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아웨이브 Nov 19. 2020

알프스에서 스키 타는 꿈을 꾸시나요?

스위스 사람들이 겨울 알프스를 즐기는 법, 스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대학을 갓 졸업한 즈음에는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고 신선하게도 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주고받았더랬다.


" 나중에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나는 말이야, 음~ 어디에 가고 싶냐면? 

알프스에서 지내면서 스키도 타면서 거기서 며칠 지내다 오고 싶어."


시절에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고 싶다는 말은, 일 하지 않아도 따박따박 통장 잔고가 채워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갖고 싶다' 정도로 허무맹랑하지만 한 번쯤은 꿈꿔보고 싶은 그런, 아주 멀고도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도 안 될 거 같은 이 꿈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이루어졌다. 비록 신혼여행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내게 있어 '여행'은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곳에 갈 수 있는 일들이 곧잘 생겼는데, 스위스도 어느새 그렇게 내게 와 있었다.





겨울의 알프스.

스위스의 눈 덮인 알프스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세모난 지붕을 가진 마을에 포근히 덮여있는 눈과 달빛, 그리고 은은하게 밝혀주는 호박색 조명이 어울려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보던 그림 같았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도 안 돼. 여기 에버랜드 같은데? 이렇게 예쁜 집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어?'

'와, 나는 전생에 나는 나라를 구했나. 말도 안 돼. 여기에 있어. 내가! '


설레는 눈 덮인 세모 지붕



스키 in Alps


스키장의 규모로 말할 거 같으면, 스위스와 프랑스에 걸쳐진 산맥 안에 만들어진 슬로프는 하루를 꼬박 타도 이 곳의 모든 코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다. 때문에 초보들을 위한 코스를 제외하고는 산 능선을 넘나드는 다양한 경사, 2- 300미터쯤은 되는 평지에 약간의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활강 코스, 그리고 구불구불 굴곡진 코스도 리프트 한 번이면 뷔페처럼 입맛대로 즐길 수 있었다.


'스키장'아닌 '스키를 탈 수 있는 산'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자연스레 굴곡 지고 만들어진 능선을 인간에게 잠시 내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장점에도 아쉬운 점은 늘 따라오는 법, 아니던가?


면적이 크고, 굴곡진 슬로프도 많다 보니 코스마다 혹시 경로를 이탈할 경우를 대비하는 펜스, 그러니까 안전장치 설치 부분에서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미흡해 보였다.


한국 스키장이 수영장에서 안전하게 즐기는 수영이라면, 스위스에서의 스키는 바다 한가운데 자유로이 떠다니는 유영이지 않겠나 싶었다.


스위스 or 프랑스, 선택은 당신의 몫



만 2세 스위스 기욤이 도 스키를 탄다.


스키 초보자들은 다리 모양을 A자로 하며 내려온다. A자 모양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인데 그래야 속력을 조절하며 천천히 급하지 않게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누가 봐도 스위스 사람 아니라고 생각할걸?"

"어떻게 알아? 꽁꽁 싸매고 있어서 얼굴도 안 보이는데?"

"음, 이렇게 A자로 스키 타면, 꼬마가 아닌 이상 스위스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걸?"


주위를 둘러보니 A자 스키 모양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랬다. 이 구역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보이지 않아도 나는 Non- Swiss.


스위스 사람들이 모두 스키를 좋아하고 즐겨 타는 건 아닐 테다. 한국 사람이라고 모두가 김치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스위스 사람들은 매년 겨울 스키장 한 편의 겨울 산장에 머무르며 키를 타고 휴가를 보낸다. 심지어 내가 알고 있는 최연소 스위스 사람, 꼬마 기욤은 만 2세부터 스키를 신고 놀기 시작했으니, 오래전에는 스키가 교통수단이었다는 이 민족에게 스키란 스포츠를 넘어 생존을 위한 유전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태어날 때부터 스키를 보면 들끓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살인적인 스위스의 물가에 비해,  스키장 이용권 가격은 대자연의 품에서의 하루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합리적이다. 종일 리프트권이 한국 원화로 5-7만 원 정도.)





스키는 되돌릴 수 없고 한번 발을 떼면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다. 응급요원을 불러 응급 썰매를 타고 내려오지 않는 한은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 맞다. 렇기 때문에 스스로 주제 파악을 잘해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내려올 수 있는 경사를 잘 선택해야 하지만, 식욕의 아우성에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큰 코 다쳤던 일도 있었다.


2-300 미터 정도 언덕 아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꽤 가빠래 보였지만, 길이가 길어 보이지 않았고, 천천히 가면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체력도 떨어지고 춥기도 추워서 따듯한 음식으로 보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음 레스토랑은 여기서 30분은 더 버터야 했다.  


두발로 완벽한 A자를 만들고 기필코 넘어지지 않고 내려가겠다는 의지를 허벅지 근육에 힘을 꽉 실으며 불태웠지만, 이내 이 길은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님을 알았다.


'망했다.'

'뭐야 앞이 안 보여.'

'나 어떻게 해.'


심리적 경사는 90도 직각.

언덕 아래로 보이는 레스토랑은 잘 보였지만 가파른 경사 때문에 바로 코 앞 시선만 시야가 확보됐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만 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고 갈 길을 예상할 수 없으니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뒤로 물러설 곳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내려가야만 했다.  

울고 싶다고 울 수도 없었다. 정신 놓고 울다 넘어지거나 굴러 버리면, 그 감당은 다시 오롯이 내 몫이었으니까. 


'울더라도 내려가서 울자. 지금은 천천히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혼자 천천히 대문자 A를 유지하며 오른쪽 허벅지가 버틸 때까지 힘을 싣고 다시 왼쪽 허벅지, 다시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가며 천천히 회전을 하며 아주 조금씩 내려갔다. 힘 배분이 잘 못 됐거나 눈에 덮여 보이지 않던 얼음 바닥에 걸리면 가차 없이 쭉- 미끄러져버려 당혹감도 맛봐야 했다. 너무 무서우면, 소리도 지를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꽥- 돌고래 소리 대신 등줄기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으로 두려움을 표출해야 했다.


눈물도 비명도 기대고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나온다는 걸 알았다. 완벽하게 혼자임을 실감하면, 어리광과 응석도 사치였다.


굳세었다.

단 한 번의 꽈당 없이, 터질 것 같은 허벅지를 달래며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내려오며 견뎌낸 인내의 결과로, 마침내  목적지에 내려올 수 있었다. 아, 인생이란.


오두막 레스토랑까지 내려왔을 땐 결승점을 통과하는 선수인냥 테라스에서 점심을 즐기던 노부부로부터 박수 세례까지 받았다. 테라스에서 낑낑 거리면 내려오는 나를 계속 보고 계셨는지 걸음마 뗀 아이에게 보내는 찬사까지 받을 수 있었다.


헬멧을 벗으며 쿨하게 'Merci(감사합니다)'라고 답했지만, 찡찡과 엉엉을 분화구처럼 터트리며 다리를 옥죄던 스키부츠를 양말 벗듯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점심 메뉴는 무조건 고칼로리 메뉴여야만 했다. '수고한 당신, 즐겨라.'

꽁꽁 얼었던 몸을 녹이고, 주문한 감자와 치즈 덩어리가 올려진 스위스 음식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잔을 즐겼다.


알프스에서의 하루는 거대했고 아름다웠으며, 추웠지만 따듯했고, 무서웠지만 맛있었던 겨울이었다.


감자와 치즈 범벅 그리고 와인 한잔으로 다음 체력전 준비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 웨딩에 초대받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