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영씨 May 17. 2017

3년간의 승무원 생활을 그만두며

끝남과 동시에 시작된 새로운 도전


2012년 10월. 

나는 3년간의 크루즈 승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하선을 하였다. 


3년간 총 6번의 포지션 변동이 있었고, 6명의 매니저를 만났다. 4명의 다른 룸메이트를 만났고, 페이스북에는 전 세계 300명이나 되는 크루즈 승무원 친구들이 생겼다.


3년이란 시간 동안 귀밑에서 댕강거리던 단발머리도 갈비뼈를 스칠 정도로 길었고, 살도 5킬로나 빠졌다. 


여러 번 크루즈선을 옮겨 탄 다른 승무원에 비하면 난 한참 부족하지만, 3년간 14개국 42개 도시를 여행했고, 그 사이 페이지수 부족으로 여권도 교체했다. 


달리기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25살의 나는 3년의 승무원 생활 후, 28살이 되었을 땐 스킨스쿠버, 수영, 서핑, 요가도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었다. 영어회화도 많이 늘었고, 중국어도 문제없이 술술 한다.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3년이란 시간동안 난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중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내 눈빛이다. 




3년 전의 나는 늘 방황하고, 길 위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와 같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다고 일일이 구구절절 운을 달 순 없지만, 흙수저라고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손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흙수저 중의 흙수저인 나는 은수저, 금수저들 사이에서 '나도 수저요!'라고 알리느라 바빴고, 그들의 틈에 끼여 수저 노릇을 하느라 참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에 만난 크루즈라는 바다 위의 천국은 내가 흙수저 인지, 금수저인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내가 튼튼한 수저인지 아닌지 시험했고, 튼튼한 수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회를 주었으며, 흙을 묻힌 수저이지만, 매일매일 닦으며 흙수저도 흙을 털어내고 닦아주면 광 이난 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광내기를 3년.


내 눈빛도 빛이 났다. 




하선하는 날, 매니저가 직접 써준 손편지를 건네주었다. 호텔 지배인도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나영아, 다시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


10초간 꼬옥 안아주며 더 열심히 살 내 모습을 기대하겠다며 용기를 주었다. 

 

크루즈에서 내려 육지를 밟는 순간, 울렁거림이 찾아왔다. 몇 분간은 육지에 있지만 바다 위에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이 울렁거림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했다. 그렇게라도 바다를 느끼고 싶었었나 보다. 


내 눈빛을 찾아준 고마운 곳, 매일 바다를 보며 꿈을 꾸었던 이곳을 난 너무나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곳을 떠났다. 

바다를 더 많이 알고 싶어서, 더 깊게 느끼고 싶어서, 더 선명하게 보고 싶어서.  


이제 부턴 내 인생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기분 좋은 울렁거림과 함께! 

'Bon Voyage for my life!'





    


20편 정도 써왔던 바다 위 꿈꾸는 크루즈 승무원 매거진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3년이라면 직장생활에선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기간이지만,  정말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크루즈 승무원이 되고자 제 사활을 걸고 도전했던 첫 직장이자, 그곳에서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았던 곳이자, 하선을 한 뒤 계속해서 제가 크루즈산업에 종사할 수 있게, 지금은 제가 상해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입니다. 그 시간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제 스스로 그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며 지금에 안주하고 있는제 자신에게 따끔한 충고도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3년의 승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크루즈 여행사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여행사에서 크루즈 기항지 관광 상품 개발, 고객관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해양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국제 해양법을 석사학위로 선택하여 공부했습니다. 바다 위의 질서, 제가 머물렀던 크루즈라는 집이 바다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다른 집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바다를 떠난 지 2년째, 바다 위에서의 크루즈와 육지에서 보는 크루즈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텔 같기도, 리조트 같기도, 회의장 같기고, 공연장 같기도, 종합 스포츠 센터 같기도 한 크루즈는 다양한 분야가 한 곳에 모여있는 복합 레저여행지입니다. 많은 기능들이 한 곳에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길로 전 여행사를 그만두고,  재작년 8월 제가 처음에 근무했던 크루즈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상해(아시아 지사)에서 그것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 상해의 움직임은 엄청나게 빠릅니다. 아시아에만 4척, 전 세계 25척의 크루즈는 보기에는 여유롭게 움직이지만 수 만 명의 사람들은 다음 항차를 준비하느라, 하물며 1년 뒤, 10년 뒤의 모습까지 준비하느라 그 뒤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변화하는 모습을 작은 움직임을 함께 지켜보고 있는 저에게는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 저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때로는 움직임이 더딜 수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준비하고, 고치고, 다시 준비하고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인생도 수많은 수정의 연속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 위 꿈꾸는 크루즈 승무원 매거진에 글은 더 이상 없지만, 저는 계속 바다와 꿈꾸고 있고, 바다 위 꿈꾸는 여행자로 크루즈 여행에 관한 글을 계속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이 와도 크루즈는 운항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