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역설
얼마 전, 런던에 살고 있는 영국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친구: 도쿄 코비드 상황은 어때?
나: 안 좋지 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요 며칠 갑자기 하루에 200명, 300명 그래...
친구: 아직도 하루에 200명-300명씩 죽다니! 일단은 한국에 가있는 게 낫지 않아?
나: 200명, 300명이 확진자 수야... 사망자가 그렇게 많으면 여기서 무서워서 어떻게 지내겠어!
친구: 아휴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여기 기준으로는 아주 심각한 단계도 아닌걸? 여긴 이런데도 거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안 쓰고 다녀. 여름휴가도 주변국으로 많이들 가고 그래.
이번 팬데믹에서 확실하게 통계와 수치로 배운건,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를 포함한 서양 국가들이 통제를 잘하지 못했고 현재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시아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교적 통제와 방역을 잘하고 있다. 우리의 과학, 의학 등 대부분의 기술과 지식은 서양문물과 교육을 기반으로 일궈졌는데, 서방 국가들이 이토록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서양과 동양의 절대적인 사회 가치관인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동양 국가의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주입식 교육이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양의 교육은 개인의 의견, 가치관, 자유 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거나,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거나 하는 여러 자원이 있는 개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나 자신의 한계를 테스트해보고, 원하면 더 높은 레벨의 교육을 받을 수도 있으며, 끝없는 자기 수련과 도전을 하게 만든다. 끈기와, 주변의 서포트와, 타고난 재능과, 물질적 자원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반면에 동양의 교육은, 개인의 기질과 의견과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정보를 주입시킨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대부분의 학생들은 창의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주도하는 학습을 하기 어려워하며, 주입된 내용만 숙지하기에 결과적으로 더 이상 자기 계발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서양 문화권에서 유학을 한 많은 이들이, 이 주입식 교육의 단점과 한계를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 항상 강한 비판을 했기에 주입식 교육은 항상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단점들에 가려, 주입식 교육의 장점을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의 견해와는 상관없이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따르는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주입식 교육이 선사하는 가장 큰 장점은 타고난 재능, 가정환경, 자원 같은 여러 가지 상황적 차이들을 무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기본기와 상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의 환경에서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비범한 인물들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도 우리가 몰지각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수를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주입식은 한 사회의 일반적 교육 수준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사회들이 이 팬데믹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느 정도 단일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전염병의 통제가 의견이 갈리는 서양 국가들에 비해 쉬웠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어로 extraordinary라는 단어가 있다. 어느 대단한 인물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이 단어는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에 하나이다. 이 단어를 쪼개 보면, extra+ordinary 두 단어의 결합인 것을 볼 수 있다. Extra는 기본값 이상의 것을 의미하고, ordinary는 평범한, 보통의 것을 의미하기에, extraordinary는 보통/평범한 것 이상으로 뛰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대상을 칭찬함과 동시에 평범한 것을 약간 폄하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양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개성을 찾아주고, 평범하지 않도록 본인만의 재능을 일깨워주는 데에 그 중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양 국가들은 항상 extraordinary한 몇몇 사람들 위주로 사회가 돌아간다. 어느 국가의 자존감은 그 국가에서 배출한 뛰어난 인물이나 기업의 수와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빛에 가려 그 국가에 속한 대다수의 평균적인 일반인들의 모습은 덜 주목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며 드러낸 것은 각 사회의 ordinary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상식 수준일 것이다.
전염병의 전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ordinary한 이들의 전염병에 대한 기초 상식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 협조는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도 있고 (마스크, 거리두기 등등) 그에 따른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전염병에 대한 정보, 위생 수준, 단순한 과학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백신이 나올 때까지 그 자유를 침범당하더라도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불편의 고통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처럼 사그라들 생각이 보이지 않는 곳들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사회를 일구고 있는 ordinary한 보통의 사람들의 상식 수준과 가치관이 드러난 때라고 볼 수 있다.
전염병 방역은 통제로 이루어진다. 이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과학이다. 그렇기에 이번 바이러스는 기본 지식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회에 너무나 큰 행동과 교육의 자유를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초등학생에게 자동차 운전대를 맞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이 팬데믹을 기회삼아 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뛰어난 업적을 이루는 인물이 서양 국가에서 나올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동양 국가들이 비교적 초기 진압에 성공한 이유가 몇몇의 뛰어난 인물 때문이 절대 아니라, 다수의 희생을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동양의 가치관과, 주입식 교육 덕분에 유지된 어느 정도의 기본 과학, 위생 상식 덕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