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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뮤즈 Jan 13. 2019

내가 중국공항에 갇혔을 때 -2-

#인생, 별 거 없(지 않을까?) 

그렇게 호텔로 가서는, 잘 도착했느냐고 와 있던 아빠의 메시지에 상황 설명을 하느라 수필집 같은 양의 답장을 보냈다. 바로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고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심을 하시던 아빠께서는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진장 속상해하셨다. 어찌나 속상해하셨는지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애초부터 이런 선택을 한 내가, 또 애초부터 학생비자를 두고 왔어서 기존 비행기를 놓쳐버렸던 그 모든 과거의 내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아니, 사실 벌써부터- 애초부터 스스로 밉기는 했다. 그렇게 아빠와의 통화를 끝으로 잠에 들었다. 피곤했던 탓에 스스륵 잠들었기에 알람도 맞추지 못했는데 나의 무의식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를 새벽 4시부터 몸을 일으키게 한 걸 보면.


새벽부터 일어나 오늘 하루 정신 잘 붙들어 매자는 다짐과 함께 머리를 질끈 묶고 새벽바람이 걱정되어 옷은 조금 더 두툼하게 챙겨 입었다. 그 길로 바로 호텔 로비로 가서는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 시간표를 받아 들었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고 나의 허기짐은 시간의 공백 속에서 더 크게 느껴졌다. 호텔이니 조식이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직원에게 물었으나 그는 나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덕분에 생사문제(?) 앞에서 인간은 뇌는 가장 민첩해진다는 걸 경험해보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몇 년을 썩혀두었던 나의 중국어 공부가 갑자기 문장으로 튀어나온 것. 


"워 야오 츨 챠오판. 칸칭 짜이 날?"


물론 발음이며 성조며 문법이며 완벽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았을 터이나, 직원분은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왼쪽 편 끝을 가리켰다. 그렇게 아침밥을 먹으며, 고생스럽고 긴장되는 와중에 나는 흘러넘치는 기분 좋음을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역시 경험을 통해 고생을 하게 되면 배우게 되는 점도 많은 게 진리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음식을 꼭꼭 씹어 먹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어제 기억해두었던 카운터로 가서 웨잇 리스트를 달라고 하고 펜을 집어 들었을 땐 내가 당연히 첫 번째, 웨잇 리스트 1등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자그먼치 네 번 째였다. 당황해서 3초간 어버버 하다가 평균적으로 웨잇 리스트 중 몇 명의 사람이 티켓을 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3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싶었지만 다 뜻이 있는 거겠지 하고 이름을 적고 돌아섰다. 시간은 오전 7시 20분. 비행기 시간은 중국시간 오후 4시였기에 이제 남아서 흘러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해봐야 할 때였다. 이제 한 숨 돌리고 처음으로 베이징 공항을 여유 있는 눈으로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화려한 장식들과 정- 말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층위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곳에 떡하니 "CJ"라고 쓰여있으니 괜스레 반가웠다. 호텔에서 식당가는 길을 중국어로 물어보고 뿌듯해했던 나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구경해보며 짧게 혼자 배운 중국어이기에 단어가 눈에 들어올 때면 그- 렇게나 뿌듯했다. "오, 중국어 공부 헛으로 안 했는 데에~" 혼자 중얼중얼 웃으면서 돌아다녔던 나다. 단순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라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도 밥을 먹고 뭘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환전거래소로 향했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미국 돈을 중국 돈으로 바꾸려니 수수료가 더 들었고 나는 내 힘으로 돈을 벌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 말은 내 수중에는 가능한 일정 금액이 딱 정해져 있다는 뜻. 한 치의 아쉬움도 없이 환전거래소에서 등을 돌렸으니 배도 고프고 어느 한 곳에서 커피 한 잔 시켜두고 앉아있고 싶은 마음은 쉬이 내젓지 못했다. 그렇게 헤매고 헤매다 발견한 미국 브랜드 스타벅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미국 카드를 받느냐고 물어봤고 할렐루야!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자신들은 미국에서 발행된 마스터카드도 받는다고 설명해주었다. 한 시름 돌리고선 피로했던 만큼 달달하다고 유명세가 자자한 음료를 시키고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선 이 기분들을 깨끗하고 곧이곧대로 기억하고 싶어서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러다가 뭐가 되었든 핸드폰을 좀 쓰고 싶어 졌을 때에 중국분들이 영어 하시기를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아 많이 망설여지긴 했지만, 옆에 앉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에게 혹시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도 훨씬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고 미국 동부에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국가공휴일을 맞아 가족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라고, 그리고는 나의 이야기들을 듣더니 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라며 깔깔 웃었다. 


"근데 너, 생각보다 짜증스럽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는데 비결이 대체 뭐니? 나 같으면 완전 스트레스에 깔려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을 텐데." 


그 친구가 물었고,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럼 즐겨야 하지 않겠어? 나 지금 이렇게 중국어 단어 공부 하나하나 하면서 행복해하고 있잖아. 나 아무래도 중국어 공부를 미래에 더 길-게,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들으러 이 곳에 오게 된 것 같아."


놀랍지만, 나도 스스로 이 말을 뱉고 나선, 나 스스로 놀랐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그게 무의식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정말이지 그 상황은 내게 있어서 우울감과 스트레스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럼 뭐 대단한 게 있었냐, 그건 또 아니다. 난 그저 내가 중국에 홀로 와서 짧게나마 중국어를 구사하고 몇몇 중국 단어들을 책 속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보아도 현실감 있게 이해한다는 그 사실이 기뻤고, 그 기쁨과 뿌듯함으로 인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지 않았고, 나는 비행기를 운 좋게 오늘 타게 되어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으면 좋겠는 마음, 그뿐이었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페이스북으로 앞으로도 종종 소식을 나누자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항공사 플랫폼으로 향했다. 원래 비행기 이륙시간 적어도 1시간 전에는 무조건 수속하는 카운터를 마감하는 법인데 웬일인지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아, 정말 네 번째라서 안된 건가 하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직원을 찾았다. 그녀는 이제 막 수화기를 들어 나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너, 자리 나왔어! 근데 안타깝게도 오늘 공항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저 줄 다 기다리려면 못 탈 수도 있겠다. 미안해,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행운을 빌게!"


이 인사와 티켓을 받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뛰어서 갔지만 고비가 나왔다. 그녀의 말대로 공항 수색대 긴 줄은 내가 난생처음 보는 인산인해였다. 이건 아니다는 판단을 했고 수색대 직원분께 30분 내로 비행기가 떠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그래서 또 다른 분께 도움 요청을 했고 또 거절을 당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세 번째 요청했던 직원분께서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으신 분들만 지나가는 통로로 나를 안내해줬고 그곳에서 나의 가방과 모든 것을 따로 수색해주셨다. "씨에씨에!"라는 말을 연거푸 하고 티켓에 적혀있는 게이트를 향해 또 모든 힘을 다해 뛰었다. 왜 이렇게 공항이 넓은지, 다음에는 베이징 공항에는 무조건, 꼭 여행하러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뛰었다. 게이트 문이 닫히기 직전, 그 멀리서 안간힘을 쓰며 뛰어오는 나를 보고 항공사 직원분께서는 기다려주셨다. 그 자리에 웃는 모습으로 서서. 너무나도 감사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서는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누가 잡아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을 잤다. 


이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면서도 스스로가 참 기특하다. 내 마음속 요술상자에 넣어두고선 나의 한계가 느껴질 때마다 꺼내보는 요술 구슬 같은 경험이다. 나는 맞닥뜨리면 뭐든 지 잘 해낼 수 있는 강인함과 용기와 지혜가 있다는 메시지를 스스로 되새겨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얻은 것은 역시나 이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정성을 다하여 도와줄 것이라는 다짐이다. 꽤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나는 더 늦어질 수도 있고, 더 무섭고 쓸쓸해질 수도 있는 일을,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로 해결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믿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나의 인생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분명히 모든 경험에서는 나에게 파생되는 크고 작은 영향들, 즉 교훈이 있다. 행여 내가 깊은 자만과 교만에 빠질까 봐 지혜롭게 내게 때때로 찾아와 주는 이런 경험들에게 고맙다. 진심으로. (진짜 진.. 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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