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현석 Jan 14. 2017

임연지양의 절규

스릴러 코미디_Thriller Comedy


임연지양의 절규


넌 아무것도 모르던 나와 친구들을 꼬드겨내었다.

순백처럼 하얗던 몸에 지울 수 없는 문신을 남겼다.

혹시나 도망갈까 쇠고랑으로 친구들과 나를 묶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바탕 쓰고나더니 이제와 겨우 쇠고랑 풀어주고는

한물갔다며 서글픈 낙인을 찍는 것이냐.

 왜 다시 날 엎어 놓는 것이냐.

.

.

.

.

.

"이면지 그냥 버리면 국장님한테 혼나..."




2009년이었던가? 

공익광고대상을 받은 인쇄 광고가 있었다.

A4용지 한쪽 끝부분을 말아 올린 이미지에 카피는 이랬다.

"한 장이 아닙니다. 두 장입니다."


심플! 명확!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당시에 나도 광고를 했었기에 인쇄와 온라인 부문에 몇 점 출품한 걸로 아는데

어떤 내용으로 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한 것도 기억이 안나니 남이 기억해줄 리가 만무하다.

보나 마나 심플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았겠지.


anyway, 

그때 당시 회사에서는 이면지 활용 찬성파와 반대파가 양립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찬성파였다가 나중엔 변절하여 반대파로 옮겼다.

처음 이면지 활용을 찬성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1. 자연보호 2. 자원 활용 3. 비용 감소.

당장 나에게 득이 되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크게 봐서 회사와 국가, 환경에 득이 되는 일이었다.

후에 반대파로 돌아서게 된 이유는 이랬다.

1. 스테이플러를 일일이 떼내고, 이면지 도장을 찍기가 귀찮음.

2. 사용할 면을 엎어놓지 않으면 이미 사용한 면에 또 출력하게 됨.

3. 구겨진 이면지로 프린트를 하다 보면 Paper Jam이 빈번히 일어남.

4. 옆 팀 막내가 클라이언트에게 보낼 계약서를 깜빡하고 이면지로 출력했다 영혼까지 털림.

이면지 활용은 내가 귀찮고, 힘들고,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티도 잘 안나는 자연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회사 돈이고 나발이고 

당장 내가 힘드니 나도 사람인지라 일단 자기 편한 게 우선이 되더라.


지금도 다수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희생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면지 활용으로 회사에서는 얼마의 돈을 절약할 수 있는지 수치적으로 알려 참여를 도모하고,

스테이플러보다는 떼기 쉬운 클립 사용을 권장하며, 구겨지지 않도록 필름 홀더를 사용하고, 

이면지 함에 [사용한 면이 윗면]이라고 크게 써 붙여 정렬을 바르게 하고, 

내부용 이면지 프린터와 외부용 새 종이 프린터를 따로 두어 실수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이깟 이면지 사용하는 게 뭐라고 새벽까지 쓸데없이 진지한 글을 싸질르고 있는 건가.

당장 A4용지도 이면지도 쓸 일 없는 백수 주제에.

시간이 많으니 주제넘는 걱정을 다 하고 있었다.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보다 더 한심한 게 백수가 회사원 걱정하는 거라더라.


그래도 이면지를 활용합시다.

뻔하고도 올바른 소리는 내 몫.

귀찮은 건 네 몫.

매거진의 이전글 마그네틱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