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최우선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남겨둔 참사이자, 전 세계 선원들의 주목을 받은 사고이다.
사고 발생 당시 전 국민의 관심과 기도가 팽목항으로 향하고 있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SNS에서는 크루즈에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이 이 사건과 관련된 포스팅을 올렸고, 세상을 떠난 승객 300여 명의 사망을 애도했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그들의 죽음에 마음속 깊이 슬퍼했고, 선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선장과 선원들의 사상 최악의 무책임한 행동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당시 제일 먼저 경비정에 올라탄 모습이 찍힌 동영상은 그 후 크루즈에서 안전교육을 할 때 악례(惡例)로 쓰일 만큼 유명세를 탔고, 그들과 한 나라의 국민이란 사실이 부끄러웠다. 대한민국의 선원이라는 자부심도 사라졌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했다.
단지 그들과 같은 직업을 가졌단 이유 하나만으로.
안전제일
길거리 공사장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표어이다. 우리는 이 표어를 보고도 공사장에 당연히 있어야 할 표시라고만 생각을 하지, 안전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깨닫지는 못하는 듯하다.
나 역시 승무원이 되기 전까진 화재, 전기사고, 자연재해, 교통사고 등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명 사고의 위험성에 무덤덤했던 건 사실이다.
승무원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승선 전 수료해야 하는 해양수산부 산하의 해양안전훈련 기관에서 안전교육을 받고 나서야 안전의 중요성, 사고의 위험성을 느낄 수 있었다.
Safety is the first priority.
안전이 최우선이다.
승무원은 승선한 당일 제일 처음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안전교육의 시작과 동시에 교육관 하는 가장 첫 말이 바로 Safety is the first priority이다.
크루즈 승무원의 안전교육을 마치고 나면, 마치 아주 무서운 재난영화를 한편 본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최악의 상황, 과거의 사례 등 안전을 책임지는 선내 Chief safety officer(안전책임 사무관)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승무원을 교육시킨다. 그만큼 안전은 중요하며, 사고의 가능성은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알려주려는 것이다.
승무원들의 안전 교육이 끝나면, Chief safety officer(최고 안전책임자)와 Captain(선장)의 주도로 Guest muster drill(승객 안전 훈련)이라고 하는 승객들의 안전훈련이 실시된다. 배가 떠나가리만큼 크게 울리는 7번의 짧은 알람에 이어서 1번의 긴 알람은 아무 말을 덛붙이지 않아도 이 소집 경보음 그 자체 만으로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를 알려준다.
띠, 띠, 띠, 띠, 띠, 띠,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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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집 알람이 크루즈 안에 울리면, 전 승객들은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본인들의 Muster station(마스터 스테이션: 소집장소)으로 이동해야 한다. 각자의 소집장소는 각자의 Seapass card (시패스 카드)에 인쇄되어 있다. 승객이 소집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선내에 있는 전 승무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승무원들은 각자 Emergency card를 지니고 있다. 그 카드에는 위급상황이 발생하였을 시 맡은 역할, 소집장소 등에 대한 정보가 나와있다. 승객의 Muster station에서 소집된 승객의 인원수를 체크하는 승무원, 소집장소를 찾지 못하는 승객을 도와주는 승무원, 객실에 머물러 있는 승객을 찾는 승무원, 라이프보트를 운전할 승무원 등 각 승무원의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알람과 동시에 승무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Seapass card(시패스 카드)는 체크인과 동시에 지급되는 카드로서, 승객 한 명당 한 장씩 본인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 카드이다. 시패스 카드의 용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방키로도 쓰이고, 시패스 카드와 신용카드 및 현금 계좌를 연결할 수 있어서, 선내에서 면세점 구매, 레스토랑 비용 등 소비를 할 때 시패스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또한 시패스 카드에는 Dining room(다이닝룸: 정찬 식당)의 테이블 번호 및 식사 시간도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Muster station(머스터 스테이션: 소집장소)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는데, 선내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소집 알람이 울리면 본인의 소집장소로 즉시 이동해야 한다.
선내에 있는 모든 승객이 소집장소에 소집해야만 이 안전훈련은 끝이 난다.
안전훈련 앞에서 만큼은 승객은 크루즈로 휴가를 즐기러 온 손님, 앞으로 머물 기간 동안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이 아닌, 귀중한 생명을 지닌 사람이다.
그들이 만약 안전훈련 중 규정을 어기거나, 안전훈련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승무원은 그들에게 경고를 줄 수도 있으며, 그들이 충분히 안전훈련을 숙지할 때까지 교육을 한다. 그들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은 엄중하다.
왜냐하면 승무원에게는 크루즈에 승선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권리가 있으며, 승객은 이에 협조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안타까운 이유는 당시 선박에 있었던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권리도 포기하고 일절의 노력도 안 했지만, 300여 명의 승객들은 무책임했던 선원들을 믿고 협조의 의무를 지켰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행동을 보였던 당시 선원들의 행동이 전 세계 선원들의 악례로 쓰이고 있지만, 승객 협조의 의무가 낳은 참혹한 결과 역시 승객들에게 하나의 악례로 쓰일까 봐 겁이 난다.
나의 동료 승무원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선원들은 당시 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준 세월호 몇 명의 선원들로 인해 불거진 선원에 대한 불신을 회복하기 위해 지금도 더 많은 시간을 안전훈련에 시간을 쓰고, 그들을 대신해 반성을 하며, 선원의 자부심을 돌려놓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선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우리의 부모님도 자신 있게 본인의 자식이 자랑스러운 선원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지금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을 전 세계의 선원들을 위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