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아웨이브 Nov 16. 2023

불안, 긴장, 예민함을 풀어주는 요가자세 처방

한의학과 요가 / 비장경락을 자극하는 잠자리 자세


냉장고 과일 칸에서 한약 봉투를 하나 꺼낸다. 쌍화탕. 선반에서 십 년 전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사 온 미키마우스 컵을 꺼내고 가위로 약 봉투 머리 귀퉁이를 잘라낸다. 한 방울도 남지 않게 살뜰히 탈탈 털어 미키에게 쌍화탕을 붓고 레인지 문을 연다. 띡띡띡띡- 230.           





"요즘은 컨디션 어때요?"

활짝 웃으며 반달이 된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     


"손, 발 차가운 거는 괜찮아요? 화장실은 자주 가요? "     

요가 덕분에 만난 한의사 재은 님. 이 사람은 왜 요가를 하러 왔을까.


                   

"재은님, 오늘은 인요가 하려고요. 담요하고 블럭 두 개, 그리고 저기 쿠션처럼 생긴 볼스터도 하나 챙겨 오시죠."


     

젊은 여한의사. 한의원을 가본 횟수는 다섯 손가락도 하나씩 접어도 몇 손가락은 남을 정도 라 처음 재은님을 만났을 때, 여자, 젊은, 그리고 웹툰을 좋아하는, 예쁜, 한의사라는 사실이 낯설었다.


한의사 선생님이라면, 저기 어디 한적한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보이는 낡은 건물 3층을 올라가면 엄마뻘로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데스크에서 종이와 연필을 주며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으라고 안내하고, 원장실 방을 열면 책상 위 한자로 빼곡한 동의보감 급 고문서로 보이는 책을 보는 머리 희끗하고 콧등에 안경을 걸친 듯 할아버지 원장님이 '흠. 어디 한번 맥을 짚어보세' 하면서 진료를 시작해야 말이 되는, "줄을 서시오" 드라마 (허준)을 보고 자란 나는 한의사라면, 허준이 익숙한 사람인데, 웹툰을 보는 여한의사라니!          



재은님은 요가가 내 체질에 잘 맞는다고 했다. 특히 인요가. 몸에 수분이 적어서 땀을 흠뻑 쏟는 운동보다는 오히려 생각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가둘 수 있는 인요가가 체력을 유지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요가는 크게는 아쉬탕가, 빈야사처럼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요가를 '양 요가'라고 부르고 상대적으로 몸을 덜 움직이는 요가를 '음 요가'로 나눈다.



인요가는 정적인 움직임의 대표적인 요가로 한 자세에서 3 – 5분, 최대 20분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블럭, 벨트, 쿠션 등에 몸을 기대어 유지하며 대부분 동작은 바닥에 누워하는 자세들이 많다.



인요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고 머리에 떠오른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보인다. ‘응? 이게 요가라고요? 누워만 있었던 거 같은데?’ ‘아이고 개운하네!’ 1+1 세트.                    


 


요가 자세를 위해 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요가 자세가 몸을 위해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by 폴그릴리]    



      

인요가는 한의학에서 다루는 ‘경락’을 중심으로 동작을 구성한다. 눈에 보이는 큰 근육들이 아닌, 몸 내부에 있는 관절과 결합조직, 심장과 위, 간과 폐 등등을 아주 천천히 3분 – 20분 동안 작게 지속적으로 부드럽게 자극하며 뭉쳐있는 곳들을 안마하듯 서서히 풀어주는 개념이다.          



재은 님을 처음 만나고 두 번 만나고, 세 번 정도 만났을 때 슬며시 물어봤다.

     

" 제가 수족 냉증이 있어서 겨울에 고생을 많이 해요. 양말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왜 그럴까요? "      



" 소연님은 애초에 피 자체가 차가울 수도 있고, 피가 모자라서 손, 발 끝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물 많이 드시고, 소연님은 소화가 어렵더라도 단백질, 고기 많이 드세요. 고기 드시기 힘드시면 식물성 단백질, 두부나 콩 드시고요. 비위가 약해요. "      


“아....!”               





비위가 약한 사람들

     


“저는 비위가 약해서요.”


비장과 위는 세트 장기. 위는 소화를 주로 맡아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은 비장으로 보내 비장에서 혈액으로 전환, 저장하고 때에 따라서 피를 공급하기도 한다. 비위는 다른 장기들에게 생명의 줄기 같은, 먹이를 물어와 주는 어미 새 역할을 한다. 엄마 새가 벌레를 물어오지 않는다면?


배고픔에 굶주린 아기 새들은 난동을 부리고 결국 둥지는 불안, 초조, 걱정을 다닥다닥 붙여 사는 아수라장이 된다. 반대로 평소에 걱정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비장이 약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인요가는 아침에 일어나 밤새 잠들어 있던 세포들을 깨워내는데 적당하다. 8시간은 쉬었을 내장들에게 비발디의 사계처럼 고급스럽게 울리는 기상 알람.



오늘은 재은 님과 함께 ‘잠자리 자세’로 시작한다. 일명, 다리 찢는 자세. 엄지발가락 안쪽에서 시작해 종아리 – 허벅지 안쪽을 지나가 상체로 올라가 입에서 끝나는 [비장경락]을 두드릴 수 있는 잠자리 자세 포인트는 엄지발가락. 엄지발가락이 바닥과 가까워지는 것!



엄지발가락을 화살표로 바닥으로 가느냐, 천장으로 솟느냐, 아니면 새끼발가락이 바닥으로 가느냐에 건들 수 있는 경락이 달라진다.


새끼발가락이 바닥으로 가까이 가게 되면 다리 안쪽보다는 바깥쪽에 자극이 가는 신장과 방광을 만나는 경락으로 빠진다. 오늘은 배고프다고 아우성 거리는 아기 새들에게 특식을 넣어준다. 비장아 일하자. 잠자리 날개를 활짝 펴고 비장까지 날아가기.      



불안, 긴장, 예민함아 저리가 (잠자리 자세)

  



다리를 옆으로 열고는 상체를 바닥으로 내리려고 내적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재은 님에게 다가가 어디가 불편한지 묻고, 상체를 기댈 수 있게 블록을 두 개 올려 그 위에 볼스터를 비스듬하게 세워줬다. 두 개 블록을 하나만 사용할지, 볼스터 높이를 더 올릴지 내릴지는 오늘 재은 님의 컨디션에 결정할 일이다.



인요가는 무엇보다 주체성이 중요한 요가이다. 형태와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이게 맞나? 아닌가?’ 하는 물음표에서 ‘이게 맞아.’ 하는 느낌표를 탐험해 가는 시간을 누리는 요가. 자극의 위치가 맞고, 불쾌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선택을 믿고 머무른다. 명상을 할 때도, 삶을 살아갈 때도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말만큼 쉽지 않다. 어렵다. 어렵지만 자유롭고 만족스럽고 개운하다. 엄지발가락을 위치를 1cm만 다르게 놓아도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만큼,



품종과 국가, 숙성 방식과 기간에 따라 무한하게 펼쳐지는 와인의 세계만큼이나 섬세한 감각과 마음껏 누리겠다는 자유 의지만 있으면 인요가 세상, 인체의 신비를 모험하는 90분은 마지막 눈동자 힘까지 풀어두며 마칠 수 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볼스터에 기대어 있는 재은 님에게 얼굴만 남겨두고 등 뒤에서 담요로 몸을 덮어준다. 양손으로 볼스터를 끌어안고 있으면, 갓난아기 시절 엄마 등에 기대 포대기에 싸여 잠들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리를 찢으며 편안할 수 있다니.



잔인한 듯 보여도 살벌한 듯 보여도 힘들어 보여도 멈출지 더 할지는 무조건적으로 재은 님의 선택이다. 내가 쳐준 울타리는 15분 동안 잠자리 자세로 있을 거고, 언제든지 자세에서 나와 쉴 수 있고, 불편하거나 고통스럽다면 블록과 볼스터, 담요의 도움을 받아 편안한 움직임으로 바꿀 수도 있고, 원한다면 자극의 세기를 더 올릴 수도 있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다는 부모와 같은 든든함을 주는 일이다.



다리가 덜덜덜 떨릴 정도의 고통은 인요가에서 원하지 않는다. 어깨에 뭉친 곳을 손으로 살살 안마하듯이 하체 안쪽에 기분 좋은 자극만 느끼면 된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이 낯설겠지만 애쓰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


 한계를 넘어설 필요도 없다. 강은 바다로 흘러간다. 온에서 오래 근육과 맞닿은 근막과 인대를 천천히 익히다 보면 물줄기는 36도 어디쯤에서 흐른다.     




      

MBTI가 등장하고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가 생겼듯이 한의학에서는 체질에 따른 분류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 있다. 요가 본국, 인도에서 ‘아유르베다’가 있는데 도샤(체질)로 바타, 피타, 카파를 나눈다.      



작년 여름, 남인도 마이솔 지역에 아쉬탕가 요가를 하며 한 달을 머무르면서 동네 한의원, 아유르베다 의원에 들려 재미로 진료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언제 또 인도 병원을 와볼까. 예상대로 동그란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 선생님은, 생년월일을 묻고 손목을 달라 한다.


맥을 짚고, 손목에 맥박 측정기를 달았다. 측정값 ‘바타-피타. 측정기와 연결된 프린터에서 체질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 목록들과 성격 특징이 결과지로 나왔다.



한의학에 따르면 소음인- 태음인군인 나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소화가 어려우며, 성격은 섬세하고 예민한 특징을 보이는데 아유르베다 검진에서 측정된 도샤 검사와 정확하게 일치된다.     


      

재은 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인도 – 중국 – 한국 – 일본 아시아 지역에서 비슷하게 공유되고 있는 의학 줄기들이 있고,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이 유사한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맥이 막혀 있는 부분들에 침을 놓아 혈을 흔들 듯이, 뭉쳐 있는 부분을 요가 동작으로 풀어줘도 같은 원리로 활기를 돋아 준다 하니, 다리 찢기를 더 자주 해야 한다.



 배고픈 아기 새들에게 밥을 자주 주자. 무릎 안쪽, 정강뼈 안쪽 모서리에는 <음릉천> 이 있는데 비장경락의 혈 자리. 손으로 누르며 풀어 주거나 침을 놓거나 잠자리 자세로도 자극시킬 수 있다. 비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불안하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다. 불안할 때는 잠자리 자세를 하면 안정을 찾는데 도와주는 카모마일 차를 마시 듯 몸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몸과 마음, 감정은 연결되어 있고, 나는 세상과 닿아있다. 내가 체력을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체력이 나를 키울 수 있었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내가 하늘을 먼저 버렸을 때도 있었다.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들 많았던 건, 의지력이 약한 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맺기에는 이미 소진되어 버린 체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무기력했을 때 게으른 나를 탓했었지만 심장이 피를 만들어내는 일이 버거워서 활기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도울 때는 내가 세상을 먼저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가장 작은 세상은 내 몸 하나였다. 아무런 외부 개입 없이 주체적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인 내 선택들이 최소단위의 내 세상이었다. 소우주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내 우주를 잘 보살피면 행성들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물 한 방울은 바다가 되기도 하고 바다 또한 물 한 방울이 되는 거였다.                





“ 재은 님, 이제 천천히 다리 하나씩 접고 등을 대고 편안히 누우세요. 수고했어요. 휴식.”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를 하면 살이 빠지나요? 정답은 아쉬탕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