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관한 이야기
한국어는 김세현
영어는 Nayoung.
중국어로는 찐시쉬엔 金洗鋗
내가 서른 살이 되는 해, 엄마의 권유로 개명을 했다.
엄마는 내가 충분히 내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운이 따라주지 않아 앞길이 잘 안 풀릴까, 어렵게 자리 잡은 내 인생이, 잘 구한 직장이 혹여나 실패할까 걱정돼 한해 한 번씩 꼭 철학관에 가셔서 나의 운세를 보시곤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해에도 철학관에 가셨고, 이제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엄마 얼굴만 보면 자동으로 나의 생년월일, 탄생 시간을 노트에 적으시는 철학관 선생님 앞에서 엄마는 지난해에 물었던 똑같은 질문을 마치 처음 묻는 것 마냥 올해도 물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엄마에게 삶은 1 년 단위로 탄생, 소멸이 반복 재생되는 것만 같다.
김세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 지금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 학위도 빨리 취득하고, 금세 교단에서 펜을 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육자가 되며, 정치에도 입문해 나라를 의롭게 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다는 철학관 선생님 말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개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셨다. 새 이름과 운명을 바꾸는 희한한 이론은 이곳 철학관에서는 보편적이었고, 30년을 김나영이란 이름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생각했던 내 인생은 한순간에 불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백세시대에 남은 70년을 의롭게 살아보라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나도 교수 딸 엄마라는 소리 듣고 싶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담겨있었고, ‘그래 이름 따위야, 교수님이 된다는데 바꾸는 게 뭐 대수인가.’라며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엄마 눈에는 난 이미 교수님이었다.
30년간 김나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인생이 한 장의 서류로 김세현이라 바뀌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주민등록증, 여권, 통장 등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서류상의 이름을 김세현으로 바꾸는 데에도 하루면 충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명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주변에도 개명한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30년을 나영이라 불러준 가족, 친구들은 서스름없이 새 이름을 불러주었고, 오히려 “개명하고 나면 개명한 이름을 더 많이 불러줘야 잘 산데”라는 빼빼로데이 탄생비화처럼 철학관 선생님이 만들었을 법한 논리를 내세우며 김세현이라는 이름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더 많이 자주 불러주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의식적으로 새 이름을 불러주려 하였고, 무의식 중에 옛날 이름을 말하고 나선 “아, 미안, 세현아” 라며 정정도 해주었다. 오히려 나는 신경 쓰지 않는 내 이름을 더 신경 쓰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고 이런 상황이 재밌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신경써서 불러주면 교수가 되는길에 한걸음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새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나의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개명 후 인터넷상의 이름도 새 이름으로다 바꾸었는데, 지금껏 NAYOUNG이 이름이라 생각하고 불러왔던 친구들이 SEHYEON KIM로 바뀌자, 그럼 원래 너는 KIM이 이름이었고, NAYOUNG이 성이었는데, 결혼을 해서 남편의 성을 따라 SEHYEON으로 바뀐 것이냐며 물어왔다. 외국인의 이론도 참으로 일리가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개명을 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더니, ‘왜 개명을 하냐, 원래 이름이 얼마나 듣기 좋고 이쁜데 왜 바꾸냐, 범죄를 저질러서 과거 이름을 숨겨야 하는 거냐 등’ 열이면 아홉은 이해를 못하는 눈치 었다. 내가 교수님이 되고자 하는 희망에 개명을 했다 하자, 본인은 대통령이 되고 싶으니 무슨 이름으로 바꿔야 하는지 물어봐달라는 농담도 들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 듣기 좋은 이름, 태어난 해, 그 달의 특징을 가진 이름을 자기 아이에게 지어주는 외국인들 입장에선 이런 ‘인생을 바꾸기 위한 개명’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크루즈 승무원 생활을 하며 맺어 왔던 외국인 친구들, 사업 파트너와 같은 여러 인연들, 그 인연으로 또 만든 새로운 인연들, 인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큰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데 그 사람들과 이메일, 전화를 할 때마다 개명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만 몇 통의 이메일, 10분 이상의 통화가 필요했다. 또한 개명한 SEHYEON이라는 이름이 외국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발음이라 예전 NAYOUNG이 훨씬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개명 후 1년이 지났음에도 같은 행위만 반복하다 결국 김세현은 한국 이름으로 놔두고, 영어 이름은 NAYOUNG이라고 사용하기로 했다.
개명을 하고 2년 뒤 중국 상해에 왔다.
비서라는 직업 특성상 중국에서 공무원, 공산당원, 기업 임원, 국영기업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들과 만날 때는 영문 이름이 아닌 한자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金洗鋗은 김세현의 한자이다. 뜻은 씻을 세, 노구솥 현으로, 노구솥을 씻는다는 뜻인데, 이 한자를 중국사람들이 보면 한참을 웃는다. 사실 한국인들도 뜻을 들으면 웃기는 마찬가지이다. 洗라는 한자를 이름에 잘 넣지 않을뿐더러, 鋗이라는 한자도 중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에선 鋗이 Xuan(쉔) 또는 Juan(줸)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발음을 가지고 있는데, Xuan 보다는 Juan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사실 ‘현’이라는 한글 발음과 비슷하게 발음을 하고자 하면 Juan 보다는 Xuan이 더 현에 더 가까워서 Xuan이라고 불리는 것이 난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나를 소개할 때 김세현 金洗鋗(찐시쉔)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는 김세현도, Nayoung도, 金洗鋗으로도 불리지 않았다.
나는 사회가 지어준 또 다른 이름, 미스킴: 金小姐(찐샤오제) 혹은 김비서:金秘书(찐미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 역시 그들을 황 비서관, 마오 서기, 리우 부장님, 왕사장님이라 불렀고 기업가인데 어떤 직급인지 모를 경우에는 성 뒤에 사장님(总)을 붙여주면 10명이면 10명 모두 흡족해했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찐샤오제 라고 부르지 않는다. 처음엔 신기했다. 그들이 나를 찐샤오제라고 부르지 않는데, 나 역시도 루 부장님이라 부르기가 어색했고, 어떻게 서로를 호칭하는지 잘 들어 보니 직위에 상관없이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이라 주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계질서를 중시 여기는 중국인이 95% 이상인 사무실에서 어느 누구 한 명 사장님, 부장님이라 부르지 않는 환경이 어색했다. 그래도 외국계 기업이니 그런갑다하고 생각하고 과거 크루즈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졌던 기업 문화이기도 해서 쉽게 적응하고 지냈다. 나만 이상하게 호칭,이름에 신경을 쓰고 사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사장님과 우연히 밥을 먹으며 이러한 생각을 나누게 되었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한창 얼음으로 편하게 방어하고 있는 나에게 땡을 해준 것처럼 얼음처럼 얼어있던 생각이 갑자기 깨지는 순간이었다.
2009년 처음에 상해에서 판매 대리점으로 작게 시작하였을 때에는 직위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12명으로 시작했던 회사가 300명이 넘는 규모로 커지고, 판매 대리점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사가 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직위 이름의 소멸이라고 했다. 이유는 직위 이름이 가지고 있는 제한성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위계질서를 따라 직위 이름을 부르고, 처음 입사한 사원이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그에 맞는 대우가 주어지니 업무의 효율성도 높았다고 했다. 모두가 승진을 하고자 노력을 했고, 승진이 바로 본인의 노력과 업무 성공 여부를 보여주는 성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직위 속에 갇혀 직위에 맞는 역할만 하려고 하고, 직위가 마치 사회 계급인 마냥 회사 밖에서도 상하관계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보고 이를 없애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는 직위를 부르지 않게 되었고, 이름을 불렀는데,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업무에 대한 책임감의 강도를 나누기 위해 직위가 있는 것이지, 상하 관계를 나누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또한 직위로 직원을 부르면 마치 그 사람이 속한 부서의 일과 관련된 업무를 할 때만 생각나게 되는데, 직위명을 없애고 직원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는 오히려 그 직원이 잘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먼저 생각난다는 것이 사장의 이론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회사에서는 마케팅 팀원 중에 세일즈를 하는 사람도 있고, 세일즈를 하는 사람이 트레이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부서 내 미팅도 있지만 각자 다른 부서와 함께 하는 미팅이 대부분이고, 회사 내부에서 부서이동이 자유롭고 빈번하기도 하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2년 전 상해에서 면접을 봤던 때가 생각이 났다.
당시 상해로 오기전 직급, 업무로 많은 고민을 했었다. 비서직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라 사실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인 사장의 비서라는 것도 처음 잠깐 망설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지만 승무원 생활하며 외국인과 소통하며 지내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었던 터라 그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장님과의 최종면접에서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없냐고 물었고 난 전문 비서학과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비서직을 해본 경험이 없어 걱정이라고, 그래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시냐고 솔직하게 물었다.
사장은 웃으며, “비서이든 마케팅 부서 팀장이든 기본소양만 갖추어지면 전문성과 뛰어난 능력은 그 뒤에 스스로 터득하고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비서로서 회사에 들어와도 다른 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나는 네가 나의 비서로만 일을 하도록 한정 짓지 않을 것이다. 너 역시도 그러고 싶진 않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김세현이라는 사람, 브랜드를 보고 뽑는 것이지, 김비서를 뽑는 것이 아니거든. ”
학창 시절 친구들은 이름과 연관된 별명을 만들어 불렀다. 김씨면 김밥, 김치, 이름에 ‘영’이 들어가면 영구, 영자. 그 당시에는 원래 자기 이름에 어찌나 집착을 했던지 그냥 별명에 불과한데도 영구가 아닌 내가 영구가 되는 것 마냥, 김치라고 불리면 진짜 김치 냄새라도 날 것 같은 것 마냥 그 별명이 듣기 싫어서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친구에게는 더 유치하고 심한 별명을 만들어 불러주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서는 유치한 별명 보다도 나의 성격, 모습 그리고 희망사항을 대변해주는 이름을 찾았다. 한창 미드 프렌즈를 볼 때 푹 빠진 주인공들의 이름을 따서 영어 이름을 만들었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불러질 때마다 마치 내가 레이첼이 된 기분이었으며, 사회에 나와선 김대리에서 김 차장, 김 차장에서 김 부장으로 불릴 때마다 마치 나의 자존심도 같이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아내라 불러주면 주말에 짜장면을 시켜 먹자고 하려다가도 마트에 장을 보러 가야 할 것 같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 초월적 모성애가 생길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나’라는 사람을 잊어가고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에 바꾼 이름, 사회, 환경이 만들어준 이름으로 불리며 그에 맞는 역할을 소화하고자 살아가는 건 아닌지. 남들에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집착이 생각해보면 정말 나를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리는 이름에 개의치 않고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가 불러주는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스스로 나를 가치 있는 브랜드로 만든다는 것.
이것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