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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사장 Nov 04. 2019

무엇이 소확행이냐

피천득, 인연


그 점이 눈썹 정도까지 옮겨 왔을 때 저는 처음 [인연]을 읽었습니다. 열세 살쯤 되었던 때일 것입니다. 덕분에 '오월'을 좋아했고 '찬물로 세수를' 자주 했습니다. 언제인가 꼭 비원에 가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선생님처럼 이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아버지의 유년 이야기를 지겨워하는 내색 없이 잘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필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다시 [인연]을 읽습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이 단어의 기원이 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에세이를 군 시절에 읽었었다. 그 책을 읽은지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대게는 무겁고 우울한 내용의 그의 소설과는 상반되게, 에세이에서만큼은 맥주와 재즈를 좋아하는 소탈한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천재성과 보편성을 넘나드는 그의 재주 때문에 우리는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왠지 그를 따라 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동경하는 하루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로 오랜만에 수필집을 읽었다. 사는 것에 치이다 보니 수필집을 볼 여유가 없었다. 는 것은 거짓말이고, 굳이 그런 류의 책이 아니더라도 읽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피천득이라는 작가의 수필집이었다. 성이 '피'씨라고? 일단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남다를 포스가 풍겼다. 그는 두부튀김을 좋아하는 하루키만큼 개인 취향이 확고한 이야기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의 방식으로 그의 삶에 구구절절 몰입하게 했다. 조금 소심하면서도 정이 많은 친근한 아저씨 같았다. 게다가 심각한 딸바보였다. 그의 아내나 아들들이 제법 서운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을 남기는 것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부터 '여운'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운이 남는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은 일회성으로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에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나는 여운이 남는 사람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나와 연을 맺는 사람들에게만큼은 그러고 싶다. 중요한 것은 여운에 남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충실하면 나는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여운이 남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노력한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마들 듯이' 수필은 씌어지는 것이다.


나는 '취향'덕후다. 오죽하면 가게 이름에도 취향을 넣었다. 취향은 종종 그 사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는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보다 한 가지 취향이 눈에 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취향을 가졌다는 것은 삶에 무언가 집중할 것이 있다는 것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sns의 세계에서는 '취향 흉내쟁이'들이 판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것에 깊게 파고들어 취향과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결부 지어 떠올릴 수 있게끔 체득화시킨다. 즉, 본인의 삶에 취향을 녹여낸다. 그들은 취향을 보여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으로 인하여 삶이 즐겁다면 그만이다. 


삶은 수필과 같다.


내 책들이 집에서 나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책, 영감을 주는 책, 의분을 느끼게 하는 책, 영감을 주는 책, 의분을 느끼게 하는 책, 그저 재미있는 책, 스피노자의 전기는 나를 승화되는 경지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음악이 있습니다. 위버는 나 보고도 무도회에 오라고 합니다. 스트라우스는 나를 비엔나 숲속으로 데리고 갑니다. 한밤중 총총한 별들은 저 아득한 성좌 그리로 나를 초대합니다.


책을 덮고 보니 문득 '삶은 수필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목표에 얽매여 너무 많은 것을 놓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행복에 대해서 '깊게', '자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이란 당시에는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 그리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정의내렸다.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또 다른 정의가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결론을 내린 뒤로 더 이상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이다. 주어진 것이라면 많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 뻔한 이야기지만 되도록이면 이런 것들은 자주 상기시키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나도 강력한 세상의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많은 서적들을 접하며 먼 미래에 삶의 초점을 맞추었다. 재테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리고 나약한 의지를 계속해서 다그쳤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끝도 없는 것 같아 가끔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반대로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인 '피천득 시인'이 그렇다. 주변에 소소한 것들이 그에게는 특별했다. 우리 또한 때로는 당연한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덧붙여 지속적으로 나다움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


무엇이 소확행이냐.


비 내리는 고궁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돈 300환을 내고 값이 있었다면 몇백 억이 될 그 넓은 정원을 혼자 즐길 수 있었다.


소확행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고 싶어서 시작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은 더욱 가치 있고 특별해졌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다르다. 삶의 모든 것들을 돈과 연관짓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 세대가 부르짖는 소확행은 정확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포기 선언' 같다. 하루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행복이었다. 피천득 시인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서영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인연에 대한 정을 끊임없이 적어내려 갔다. 소확행은 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잘 가꿈으로써 지난날에 포착하지 못한 의외의 것들에서 오는 것이다. 지나친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자. 주위를 잘 둘러보자. 아니면 밖으로 나가 이전에는 하지 않은 행동들을 해보자. 행복을 이제 그만 찾자.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노력하겠다.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 위하여 털신을 사겠다. 금년에 가려다가 못 간 설악산도 가고, 서귀포도 가고, 내장사 단풍도 꼭 보러 가겠다.

피천득 -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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