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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un 12. 2023

또담이의 모험 프롤로그

또담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바깥세상을 처음 만난 건, 엄마의 뱃속이었다. 나는 아직 이름이 없었는데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아직 뱃속이었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온했다. 아직 얼굴을 모르는 엄마의 태 중은, 엄마가 어떤 사람일지 연상될 만큼 따뜻했다. 나를 무척이나 아끼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굴처럼 웅얼거리는 소리라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략 나를 지칭하는 소리 같았다.


“또담아, 또담아. 오겡끼데쓰까”


또담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 아닐까? 귀여운 이름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와 이어진 탯줄을 잡고 한 바퀴 돌며 헤엄쳤다. 한참을 헤엄치다 나의 작은 집 벽을 박수처럼 두드렸다. 다른 차원에 사는 엄마아빠에게 보내는 나의 모스 부호다.


툭 툭툭 툭 툭툭툭

그 말인즉슨 “고마워요 엄마아빠”라는 뜻이다. 엄마의 배에 따뜻한 손을 올리고 있던 아빠가 알아챈듯하다. 오, 정말? 아빠가 웅얼거리는 말로 입을 연다.


“오, 또담쓰가 배고픈가 봐”

… 아니야. 아빠. 고마운 표시라고요.


그렇게 엄마 태중에 6개월이 지나자, 나는 바깥세상이 심히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집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자궁통신의 한 철학 칼럼에 의하면, 집을 떠나는 동시에 인생이라는 게 시작되고,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물론 엄마아빠를 보고, 함께 하는 기쁨도 몇 할 되겠지만. 나로서는 모험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딜레마에 빠져있을 때, 나는 한 가지 돌파구를 마련했다.


배꼽이동이라는 기술이 있다. 사실상 우리 같은 태아들에게 금지된 기술인데, 엄마 태중에 있는 오래된 도서관에서 이 기술이 적힌 금서를 발견했다. 배꼽이동. 그건 한마디로 배꼽이 있는 사람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다. 배꼽만 있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한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나의 배꼽에 연결된 탯줄을 동아줄처럼 꼭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올 때는 탯줄을 세 번 당기면 탯줄이 당겨져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이어진 나의 끈. 놓치는 순간에는 길을 잃고 만다.


발동 조건은 밤이다. 엄마가 잠들자, 기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몸에서 작고 빛나는 실들이 뿜어져 나왔다. 엄마가 지은 나의 집이 투명해지면서, 실들이 바깥으로 뿜어져 나갔다. 아마도 이 실이 연결되는 곳으로 가는 것 같다. 실은 어딘가를 향해 연결되고 모아져 점점 두터워졌다. 설레면서 두려웠다. 첫 번째 바깥 여행을 앞두고 엄마와 이어진 탯줄을 꼭 잡았다. 엄마, 또담이 잠깐 놀러 다녀올게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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