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농축어민들의 마음과 사연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반짝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세상살이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채로운 삶이 휘황하게 섞여 있다는 사실과 같다. 과거 내가 농부를 인터뷰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말했을 때 몇몇 지인은 뻔한 이야기를 누가 보겠냐고 내가 핀잔을 줬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반박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너무도 다르다. 지금까지 수많은 농부의 이야기를 써왔지만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을 꿈꾸던 농부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농부, 사진가가 되고 싶었던 농부와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농부,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잊을 만큼 아주 오랫동안 농부로 살아온 한 인간과 가녀린 몸으로 혼자 수십 년간 작물과 삼 남매를 길러낸 여인, 자신을 키웠던 아버지의 토마토를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기른다는 청년 등등 결국 모두 땅에서 나는 것들을 길러 먹고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다양했고 그럼에도 일관된 깊이감으로 내게 감동을 주었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만날 농부들 또한 누구 하나 내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과 삶이 사랑스러워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땅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만을 다루려 하는 편이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방식이다. 애초에 이 작업은 말이 통해야 가능한 작업이니 한국어만 할 줄 아는 내게는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수입 농산물보다 우리 농산물을 더 사랑하는 것도 그래서고.
하지만 나의 사랑은 여전히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가면 갈수록 수입 농산물에 밀려 국산 농산물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배를 타고 들어오던 수입 농산물이 최근에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부쩍 늘면서, 수입 농산물은 이제 '신선함'이라는 우리 농산물 고유의 강점까지 손에 쥐고 나서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선박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항공 운송 비중을 늘리는 유통 업체가 많아진 까닭이다. 이마트는 최근 '극신선 항공 직송 수입 과일'을 선보이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고, 아예 극신선 항공 직송을 모토로 수입 과일을 유통하는 업체도 속속 생겨나는 중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기후·병해충 등으로 조금이라도 가격이 오를라치면 이름에 '금金'자가 붙으며 물가 상승에 주범으로 몰리는 국산 과일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안정적인 수입 과일은 마진율도 좋으니, 유통 업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많은 힘을 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수입 과일을 찾는 소비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자유무엽협정(FTA)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어, 수입 과일의 공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위기 속에 국산 과일 나아가 우리 농산물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부족한 나로서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품질 향상과 우리 농산물의 차별점, 우수성을 홍보해야 한다와 같은 형식적인 말은 허울뿐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하여 나는 고민 끝에 단순히 몇 개의 농산물을 소싱해 파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농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와 소비자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그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농부와 연결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우리 농산물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이 힘든 작업을 기꺼이 사랑으로 해 나갈 생각이다. 아직은 작지만 언젠간 거대해질 사랑이라 믿으면서. 이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이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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