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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Jan 21. 2021

칼이 뜨겁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완벽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름다운 단어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주아주 옛날에는 완벽이라는 단어가 재앙이나 금기로 불리지 않았을까

애초에 완벽하다는 존재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목적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부족하고 모자란 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사실에 대해 비난받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 점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고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행복해하는지,

그리고 내가 잘하는 점과 못하는 점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나에 대한 충분한 파악만 된다고 해도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자기반성을 하며 살아가는 프로세스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점을 무조건 고치고 수정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어떠한 단점이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파악하고 연구하고 싶다.

또한 어떠한 건 포기하고 살 수 있는지, 어떠한 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지.

어떠한 상황에서는 비교적 지구력 있게 버티는지, 또 어떠한 상황에서는 유달리 힘들어하는지 조차 알고싶다.


인생은 롱런이라고들 한다.

한 가지만 잘해서는, 한 가지만 고민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워져갈수록, 세상에 역할이 많아질수록, 남들의 기대가 커질 수록 대게는 그 고민의 갯수가 늘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무작정 그러한 나의 처지와, 나이와 철이 들어감에 대해서 억울하거나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것 까지도 내 인생의 내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 삶에서 오늘은 나의 가장 늙은 버전이니..ㅎㅎ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고민과 책임의 파도 앞에서 의연함을 잃을때가 온다는 건 힘든일이다. 흔들리고 무너지는 내 모습이 유쾌하지는 않기 떄문이다.


이런 흔들리는 순간에 나타나는 나의 단점은,

차가운 이성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스피드있게 의사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들보다 많이 고민하고, 작은 걱정거리까지 고려하고, 침착하게 현실의 사실만을 직시하는 점이 부족하다.

언제나 감정적이고, 나의 탓을 먼저하며 주눅들고, 환경의 틀을 깨고 새 판을 짜기 보다는, 이 판 안에서 경직된 사고로 내 자신을 질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지향하는 바는 그렇지 않다. 과감하게 때로는 소의를 저버릴 수도 있고, 틀을 꺠는 생각으로 용감한 선택을 하고 싶기도 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그러한 결정을 해 본 적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스피드나 샤프함을 지키고 싶으며,

무엇보다도 자기방어적 사고방식이나 뻔뻔함을 조금은 갖고 싶다.

다소 남탓을 해도 되고, 나를 방어하고 두둔해도 될 것 같은데

모든걸 내 책임으로, 남이 얹어주지않은 책임감까지 등에 업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내리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그러고싶지 않다.

좀 더 나를 위한 결정을 하고, 나를 위한 방어기재로 생각하고, 뻔뻔해지고 싶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결국 나를 지키는 것은, 나의 실력이고 나의 태도이다.

내가 나를 대하는 만큼, 남들도 나를 대할테니까 말이다.

좋은 사람들이란, 내가 나를 지키고 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지키는 fair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말한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부담이 되는 순간, 무임승차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자존감의 레벨이 동등하지 않는 순간 

관게는 동정과 연민이 되거나, 한심과 비난이 되거나.


날카로운 칼을 바라보고 사람들은 서슬이 시퍼렇다라는 표현을 한다.

톱이든 칼이든 도끼이든, 신기하게도 물건을 내리치고 잘라내는 도구들은 온통 다 차갑다.

철이라는 특성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뜨거운 칼이나 뜨거운 도끼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내리치고 잘라내는 행위 자체가, 차가울때 이루어져야 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그 칼과 도끼가 시퍼런 서슬을 갖기 까지는 이세상 그 무엇보다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탄생했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세상만사도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무언가를 내리치고 잘라낼때는 세상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차갑고 날카롭게, 확신에 찬 한 방으로 내리쳐야하지만

그 내리침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된다.

뜨겁고 치열하게 담금질 당하고, 버텨낸 결과, 판단이 섰을 때에는

차갑고 날카롭게 한 방으로 내리치는 것이다.


나의 감정적인 대응과 자기 질책의 습관들은 어디까지나 칼날이 퍼래지기 전까지의 담금질로만 사용하고 싶다.

본질을 잘 못 보거나, 스스로를 깍아내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 깍아내리는 과정들이 서슬을 시퍼렇게 만들수 있는, 남은 곳에 미련을 돌아보지 않도록 확실한 노력의 끝을 퍼부을 수 있는, 내리게 될 큰 의사결정에 대해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역할로 승화시키고 싶다.


결정을 하기 전까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뜨겁게 담금질을 당한 후에는,

확신이 들때의 내리침은 꼭 칼날이 차갑게 식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한 방에 끊어낼 수 있도록,

온도차란 적응을 동반하기에 힘든 일 이지만,

모든 의사결정 뒤에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과정인 것 같다.


뜨거운 담금질과 차카운 칼끝.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세상 모든 명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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