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요즘 한창 떠들썩한 제주도로. 터무니없는 가격, 그에 조응하지 못하는 품질과 서비스, 공공재 사유화로 제주는 요즘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있다. “제주도 여행 갈 돈이면 일본을 가지”라는 말은 해가 갈수록 견고해진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 불리던 곳이 어느 순간 가성비는 고사하고 가심비도 안 나오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 아름답던 모습들이 모두 소모돼서, 이제는 가도 별 감흥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건 아니다. 여전히 아름답고, 이국적이고, 가만히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지금 여기서 아주 잠시 숨이 멎어도 상관없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실망시킨 순간부터 제주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아니게 되었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무엇이 되어 버렸다.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우니까.
그럼에도 제주도를 다녀온 건 나는 밉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먹여 살린 무엇이 여기에 있다. 내 첫 책의 한 면이 여기에 있다. 제주를 처음 찾은 건 스물일곱 가을이었다. 입동을 코앞에 두었던 때이니 겨울이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극조생귤이 끝나고 조생귤 수확이 본격화하던 때, 장사할 귤을 찾으러 갔다. 만나기로 한 농부는 청년 농부였고, 그를 따라 처음 귤밭에 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바람은 잔잔한 맑은 날이 제주에는 흔치 않다던데, 그날이 꼭 그랬다. 돌담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바람은 어깨를 툭툭 치듯 아주 천천히 불어왔다. 그리고 무거운 감귤을 흔들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나뭇잎만 겨우 흔들며 다시 날아갔다. 귤 밭 곳곳에는 긴 챙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잘 익은 귤을 따고 있었다.
그 풍경은 자연스럽지 못해서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아는 자연스러움에는 주황색과 초록색,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적이 없었다. 그게 내 눈앞에 조화를 이루는 게 인위적이었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하니 신기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처음 보는 갈래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로부터 몇 번은 더 제주를 찾았다. 감귤은 조생귤만 있지 않아서. 천혜향, 한라봉, 황금향 등등 같은 색깔과 같은 과로 나뉘는 것들이 맛도 모양도 달라서. 그러는 동안 내게 제주는 먹고살기 위해 오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잘 몰랐다. 이 귤과 함께 있지 않은 제주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맛일까. 먹고사는 게 바빠서 호기심은 금세 잊혔지만, 과일 파는 일을 그만두고 나니 다시금 궁금해졌다. 제주로 휴가를 떠난 결정적인 이유다.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끝나지 않은 장마로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어도 아름다웠다. 이동할 때마다 숨을 참듯 잠시 비가 멈췄고, 차를 대고 어딘가에 들어가면 그제야 다시 비가 내렸다. 한번에 몰아쉬는 숨처럼 대차게. 제주는 사려도 깊었다.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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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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