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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진 Sep 11. 2015

# 지긋지긋한 베짜기

풍물시장에서 만난 직조 경험자

# 신설동 풍물시장 청춘1번가에 손손포목을 오픈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리 알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포털에 검색하면 된다.

요즘 매일 손손포목에 작은 베틀(수직기, 직조기)로  작업을 한다. 평일엔 사람이 없어서 재봉 아니면 직조 작업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작업 좀 하다가 옆 가게 옆옆 가게 사장님들과 노닥거리면 하루가 다 가버린다. 베짜기 작업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이런 게 있어? 하시며 신기한 눈으로 보신다. 내가 처음 캄보디아 따께오에서 언니들이 베짜는걸 보고 반갑고 신기했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어르신들이 관심 있게 보시면서 자연스레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젊은 시절 베를 짰던 혹은 베짜는걸 목격했던 기억들을 술술 풀어내신다.

얼마 전 어느 아담하신 할머니께서 젊은 처자가 별걸 다하는 구만 하시며 허리 뒷짐 지듯 두세 걸음 뒤에 서 계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더니 할머니가 성큼성큼 오시더니 당신께서는 베짜는게  지긋지긋하다며 썰을 풀기 시작하셨다.

시집을 갔더니 시어머니가 베를 짜시더라. 며느리인 본인에게 베짜는걸 시키셨는데, 임신을 해서 배가 이만큼(만삭은 됐을만한) 나왔는데도 시어머니가 혹독하게 베짜라고 잔소리를 하셨다고 한다. 애 낳기 이틀 전까지 베를 짜고 정리까지 마치고 애를 낳으셨다고 했다. 할머니 목소리에 짜증과 서러움이 가득한 채로 이놈의 베짜는거 지긋지긋했어 라고 또박또박 그때 그 감정을 실어서 내게  토로하셨다. 듣는 나까지 서러워지는 것 같았다.

나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놈의 직조가 재밌을 리가 없다. 하루 종일 실을 보고 있으면 눈이 뻐근하고 자세도 구부정해서 허리와 어깨도 아프다. 중간에 실수라도 하면 이걸 풀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고 한다. 지긋지긋한 베짜기라.. 알맞게 어울리고 온몸으로 알 것 같다.


# 할머니의 직조 경험담을 듣고 나니 지금은 사라지고 희미하게 남은 그분들 기억 속의 베짜기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르신들의 직조 경험담을 귀담아 듣고 남겨 두고 싶다. 베틀이 가진 이야기가  풍부해질수록 나도 이것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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