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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감자 Jan 22. 2021

코로나, 락다운, 개인성(Individuality)

봉쇄령이 내려진 영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작년에 나는 런던정경대학교 환경경제학 석사 프로그램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금세 사라질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제로 수치를 고면 영국은 많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였다. 그러나 나를 반기는 것은 마스크가 어색한 영국의 거리였다. 제대로 방영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걱정을 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세 차례의 봉쇄령으로 이어졌다. 


교수, 동기들과 자유로운 강의실에서 다양한 질문과 수업을 원했던 나에겐 아쉬운 점이 많았다. 심지어 런던의 생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갇혀있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수많은 과제와 해야 할 일 때문에 이런 답답함마저도 사치라고 느껴질 때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실망스러움은 뒤로 한채 다시 한번 왜 이런 사회가 이런 코로나에 대응에 취약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화 이전에 근대화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근대화란 무엇인가? 근대화는 우선 산업화와 연관 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대량생산시스템! 모직 생산의 증기 기계에서 시작된 이 체제는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상품을 사용하고, 똑같은 매점에서 옷을 사 입는 시대가 온 것이다. 즉, 유행이라는 것도 생겨나게 되고 한 사회를 통일시켜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유니폼'이 강조되는 사회가 온 것이다. 통계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사회 내의 평균이라는 것이 정해지고, 어떤 것이 기준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계량화가 오히려 개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사회의 평균 신장이 170센티라고 한다면 나는 170센티가 안 되기 때문에 키가 작은 사람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 입지만 나는 특별하게 한국 수제 옷가게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모든 과정을 압축시켜서 성장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이런 개인성보다는 공동체의 가치가 더 우선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90년대 생 이후부터는 이런 개인 존재 자체가 더 중요한 가치관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이런 공동체의 특성이 곧, 나를 대변하는 정체성이 된다. SNS만 보더라도 가장 유행하고 인기가 많은 게시물은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는 콘텐츠들이다. 물론 한국인이라는 것이 큰 정체성이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특징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 안에서 모두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큰 틀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짐작'한다. '네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라는 일반화는 자주 남발될 만큼 가볍거나 따뜻하지 않다. 


뉴욕과 런던이 서울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골목을 돌았을 때 마주하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흑인이 될 수도 있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다양한 정체성은 상대방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들며 너와 나는 분명 다른 존재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리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100% 이해할 수 없으니 다르더라도 존중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이 차이는 사실 사회의 운명과 개인의 미래를 연결하는데 때로는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타인을 배려하면서 혹은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방역지침을 지켜야하는 코로나 시대에는 상당히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어느 사회나 장단점이 존재한다. 본인이 속한 사회를 가족의 확장개념으로 이해하는 집단은 꽤 이타적이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세 침략이 많았던 한국사회의 특성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가끔 개인의 정체성을 앞서기도 한다. 그 어느 사회보다 평균과 상식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조금이라도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비해 스트레스를 배로 받게 된다. 영국사회에서 코로나가 많이 나오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미흡했던 초기대응, 미세먼지가 없어서 마스크를 한번도 껴본적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덜한 공동체 의식이 결합되어 지금의 런던의 봉쇄령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참고로 이 글은 주장도, 결론도 없습니다. 느낀 점을 공유하는 정도에서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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