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진 Jun 22. 2015

# 할머니 우리 할머니

02 따께오 사람들

바나나줄기 자르시는 할머니(photo by kwan seok)

# 비쩍 마르신 캄보디아 할머니. 어린 시절 우리 자매들을 키워주셨던 친할머를 닮으셨다.

  볼이 홀쭉해져 도드라진 광대뼈 쭈글쭈글 할머니의 늘어진 살 윤기 없는 짧은 머리.

  그치만 그 누구보다 야무진 살림 솜씨, 아이들을 대하는 여유 있는 몸짓, 불편한 기색 없이 궂을 일을 대하는

  태도. 어딜 가나 할머니들은 다 그런가 싶다.


# 며칠 심란한 벌레들과 심란한 밤을 보냈다.

   불을 못 키니 깜깜한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뜩이나 긴 밤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신경 쓰이신 할머니가 나를 부르셔서 오늘 같이 자자고 하셨을 때,

   쏨낭 가족에게 폐가 될까 봐 사양했지만, 속으론 할머니를 부둥켜 안고 울고 싶었다.


   어찌어찌 잘 때가 되어 못 이기는 척 할머니 침대에 누웠는데, 가슴이 몹시 두근 거렸다.

   얼마만에 할머니와 누워보는 건지.

   어렸을 때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나란히 누웠던 날들이 생각나 더 찡긋했다.

   할머니는 침대 위에 모기장을 덮어 주시고 빈틈이 없는지 꼼꼼히 신경 쓰셨다.

   

# 따께오에서 지낼 때면 그렇게 할머니 침대에서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할머니가 그곳에 계신 것만으로도 불편한 시골 생활에 큰 위로와 안심이 됐다.

   한 침대를 쓰는 베드메이트가 되어서 그런지 우리는 더욱 친밀해졌다.

   서로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았지만, 그만큼 더 직설적이고 깨끗한 표현들로

   할머니와 나 사이에 애정이 돈독해졌다.

 

# 야윈 할머니를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할머니를 보면 그렇게 오래오래

  그곳에  계실 것만 같다. 어렸을 때, 다 큰 손녀 시집 가는 것도 보고 같이 살자고 했던 친할머니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캄보디아 할머니가 대신해서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그러니 오래오래 사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곱게 감긴 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