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오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막연히 생각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현실적으로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지 못할 테니,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 하나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학생 때 언니를 도와 갓 태어난 어린 조카들을 돌보는 시간이 길어지며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마주하는 낯선 환경에서 초조해하던 언니, 조금씩 변해가는 언니의 관계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혼란스레 피어올랐다.
<술과 바닐라>를 읽으며 그때가 떠올랐다. 소설 속엔 여러 여자가 등장한다. 아이를 낳은 여자, 부모에 상처받은 여자, 육아와 일 모두 해내느라 버거운 여자,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여자, 암에 걸린 여자. 이 여자들은 삶의 한 부분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멀리서 보면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루고 있는 세계가 전부 애매하게 어긋나 있다. 처음엔 별거 아닌 문제 같다가도, 금세 쌓여버린 눈의 무게처럼 천장을 바사삭 부숴버린다. 그즈음 되면 주인공들은 이걸 실패라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균열은 삶을 초조하게 만드니까.
결혼과 아이라는 거대한 문을 건넌 여자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어떤 관계든 예전만큼 유연하게 이끌어낼 수 없는 현실적인 환경을 마주한다. 자꾸만 어긋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완전히 남 얘기 같지 않아 조금 서글퍼진다. 언젠가 내가 겪을지도 모르고, 가까운 누군가가 말하지 못하고 홀로 안고 사는 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술과 바닐라>를 읽으며 눈물을 뚝 흘린 것은, 실패 속에서도 여자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아니, 나아가진 못하더라도 삶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며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어긋남도 실패도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쥐고 길을 나선다. 주어진 하루라는 삶이 나를 위한 건지 다른 이를 위한 건지 아니면 그저 상황을 지켜내기 위해선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여자들을 보며 달콤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술과 바닐라처럼. 어쩌면 삶이란 술과 바닐라의 향을 번갈아 맡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 더불어 일하며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내 시간이 내 시간으로만 존재하던 세계가 더 이상 그들에겐 없을 테니까. 대단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조금 더 앞선 그들이 더욱 깊게 빛나기를 바란다.
• 글이 정돈되지 않았는데, 정돈되지 않은 마음이 책 읽고 난 감정인 듯 하다. 다시 한 번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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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엄마로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계속해나간다고 하더라도 어떤 관계의 확장과 또 뭐랄까, 실패에서 오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패한 그 자리에 서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 대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계속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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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술과 바닐라
• 작가 │ 정한아
• 출판 │ 2021,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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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출퇴근 독서 @ruby.not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