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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웨이브 Jan 14. 2021

옥스퍼드와 경복궁

해리포터 호그와트 다이닝홀에서



영국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Christ church college).


본래 12세기 수도원으로 시작한 이곳은 헨리 8세가 1546년에 성당을 중심으로 대학을 세우면서 '크라이스트 처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과 13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한 명실상부 영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학교로 유명하지만,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곳에 방문하는 큰 이유 중 하나로는 학교 내 식당으로 알려진 이 다이닝 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지 않을까?


J.K Rolling의 '해리 포터'를 읽으며 성 장한이들에게는 이곳이 영국에서 유명한 대학교라는 타이틀보다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 식당으로 더 각인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해리포터 호그와트 다이닝홀



영화 속 장면 그대로 백 미터는 족히 될 거 같은 길게 뻗은 직사각형 테이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면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석고상을 중심으로 대학의 설립자인 헨리 8세를 비롯한 이 곳 크라이스트 처치를 졸업한 이름난 학자들의 초상화가 사면에 걸려 있었다.


영화에서 느껴졌던 공간감보다는 홀의 크기가 다소 작게 느껴졌지만 긴 테이블과 초상화 그리고 섬세한 빛을 받아주는 유리창이 뿜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금이라도 속닥거리다간 어디선가 수염을 만지며 나타난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 교수님께 '이 곳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라는 꾸지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달그락달그락'

한참을 넋을 잃고 두리번두리번 구경을 하다 귓가에 들려오는 주방 소리에 영화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이 곳은 식당이었지?!'


오전 11시.

테이블을 중심으로 왼편에 있는 오픈 키친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그제야 길고 긴 테이블 위에 올려진 플레이트, 포크, 나이프 그리고 물컵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는 소금과 후추 통도 보이고 커피머신까지 구비되어 있는, 말 그대로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 혹시 여기서 관광객도 식사를 할 수 있나요?"


여기서 밥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식당 관리자에게 물었다.


"아뇨, 관광객은 식사를 할 수 없어요. 이 곳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학교 관계자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아쉬운 대답과 함께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에는 관광객에게 출입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옥스퍼드 학생들에게 식사 시간만이라도 그들의 식당을 내주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홀을 나왔다.




나오는 발걸음에는 벅차면서도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이 곳이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전히도 식당이라는 '기능'을 잃지 않고 오늘도 점심 식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니 랄까, 역사의 한켠으로 고이 모셔둘 법도 한데 식당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모습이 낯설다고 해야 할까?


마치 이들은 시들지 않는 장미를 가꾸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전통을 유지하고 계승해나가는 방법과 태도에 경외심까지 들었다.


경복궁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나?'

이 곳과 견줄법오래되고 역사적인 장소를 떠올려보니 '경복궁'이 생각났다.

 

오늘날의 경복궁은 왕이 주거하고 집무를 보던 궁궐이라는 기능에서 벗어나 국가의 문화재보호와 관리를 통해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며 역사 그대로의 시간 속에서 보존되고 있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다이닝 홀과는 분명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그렇지만 후세들에게 시대의 부분을 훼손하지 않고 최선의 모습을 유지하며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넘겨주는 것에도 분명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복궁이 관광지가 아닌 주거라는 본래의 기능을 언제까지 했을지 궁금해 살펴보니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부터는 주인을 잃은 빈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만약 비극적인 그 시절들을 경복궁은 겪지 않았더라면,  2021년 오늘에는 본래의 역할로 쓰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영국 여왕이 여전히 버킹엄궁에서 지내듯 한국 대통령이 경복궁에서 집무를 보는 모습이!



경복궁과 크라이스트 처지가 세월을 얹고 흘러가는 방향은 분명 다르지만, 무엇이 맞고 틀리는 건 없을게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달랐고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다루는 가치관과 견해가 다른 것일 뿐, 어떤 모습이 더 낫다는 말은 이 역사 깊은 두 장소에 실례가 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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