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그러니까 디케츠, 시끄러운 일은 만들지 말자고 했잖습니까.“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디케츠에게 말한다. 디케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남자를 본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통성명도 안했지. 버릇없는 녀석. 마침 기분좋게 술을 따르고 마실려는 찰나에,
납치되서 지금 이 곳에 있다. 어두운 지하. 쾌쾌한 냄새. 흔들리는 조명. 왜인지 익숙하다. 디케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뿔테 안경을 고쳐쓴다. 손에 포박이 묶여있었는데 어느새 풀려있다. “어느새…” 선글라스의 남자는 당황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너희들이 요청해서 갔다왔고, 나는 내 몫에 충실했을 뿐이야.”
디케츠. 풀네임 유세프 디케츠. 51살. 터키의 전설적인 블랙요원. 총기술의 대가. 65번의 미션을 성공 적으로 수행 후 은퇴. 아내와 이혼 후…
“잠깐. 다 아는 이야기니 거기까지 하지.”
”디케츠. 지금 당신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총잡이가 됐어요. 알아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인터넷도 안해요?”
“인터넷? 그 정신을 썩게 하는 걸 왜 하나?“
선글라스 남자, 아마 디케츠의 먼 후배뻘 되는 요원은 한 숨을 쉬며 서류를 뒤적인다. 말이 안 통할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고집불통일 줄이야.
”당신은 퇴역군인이라고 프로파일링 되어있어요. 살람들이 그걸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잊을거야. 인터넷이란 시끄러운 시장통 같은거거든.”
디케츠의 인심 좋은 아저씨 같은 웃음을 가만히 보다가 요원이 말한다.
“왜 도구는 착용 안했어요? 저희가 다 제공했잖습니까.“
“너도 저격할 때 도구를 쓰나? 나는 안써. 아무리 올림픽 무대라도 표적을 맞히고 싶은 건 똑같아. 빗나가는 건 정말 싫어.“
디케츠가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요원의 머리를 겨눈다. 요원은 한 숨을 쉰다.
“알겠습니다. 그것 때문이 전세계의 이목을 한껏 받긴 했지만… 그래도 경기 후에 인터뷰는 무난하게 하셨습니다.”
“아, 아내에게 이야기 한거? 정확히 전 아내이지.”
그러면서 한참을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디케츠. 요원은 이 나사 빠진 것 같은 이 남자가 정말 전설적인 블랙요원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거지만… 올림픽에 나가달라고 제의를 받았을 때 정말 하기 싫었어. 내가 왜? 너희가 나라에 이바지하는 둥 뭐라고 뭐라고 길게 이유를 댔지. 이봐, 나는 30년간 그래왔어. 무려 30년. 그리고 완전히 은퇴했다고. 총을 내려놨어. 너희도 모르는 곳에 내 피스톨을 묻었단 말이지. 그런데 총을 다시 들라고? 올림픽? 국위선양? 엿이나 잡수라고 해. 나는 연금이나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바텐더랑 수다를 떨테니까. 이제 생고생은 그러니까 너네가 해야지.“
“그런데 왜 수락하셨습니까.”
요원의 말에 디케츠가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연다.
“너희도 들었잖아. 방송 인터뷰에서도 말했고.”
“아내 말씀입니까?”
“아니, 아내가 가져간 내 강아지 말이야. 이름이 불렛이야. 총알이라는 뜻이지. 불랫을 돌려달라고 하고 싶었어. 올림픽이라면 그녀가 보겠지. 내 연락은 죽어도 안 받는 여자거든. 너도 결혼을 했나? 젊은 것보니 아직 교제 중일 수도 있겠군.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하지. 그 여자와 오래 가고 싶다면 이 일 당장 그만 둬. 여자가 밤새 잠 못자며 네 생사를 걱정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처럼 뭐 같은 자존심 때문에 밀어붙였다가 이혼 당하는 방법도 있고.“
“제 사생활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요원이 차갑게 이야기한다.
“그럼. 어련히 그렇게 할까.”
서류를 정리하던 요원이 머뭇거리다 말을 꺼낸다.
“사실 오늘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그 한국 요원 때문에 그런거지?”
“이미 알고 계셨군요.”
“이름 김예지. 본인은 숨기고 있겠지만 딱 보면 알겠더군. 특수 훈련을 받은 요원이야.”
“알아본 결과, 킴이라고 불리는 요원이고 저희 글로벌 작전에 몇번 마주친 전력이 있습니다. 괴물 같은 실력이었죠. 같은 편이여서 다행일 정도로.”
“아직 젊던데, 그런 친구가 왜 얼굴을 드러내고 올림픽에 나왔을까.“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엔트리로는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디케츠. 놀라지 말고 들어요. 킴은 요원으로 활동하다 출산을 했고 육아 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정부가 가차없이 킴을 배제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뭐라고? 시대가 어느 땐데 육아휴직 쓴다고 그 유능한 요원을 배제해? 은퇴시켜? 그딴 정부가 있어?!“
방이 울릴 정도로 디케츠의 목소리가 크다. 요원은 그런 그를 “디케츠, 진정해요”라고 말린다.
씩씩거리던 숨을 고른 디케츠가 말한다.
“그녀는 한번 만나보고 싶더군. 총알 궤적이 예술의 경지에 올랐더라.“
“마주치진 않았겠죠?”
“너희가 조용히 처리, 아니 메달만 따고 오라고 했잖아. 다른 선수들 마주칠 일은 없었어.”
“킴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텐데. 당신을 눈치라도 챘다면..“
“그렇더라도 내가 먼저 죽지는 않을거야 요원.“
디케츠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곧 만나게 되겠지. 내가 찾아가든, 그녀가 찾아오든. 총잡이는 숙명을 알아채거든.“
요원이 질겁한다. “그런 일은 절대… 절대…”라고 말하지만 디케츠가 손사래 치며 말한다.
“농담이야, 후배 요원. 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전혀 노출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우리는 프로거든.”
“언제 ‘우리’가 되신 겁니까?“
“총잡이들끼리 통하는게 있달까? 길게 총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
“하… 알겠습니다. 제가 말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 모든 것, 당신이 앞으로 일어날 거라고 예측한 그 모든 건 터키 정부와 상관 없는 겁니다. 동의합니까?”
“그래. 동의합니다.“
“이것으로…”
요원은 녹음 장치를 끄고, 서류를 정리한다. 그때, 삐빅- 요원의 귀 속 장치에 알림이 뜬다. 요원이 손을 귀에 대고 알림 전송을 한다. 그러자 그의 컴퓨터에 CCTV 화면이 뜬다. CCTV 화면에는 검은 옷의 인물이 화면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탕!
총소리가 크게 울린다.
“저격용으로 쓰는 모델이군. 익숙한 소리야. 후후… 이봐. 신참. 킴, 그녀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