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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Mar 25. 2024

자넨 합격이네

결론은 산 - 첫 번째 이야기

등산대학교 등반과를 졸업하다시피 한 경영학 전공의 대학생은 중간치 정도의 어설픈 학점과 내세울 것 없는 스펙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만날 보따리 등짐 짊어 미고 산으로 들로 천지 모르고 돌아댕기다가 킬 날 끼라, 간띠가 부아가 가마 섰는 백을 백지 으데까정 기오리고.▲” 혀를 차며 하신 할머니 말씀이 그땐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는데 쥐구멍보다 좁다는 취업 문 앞에 서니, 말씀은 환청이 되고 돌비 서라운드가 되
어 귀청을 무한 반복하며 울린다.


(▲ 이런 뜻이다. 만날 보따리 등짐 짊어 메고 산으로 들로 천지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큰일난다. 간덩이가 부어서 가만히 홀로 서 있는 기암절벽을 쓸데없이 높은 데까지 올라가고.)


후회라는 건 내면의 강인한 자신감으로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 한심한 정신 승리에도 이력서에 적을 건, 없다. 봉사활동도 공모전 입상도 그 흔한 컴퓨터 자격증도 없다. 아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자그마치 1종이다. 후, 스스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한숨 유발자라 욕먹어도 할 말은 없어서 북미 로키산맥, 일본 북알프스, 백두대간, 낙동정맥 종주,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철없이 돌아다닌 천둥벌거숭이 짓들만 이력서에 가득 써넣
는다. 면접이라도 보게 해 준 회사들에 고마워해야 할 마당에 무슨 개똥 자신감인지 어깨는 거만하고 고개는 뻣뻣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열두어 곳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뒤 성적과 스펙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면접이라는 자리의 핵심을 재빨리 캐치해 이미 굴지의 대기업 세 군데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학벌이 좋은 것도, 성적이 우수하지도, 특별한 스펙도 없었다. 말은 느려 터져서 말주변이 없기는커녕 말 반경 5킬로 미터가 허허벌판이고 매력적인 신체 자본도 없는 흙수저의 반전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한번은 면접관이 이렇게 물었다. 그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근엄했으며 국내 L 대기업 주력 계열사의 사장이었다. 


“자네, 지리산을 열한 번 다녀왔다고 했나?” 


피면접자 다섯 명이 함께 들어간 면접 자리에서 30여 분간을 나와 독대하듯 신나게 산 얘기를 나눴다. 7명의 대원을 이끌고 35일간 낙동정맥▲을 종주했던 경험을 말할 땐 나머지 면접관들의 귀도 솔깃했다. 주위 임원들의 환기와 시간상 만류에도 그분은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나와 산 얘기 삼매경에 빠졌다. 


(▲ 강원도 태백에서 부산 몰운대까지 끊어지지 않는 능선으로 뻗어 있는 300여 킬로미터의 백두대간 지맥. 지질상의 구분으로는 태백산맥이라 불린다. 조선조 후기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에 의해 쓰여졌다고 알려진 《산경표》에 의하면 한반도는 산자분수령에 의해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된다.)


“칠선계곡에서 그랬단 말이지? 허허” 뻔한 길을 두고 잘못 든 길에 사경을 헤맨 얘기를 나누던 차에 

“다음 얘기는 곧 다시 만나 또 듣기로 하세.”


삶은 행운과 반전으로 가득하다. 산에 가는 일이 쓸데없는 딴짓이라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산에서의 곡절은 어쭙잖은 세상의 경험보단 삶에 유용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이 글이 산에 관한 글이라 해서 산을 마냥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저 있는 산을 인간이 아름답다 한들 ‘악’ 소리 나는 돌산이 아름다움으로 돌변하는 것도 아니니 산에 가자고 추동하거나 산에 가면 인생이 바뀐다고 선동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나 또한 마냥 잘 풀린 건 아니다. 오라는 그 큰 L 기업을 마다하고 젊은 객기에 미래, 전망 운운하며 다른 회사로 들어가 조직

의 쓴맛과 산업의 부침을 정통으로 맞았고 빙벽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난리를 겪어 산이라면 꼴도 보기 싫을 때도 많았다. 다만, 그럴 때 산은 사람들이 하는 어설픈 위로와 교감보다는 확실한 시련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 같다고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때, 스물대여섯 살이 한참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아이였는데 세상이 다 큰 성인 취급을 하니 성인식의 통과 제의 없이도 어른 행세를 하고 다녔다. 자만이 넘칠 때마다 산은 어김없이 나를 쓰러뜨리며 자기를 넘어보라 일렀으니 달콤한 위로와 교감으로 위무하는 세상의 방식과는 엄연히 달랐다. 나약하고 잗다란 감정에 녹아드는 대신 산은 내게 벼랑으로 떠밀어 머리가 터져 죽든, 훨훨 날아가든, 스스로 뛰어내릴 수 있는 간땡이를 시험하며 삶에 대한 의젓함을 가늠했는지 모른다. 삶에서 하강을 겪고 빙벽에서 추락하며 난데없이 산이 주는 성인식을 치렀는데, 그렇게 델포이 신전의 여신처럼 산이 내게 준 성인식의 점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죽지 않는다.’를 나는 받아들었으니, 이후의 삶은 평탄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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