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보이 Jul 30. 2020

친한 친구가 벤츠를 샀다.

우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

얼마 전 전 대뜸 친한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야 나 차 뽑았다.

-오 축하한다! 어디꺼샀어?(궁금) 현대, 기아?

-비밀이야 크크

-?

-ㅋㅋ 조만간 보여줄게, 너 근데 주말에 약속 없음 울집 올래?


‘아니 뭔 차를 샀길래 저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야’



왜 그랬을까? 차를 샀다는 것은 분명 축하해줄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친구 놈의 간을 보는 듯한 태도에 내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가 작게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막 성냥에 붙은 작은 불빛처럼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난 답변을 듣기도 전부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날 것의 감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것은 분명 ‘불안’이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았어?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20대 중반에 함께 일본 유학을 했던 친구다. 도쿄의 8평짜리 남짓한 작은 방에서 1년 동안 좋은 꼴 더러운 꼴 다 보고 살던 정도의 막역한 사이이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나와는 생활 태도부터가 달랐다. 근검절약이 몸에 베여있었고 정말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았다. 반면 나는 사치까지는 아니지만 소비를 좋아했고, 당시 저축이라곤 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힘들게 번 돈의 작은 부분을 부모님께 보내드리기도 했다.


당시 우리는 낮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각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습관처럼 맥주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자 외로운 타지 생활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었다. 함께 잡히지도 않는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미래의 배우자들은 어떤 모습일지도 떠올려보았다. 어느 날은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쉼 없이 웃어대기도 했다. 그는 일 년의 어학연수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남아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졸업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귀국을 했다. 어느덧 사회인이 된 우리는 가끔씩 만나 그때의 생활을 추억하곤 했다. 중간중간 우스갯소리로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이야길 했다.



우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알랭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인 ‘불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성공의 척도가 꼭 ‘막대한 부’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대한민국 성공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꼭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도 없다. 게다가 우리는 흔히 나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주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듯, 나와 똑같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이 갑자기 나를 앞질러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 불안, 초조함에 쉽게 사로잡힌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 사람이 나보다 잘 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누군가는 상대방의 원대한 포부나 꿈에 온갖 저주를 퍼붓거나 재를 뿌린다. 그러한 발언에는 상대방이 끝까지 나의 친구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다소 절망적인 바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주말이 되자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온수역에 도착해 도보로 한 5분 정도를 걷자 아직 시멘트 냄새가 마르지도 않은 고층의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몇 년 전 청약으로 꽤나 커다란 경쟁률을 달성한 신형 아파트였다. 이 친구는 심지어 로또 와도 같다는 청약에도 운 좋게 당첨까지 됐다. 막상 실제로 완공된 아파트들을 보니 또다시 가슴 한편에서 작은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을 느껴졌다. 집 근처에서 마주한 녀석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뭔가 굉장히 설레여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기다리는 대상이 확실히 나는 아니었다. 서서 대화를 나눈 지 한 5분 정도가 지났을까. 200m 떨어진 곳에서 외제차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 녀석은 그 차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내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글쎄..



새 차를 몰고 온 직원은 몇 가지 간단하게 안내를 해주더니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막상 눈 앞에 근사한 외제차를 마주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왔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눈 앞에 번쩍번쩍한 외제차가 친구의 소유라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친구가 괜찮은 중견기업을 들어갔을 때도, 로또와도 같다는 청약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담담하게 축하해줬었건만.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와중에 힘겹게 운을 뗐다.


"야 축하한다. 부럽다!"


부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솔직히 정말 부러웠다. 눈 앞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벤츠’의 위용도 부러웠지만 마치 불꽃놀이처럼 연달아서 뻥뻥 터지는 그 친구의 운이 더욱 부러웠다. 이러한 부러운 감정을 드러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대게 두 가지로 나뉜다. 좀 더 자신이 이룬 업적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부류와 속마음은 아닐지언정 겸손을 떨며 주의를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는 부류이다. 내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이 친구는 후자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야 근데 진짜 너 덕분이야. 그때 너랑 같이 그 시절을 겪지 않았으면 이 차는 물론이고 취직도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 친구가 외제차를 산 배경에는 나의 공이 조금이나마 들어가 있음을 인식시켜주었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그가 외제차를 구매한 것에 있어 나의 역할을 없었다. 나도 안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듣자 가슴 한편에서 타오르기 직전이었던 불씨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지난날 어른들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들어왔다 '얘야 부러우면 지는 거야.' 진다는 표현 자체만으로도 이 나라 사람들이 과거부터 얼마나 비교에 쩌들어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 말 뜻을 정정하고자 한다. 부러우면 지는  아니다. 부러우면 그냥 부러운 거다. 부러운 걸 가지고 왜 굳이 진다는 표현을 사용해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들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그 불편한 마음이 우리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때도 있다. 나는 이 부러운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부러운 마음을 인정했다. 무언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인정하고 나니 그간 친구의 노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럽다는 말보다 '축하한다' '멋지다'와 같은 단어들이 나왔다. 물론 불편한 감정들을 마주하는 행위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내 안에서 기피하던 그 감정들을 인정하고 여유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가능한 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자. 장담컨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맞는 업(業)을 찾아 떠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