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헤어진 뒤 벌써 두 밤이 지났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 기다린 만큼의 시간이 또 지난 것인데요. 우리가 헤어진 뒤의 시간은 앞으로도 속절없이 지날 것이기에, 흘러갈 시간을 더 이상 세지 않겠습니다. 혹 아쉬운 마음이 드신다면 이해해 주세요. 저만의 결단이 아니니까요. 우리네 만남은 언제나 만나는 시간보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지 않습니까.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긴 게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인연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 그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까지 적층되어 인연이 견고해진다는 건 새삼 신기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긴 만남을 이리도 오래 지니고 살까요.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만큼 이별이 길었던 선생님을, 저는 어찌 이리도 반가워하고, 그리워했을까요? 저의 얕은 식견으로는 ‘추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뻔한 단어라서 사용할 때마다 닭살이 돋는 단어인데요. 그래도 이게 아니면 저는 인연을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두 번째 짝사랑이셨습니다. (첫 번째는 저의 배우자가 될 나리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담임이셨죠.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뒤에 저희를 만난 선생님의 모습은 여유가 넘치다 못해 약간은 짓궂어 보이셨습니다. 감히 선생님께 쓸 표현은 아니지만, 제 회상 속에서만은 부디 결례를 용서하세요. 선생님은 입이 크셨습니다. 그 큰 입으로 호탕하게 웃으실 때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선생님을 웃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했습니다. 당번을 자처하고, 수업에 더 집중하고, 착해 보이기 위해 양보와 희생을 생활화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점차 학급을 운영함에 있어 많은 부분을 제게 부탁하시고, 의지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더 바르고 착한 아이로 중학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네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이려 애쓰다 보니 미움을 샀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미움보다는 실망이셨을 거예요. 그날은 제주도 수학여행의 참여자를 조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수학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암묵적 의무 같은 거라, 학교에서 약간은 강제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스는 물론이고 때때로 전기까지 끊기곤 했던 저희 집 형편상 제주도행 경비는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었기에 저는 안 가는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정을 말하기엔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가고 싶기도 했고요. 비행기를 타 보고 싶었고, 제주라는 곳의 풍경을 보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움과 이기심은 결국 아버지가 경비를 주시기 바라며, 신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납부일이 다 되어감에도 아버지는 돈을 마련하지 못하셨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 남았을 때였어요. 아버지는 이번 수학여행은 취소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한 표정은 없으셨습니다. 그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제 눈에는 그저 매정하고 무책임해 보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수학여행을 무르기 위해 더 긴 시간 고민을 했다면 더 좋은 대답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창피한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닫고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는, 간단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답을 그때도 떠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망함과 분노로 보내다 선생님께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귀찮다고. 굳이 그런 돈을 쓰며 수학여행을 가는 건 돈도 시간도 아까운 일인 것 같다고. 선생님은 제게 많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시며, 저와 다른 의미의 노여움으로 퉁명스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교실로 돌아가.” 가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회복의 조짐 하나 없이 그렇게, 서먹해진 채로 남은 학기를 보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저는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 뵙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와 성인이 된 직후까지만 해도 동창들이 종종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가자고 했었지만, 그 서먹한 공기를 잊기에는 이별이 짧았습니다. 결국 그 한순간이 이토록 오랫동안 선생님과 이별하게 만든 거예요.
불편함을 그리움이 이겨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나서야 우리는 만났습니다. 이 일화는 사실 선생님에게 있어 아주 많은 아이들과의 사연 중 하나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게 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했던 분께 어린 마음에 큰 실수를 범했지만, 그게 실은 별것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 안도했어요. 긴 이별이 도리어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시절 내가 사랑하던 분의 눈빛과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영영 보지 못했을 그걸. 영영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남아 버릴지도 몰랐던 사랑을.
앞에서는 선생님과의 재회를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디 이번 이별은 그때보다 짧길 바라며, 더 반가운 얼굴로 인사할 날을 기다릴 것 같습니다. 그날이 오면 더 오래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싶어요. 그땐 선생님의 대답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보다 이별이 길어도, 당신을 이토록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있는 이유를.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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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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