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뜸 첫마디에 내게 말했던 문장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인연이 정말 있나 봐요.” 인연이라니. 형상은 없지만 분명 실재하는 그것에 수시로 마음을 내어주는 나의 성미를 그는 미리 알기라도 했던 걸까? 그는 이어서 그 말을 한 까닭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점점 확신에 찼다. 그는 분명 인연에 휘둘리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샤인머스켓 농사를 짓기에 앞서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고자 서점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정보를 찾지 못해 떠도는 시간을 하릴없이 늘려갈 때쯤 매대에 있는 작가님의 책을 발견했죠.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그 제목이 너무 고와서 홀린 듯 책을 들어 펼쳤고, 거기에서 샤인머스켓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참 신기하죠? 제목에 끌려 들었던 책에 샤인머스켓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책을 쓴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는 게. 인연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그의 설명에 나는 문득 인연이란 말이 좋은 핑계처럼 들렸다. 그와의 이런 운명적 만남이 인연이라는 단 두 음절로 설명되고 정리된다는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조금 더, 조금 더 길게 아니 아주 많이 길게 이 우연이 설명됐으면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기도 전에 만날 수 있었던 걸까. 앞으로 이어질 그와의 대화가 이를 설명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인연’이란 두 음절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우연을 장황하게 그리고 두서없이.
전성배 안녕하세요. 저의 두 번째이자 곧 첫 번째인 농부님. 반갑습니다.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던 약속 시간에 약 4분 정도 늦고 말았네요. 알람까지 맞춰 기다려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김민영 안녕하세요. 작가님. 괜찮습니다. 얼마 늦지 않으셨는걸요. 그나저나 두 번째이자 첫 번째라니 무슨 뜻일까요?
전성배 아, 이렇게 여성 농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건 제게 두 번째거든요. 나아가 이렇게 젊으신 여성 농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고요. 게다가 제가 농부님을 알기도 전에 농부님은 제 책을 통해 저를 먼저 아시기까지 했으니, 여러모로 농부님은 제게 시작부터 특별한 분이 되셨네요.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김민영 그렇군요. 영광입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제게 묻고 싶은 말들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작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젊은 여성 농부의 삶도 퍽 궁금하시겠죠. 저도 내심 이 대화를 기다렸으니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전성배 농부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탄없이 여쭤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공통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은데요. 농부님이 농부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물리치료사로 일하셨다고 들었으니까요.
김민영 네, 원래는 서울에 살며 물리치료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서른일고여덟쯤 그만두었죠. 오랫동안 해 오던 직업이기도 하고, 또 마흔을 코앞에 두고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지만, 그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게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도 되어 무모하면서도 무모하지 않게 그만두었습니다.
전성배 그게 ‘농부’라는 직업이었군요. 혹 부모님께서도 농부로 살고 계시나요?
김민영 네, 저는 김천이 고향이에요. 어머니 아버지가 김천에서 과수 농사를 하신 지는 약 40년쯤 되셨죠. 제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농부이셨다 보니, 저는 어릴 적부터 자주 부모님의 농사 일을 거들었답니다. 물리치료사가 된 이후에도 빈도가 줄었을 뿐 꾸준히 도와드렸고요. 그리고 그런 삶이 자연스레 농부라는 직업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마음에 두고 살게 한 것 같습니다. 이곳 김천에는 일을 그만두자마자 내려왔네요.
전성배 그럼 그때 바로 청년 농부 지원 사업에 지원하여 지금의 농장을 꾸리신 건가요?
김민영 아니요. 처음 일 년은 부모님의 포도 농장 일을 도와드리며 노하우를 터득하는 한편 농부라는 직업의 안정성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수입 과일과의 경쟁, 수익성, 인력 수급, 자연재해에 의한 손실 등등 부모님을 통해 일찍이 농사의 어려움을 뒤에서 봐 왔으니 잴 게 많았던 거죠. 또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직업이니만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고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농부가 되고자 내려왔지만 불안한 마음에 바로 되지는 못한 거죠.
하지만 얼마 안 가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몸 하나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굶지는 않을 직업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그 단순 명료한 해답이 다른 모든 걸 무마시겨줬어요. 결심이 선 이후에는 곧장 청년 농부 지원 사업에 계획서를 냈고, 선정된 후에는 작년에 독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른아홉부터 제 이름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네요.
전성배 서울에서의 삶이 많이 고되셨나 봅니다.
김민영 서울에 있는 동안 내내 5평 남짓의 원룸에 살며 일을 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곳을 탈출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삶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너무 불합리하지 않나요? 그토록 열심히 살아내는데 그럴수록 더 불안해지다니. 반면 농부란 직업은 적어도 불합리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분명 육체적으로는 더 고되겠지만, 농부는 제게 퇴근을 해도 끝나지 않던 삭막함의 반복을 끊어 주면서, 동시에 미래의 불안은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성배 잠깐 다른 얘기지만, 언젠가 제가 연재하던 수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여전히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명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주거 기준이 있음에도 그에 못 미치는 집에서 산다고. 그중 누군가는 주방에 화장실이 껴있고, 몸 하나 제대로 뉘울 수도 없는 미친 집에서 살고 있다고. 그래서 존엄사니 안락사니 하는 죽음에 대한 논쟁이 참으로 사오奢傲하다고. 지금은 그런 오만을 떨게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인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김민영 농부님이 농부가 된 게 개인적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제 기분이 다 좋을 정도로. 저는 그런 화딱지 나는 현실에서 빛을 내는 사람을 꼭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그와 말을 섞고 싶었고요.
하지만 이와 별개로 농부님이 농부를 선택함에 있어 부모님의 시선은 결코 탐탁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과거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 비약적으로 나아졌다고는 해도 고령층이 대부분인 농촌 사회에서 젊은 여성 농부는 여전히 기성 농부들에게는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민영 맞아요. 여성의 몸으로 홀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부모님과 더불과 당신과 같은 세대들에게는 많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비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미혼이다 보니 당시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여자 혼자서는 힘들다” “결혼은 해야지” 등등의 말을 질리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들 때문에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자라고 못할 게 뭐 있을까. 결혼은 자연히 인연이 있으면 하는 것인데 그건 또 왜 그리 독촉하실까.
물론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농경 사회는 일찍이 고령화로 신음할 정도로 나이들었고, 그 세대는 수십 년간 남성 중심적 사고를 갖고 살았으니까요. 따라서 그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농부로서 일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생계를 위해 막노동도 서슴지 않으면서 보란듯이 살아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전성배 농부라는 직업을 버젓이 갖고 계신데 막노동이라뇨?
김민영 말씀드렸듯 저는 이제 시작하는 농부이고, 저의 농장에서는 샤인머스켓과 복숭아가 이제 막 자라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직 변변한 수익이 없다는 의미인데요. 수확이 본격화된다고 하더라도 안정화되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때까지는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만 한답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청년 생계지원금이 있기는 하지만 농일에 보태는 데에도 빠듯하죠. 그래서 농한기에는 여러 일을 하는데, 주로 하우스 제작 일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전성배 하우스 제작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둘째치고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텐데요.
김민영 그래서 실제로도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남자분들입니다. 말씀처럼 힘도 많이 필요로 하고 노동의 강도도 높거든요. 당연히 제가 처음 현장 반장님께 찾아가 무슨 일이든 시켜달라고 말했을 때 반장님은 같은 이유로 저를 거부하셨어요. 여자가 하기에는 힘이 들고, 또 힘쓰는 일이니만큼 남자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 일이 아니면 당장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매일 현장을 찾아가 졸랐고, 결국 일하게 되었답니다. 그게 어느덧 일 년 전 일이네요.
전성배 남자들 사이에서 어느덧 일 년째 일하고 계시다니. 잘 해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김민영 그렇게 보이다니 다행이네요. 실은 이렇게 보이기까지 역시나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부터. 반장님의 말씀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는 걸 대번에 알았던 거죠. 진종일 밖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무거운 걸 들고 나르고 지지하고.. 그렇게 하루 종일 몸에 힘을 주고 있다 보면 저녁에는 팔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고요. 하지만 농부로 살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라 생각하면서. 또 나름 얻은 것도 있어서 여러모로 참 잘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성배 얻은 거라면?
김민영 ‘한계’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 적절할까요? 여자건 남자건 일평생 이리 고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는 건 자신의 몸 하나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고 또 해낼 수 있는지를 누군가는 일평생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거고. 저는 그 한계 즉 자신의 깜냥을 알 수 있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나와 상대의 차이를 알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죠.
전성배 문득 나와 상대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요.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세대 간, 성별 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등 종류는 무수하고 하나하나가 굵직굵직합니다. 여기서는 남녀의 갈등을 이야기해 볼까요? 그중에서도 임금과 직업, 직급 등에 대해. 저는 남과 여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사람을 가를 수 있는 건 다만 능력뿐이어야 하고요. 남자라서,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리고 그 능력은 한계 혹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성과로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이만큼 할 수 있다” “그는 그만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물증 없는 짐작만 하고 있으니,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맞춰 그에 걸맞은 보상과 역할이 주어졌을 때 사회가 비로소 평등해진다고 보고 있어요. 극단 주의자들의 갈라치기로 신음하는 오늘날, 농부님과 이를 공감할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자, 이쯤에서 분위기를 바꿔볼까요? 농부님은 이제 막 자신의 작물을 기르기 시작하셨는데요. 팔기 위한 마케팅 공부도 열심이지만, 그 이상으로 작물을 어떻게 잘 기를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민영 네, 농부들의 수익 증대를 위한 다양한 교육이 있어 최근 인스타와 블로그 등의 마케팅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건 내 작물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신감이라 하면 역시나 품질일 테고요. 지금도 물론 조금씩 나오는 저의 작물을 맛있다고 인정해 주는 분들이 계시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을 더 크게 만족시키고 싶고, 더 많은 분들을 만족시키고 싶습니다.
전성배 하.. 이게 무슨 일인가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기 상품에 대한 자신감을 먼저 갖추지 않으면 그 어떤 대단한 마케팅 스킬을 갖춰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는 없죠. 농부님께 샤인머스켓과 복숭아가 그렇듯 제게는 글이 그러해요. 우리는 일종의 자기 검열에 빠져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보다 더 나은 글을 선보이기 위해, 농부님은 보다 더 나은 작물을 선보이기 위해 계속해서 뜯어고치는 중인 거죠.
우리는 정말 인연인가 봅니다. 청년의 삶이나 한계에 관한 이야기, 자기 검열 등등 그간 저 혼자 생각하는 것에 그쳤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짧게라도 할 수 있다니. 오늘의 대화가 참 행복합니다. 이 행복한 마음으로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농부님은 꿈이 무엇인가요. 농부로서 김민영으로서.
김민영 우선 우리가 인연이라는 것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저는 인연을 많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의 외연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뿐만 아니라 작물로 맺어진 고객과 그리고 꿈을 꾸는 선후배로까지 확장되죠. 저는 농부로서 그 인연을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쌓고 쌓아갈 노하우와 생존법을 공유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 함께 상생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인연을 지속하는 방법 중 하나겠죠.
김민영으로서는 그런 인연들과 나눈 이야기가 산처럼 쌓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아주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실패하고 좌절했던 이야기까지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있고 싶은가 봅니다. 작가님을 포함해서.
언젠간 꼭 한 번은 말하고 듣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격화된 남녀의 갈등에 관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자기 검열에 관해, 살고자 하는 인간의 진짜 사는 이야기 등등. 분량이 얼마가 됐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싶었다. 누구와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섣불리 말했다간 미움을 받거나 욕을 먹거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으므로. 군인 시절에 인이 박이게 들었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을 10년이 넘도록 실천하며 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오랜 버릇이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것도 같다. 김민영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인연’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서로 똑같은 마음을 맞대었다. 어느 날 그의 눈에 띄었던 나의 책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와 어느 날 나의 눈에 띄었던 당신. 우리는 분명 보통의 인연이 아니다. 아니 그 단출한 두 음절로는 이토록 잘 맞는 우리의 만남은 설명하기 힘들다.
나는 앞으로 그와 아주 오래도록 알고 지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와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 묻는다면, 이 글에 담긴 대화를 들려주고 싶다. 인연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2022. 5. 17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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