 위해 헌신하는 자선단체 기부하고 일선에서 은퇴한다는 소식. 박수를 보낸다. 그가 세웠다는 회사의 경영철학도 좋지만, 나는 그를 산쟁이로서 존경한다. 그는 엄밀하게 따져 1920년대 등정주의를 일갈하며 등로주의를 주장하며 혜성처럼 나타나 전설로 사라진 산악인, 앨버트 머메리의 현대의 적자嫡子다. 그의 산악철학은 늘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였다. 그가 부탄 히말라야 6천미터급 봉우리를 전 세계에서 처음 오른 뒤 자신의 발자취를 제거한다. 루트 개념도를 찢으며 말했다. “다음에 오는 사람도 초등자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산쟁이 열정이 어디 가겠는가. 주한 미군의 신분으로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을 초등하고, 인수봉 취나드A길, 취나드B길을 개척했다. 그는 운명의 회오리를 겁내고 내빼지 않았던 의젓한 인간이었다. 등반을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일을 회상하며 그는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고

학교에서는 그것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만둔 것뿐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까웠던 시간은

학교에서 수학 공식을 외우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대호, 자이언츠의 이대호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8회말 그의 홈런으로 역전하며 경기를 뒤집으면 그날은 우리집 축제날이다. 어깨 뒤로 방망이를 늘어뜨렸다가 왼발로 타이밍을 맞추며 부드럽게 휘두르는 스윙은 일품이다. 부드러운 스윙에서 나오는 벼락 같은 홈런은 언제나 전세戰勢를 뒤집는다. 늘 하위권에 머무르며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자이언츠에 이대호가 없었다면, 집집마다 남아나는 밥상이 없지 않았겠는가. 타석에 들어선 뒤 그가 하는 루틴은 총 14가지다. 21가지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리추얼을 따라하며 주말에 마당에서 아들과 야구한다. 야구주머니로 불리는 그의 배, 그 아름다운 곡선은 그가 때려내는 홈런포의 포물선을 닮았다. 아쉽다. 더 아쉬운 점은 은퇴시즌임에도 그는 치열하게 준비했고 리그 타격왕을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개인적인 유종의 미가 자이언츠 팬에게는 뼈아픈 유종의 아쉬움이 됐다. 신臣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남았고 신이 있는 한 그들은 우리 바다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는 충무공의 호기로운 언명이 스친다. 이대호에게 아직 13경기가 남았다.


지나온 삶을 가끔 되돌아본다. 간명해 보였던 삶은 어느 순간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다시 평온을 되찾기를 반복했다. 치열함과 지루함은 뛰어오르는 사람을 바꾸며 쿵쾅거리는 널뛰기 나무판처럼 같은 사람 안에 있는 위치에너지다. 치열함이 없다면 지루함도 없으리라는 위로를 스스로 건넨다. 삶의 내리막을 잘 내려와야 멋진 삶이다. 산에서, 대개의 큰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딱 그만큼 깊은 내리막을 겪어야 또 다른 오르막에 접어들 수 있다.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는 반면, 뭘 해도 풀리지 않는 시기가 있다. 인생에 겨울은 반드시 온다. 화려했던 시기의 기쁨만큼 똑같은 하강을 겪는다. 은퇴라는 마무리일 수도 있고, 슬럼프라는 고난의 시기일 수도 있다. 누구나 당면하는 내리막 길이다. 인생의 겨울, 자기갱생을 위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같은 것은 치열했던 자들에게 선사하는 윔블던컵이며, 골든글러브이자 황금피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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