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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의무

스물다섯이 되면 자살을 하게 될까

자살한 유재하의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다. 그가 자살한 나이에 둘을 더했던 나이의 내가 썼던 글.
스물다섯이 되면 자살을 하게 될까?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을 무렵의 나는 하루에 스물다섯 번 정도 저런 생각을 했다.나에게 스물 다섯이란 시간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사랑도 이별도 처음이었던 나이 스물다섯.


내가 첫 연애를 시작한 나이는 스물 세 살이었다. (서른셋이 넘은 내가 노래방에서 아이유의 스물셋을 불렀을 때 맞은편 두 살 어린 소개팅남이 “ 서른셋에 스물셋을 부르네요.” 라고 말해 내가 ‘어쩌라고’ 표정을 짓게 만들었었지.)


스물셋의 나는 무려 8년이나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남자에게 무려 8일만에 마음의 문을 열었더랬다. 그리고 딱 8달 정도 아무 걱정없이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시작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연애의 몫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렇게 버텼다.


모든 남녀관계의 고질적 문제에 맞닥뜨린 스물셋의 나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내가 다 미안하다”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채
딱 5분만 죽어라 공감만 해줘도 될 일을 정의의 심판자가 되어 큰일로 만드는 남자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공감과 의견을 내남자는 줘야지!라고 욕심을 부리는 여자가 되어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싸웠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먼지가 쌓인 옷장처럼 마음이 바래기 시작했다. 조금씩 변해갔다.


여자는 쓸데없이 “남자들은 왜 여우 같은 여자들을 좋아할까?”
“그 남자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 같은 책들을 읽으며 돈지랄과 멘탈에너지를 소비하고 남자는 음주가무 및 친구들과의 유흥에 빠져 그 상황을 피한다.


여자는 특히 첫 연애의 후유증이 크다. 내가 그랬다.내 친구들도 그랬고 언니들도 그랬고 동생들도 그랬다. 첫 연애가 쓸고 간 자리는 황폐해진 피부와 구멍이 숭숭난 조각난 마음. 남자에 대한 불신.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자괴감.내가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전남자의 레벨업된 패션센스와 여자에 대한 매너를 다른 여자가 거저 가져간다는 억울함.

술자리의 18번 대사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에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가 되고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채 다음 번 연애에서도 그 다음 번 연애에서도 실패릴레이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문득 sister’s soul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래 앞으로는 레벨업한 남자를 만날 거야.마치 똥차가면 벤츠온다는 만고의 진리가 나에게도 해당될 것처럼 들뜬다. 세상 모든 여자들의 연대감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다음 여자를 위해 수고하고 있는 시스터즈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진다.그리고 선뜻 나도 거기에 동참하리라 다짐한다.


신데렐라와 왕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로 끝나지 않는 것이 동화책 밖의 현실이다. 신데렐라가 아니니 신데렐라의 작가가 되어 신데렐라의 엔딩을 아름답게 끝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생하고 있을 시스터즈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 지금의 넋두리는 애교다. 즉 남자를 만나는 건 여자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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