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명
아기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오묘한 느낌이 든다. 자그마한 손으로 내 검지를 감싸고, 작은 심장이 쿵쿵댄다. 그 배에 얼굴을 파묻고 그 숨소리를 느낀다. 생명이구나. 나를 닮은 생명이구나.
임신과 출산, 육아를 상상했을 적부터 아기의 존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당시에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 그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납득하려고 애썼다. 아니, 말하자면 설명하려고 애썼다. 우리 둘 사이에 생명이 하나 탄생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상상이었고, 그 상상조차 실현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기란 무엇이다,라는 최소한의 정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내렸던 잠정적인 정의는,
아기는 사랑이다
였다. B와 나의 사랑. 추상적으로 여겨지는 그 사랑이 인간이 되어 나타나는 거라고, 임신도 하기 전부터 이야기를 했었다. 그 정의를 하고 나니, 얼른 그 사랑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찡찡댈지 궁금했고, 또 우리의 사랑을 사랑으로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와 B는 그 정의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아기를 보며 “너는 사랑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사랑송을 만들어서 불러주기도 한다. 우리의 모토는 사랑을 많이 붓고 많이 줘서 사랑이 넘쳐나 주변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 저금통 같은 아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아이.
하지만 오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기 막수를 하면서 아기와 B를 번갈아 가면서 봤는데, 문득 아기 얼굴에 B가 비춰 보이는 것이다. 엄마니까 당연하겠지. 이제까지는 날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와 B는 닮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같은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기는 B 그 자체였다.
B가 아기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아기가 내 복제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B의 아기였다. 나는 유전자를 반만 떼서 줬을 뿐, 나머지 반의 유전자와 모든 육체, 그러니까 볼살, 눈꺼풀과 머리카락, 하품할 때 흘리는 눈물과 허벅지살, 귀여운 엉덩이살까지 모두 B로부터 온 것이다. B였다. 아기는 모두 B였다.
그 생각에 이르니, 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아기부터 장성할 때까지 키울 수 있는 기회.
아기는 단순한 사랑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 기회를 가지고 실제로 그 사랑을 증명하라는 의미였다. 아기를 키우는 건 그래서 사랑의 증명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아기를 키우면서, 인내하고 또 더 사랑을 주고, 애쓰고 수고하며 사랑을 내보이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기회이자 선물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그 순간이 특별한 것은 분명하다. 살면서 다시 겪어보지 못하는 신비한 경험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기로 오는 것.
나는 이제까지 아기를 내 중심으로 봤다. 내 복제인간이자, 나를 닮은 아기로 봤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기는 사랑의 얼굴을 하고, 나에게 증명할 기회를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