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창 Jan 11. 2024

Guess Who I Saw Today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기에, 잘한다고 해도 이러이러한 요소를 갖추면 노래를 잘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 쉽지 않다. 물론 클래식으로 가면 조금 상황은 다른 것 같긴 한데, 그들의 세계에는 커다란 극장의 뒤쪽에 앉아 듣는 이에게까지 노래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성량을 갖추는 것, 그러면서도 평생 노래를 지속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발성을 찾고 나면 얼마간 비슷비슷한 목소리가 되어간다. 


  물론 그 세계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 각자의 개성이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노래하던 프리츠 분덜리히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었고, 어쩌다 알게 된 오래된 가수 유시 비욜링의 목소리도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3대 테너라고 묶어서는 주빈 메타의 지휘아래 공연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실황을 어딜 가나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도 지적 허영이 작용한 건지, 그 셋 말고 다른 누군가를 최애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대의 대중음악에서 들리는 것만큼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대중음악에서는 각자의 개성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미덕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숨죽여 지켜보는 것이 대중음악에서의 가수인 것이다.  


  한 번 척 들어도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들이 있다. 수없이 많다. 스티비 원더, 휘트니 휴스턴, 브라이언 맥나잍.... 음정도 정확하고 거침이 없다. 그냥 타고난 것일지 모른다.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이 부르는 <Ben> 같은 곡을 들으면 저게 배워서 되는 게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카렌 카펜터라던가. 그녀가 부르는 <Close To You>, <Yesterday Once More>, <Superstar> 같은 곡들을 라디오로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하지만 레이 찰스가 왜 그토록 위대한 가수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창법이 독특하다고 하는 정도로 설명되기는 어려웠다. 그토록 <Georgia On My Mind>를 몇 번을 들어도 이상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건 밥 말리도 마찬가지였다. No, Woman No Cry, 하면서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노래이기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그저 내뱉는 탄식에 가까웠다. 사랑일 뿐이야, 하고 외치는 들국화 시절의 전인권도, 구름 저 멀리 해를 가리고, 하고 말을 거는 김현식도 똑같았다. <필라델피아>라는 영화의 O.S.T.로 처음 듣게 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나 닐 영도 그랬다. 분명히 이상하게 노래하는데,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휘트니 휴스턴을 들을 때에는 그런 혼란이 없었다.




  꼭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재즈 가수는 좀 다른 종류의 가수들인가 싶기도 하다. 재즈라는 음악이 즉흥 연주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재즈 가수는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가수여야 할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든 두비두밥, 하면서 스캣 솔로를 그럴듯하게 해내야 재즈 가수로 정체성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악기 연주자 뺨치게 목소리로 솔로 하는 재즈 가수들이 종종 나타난다. 저 옛날 엘라 피츠제랄드와 사라 본에서부터 요즘 시대의 시릴 에이미까지. 아니면 다이애나 크롤처럼 피아노로 솔로를 멋지게 해 버리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낸시 윌슨은 조금 애매모호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 스스로 '나는 가사를 전달하는 사람이지 스캣 싱어는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대중성을 쫓는 팝 가수라는 식으로 삐딱한 시선을 받기도 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이런저런 미사여구 섞인 칭송을 듣게 되었다. 


  어쩌다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된 Jazz Scene USA 1962라는 흑백 영상을 통해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었다. 아마도 TV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1962년이면 재즈 씬이 내적으로 쌓인 예술적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폭발하듯 튀어 오르던 시기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존 콜트레인도 그들의 대표작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넷 콜맨은 찰리헤이든을, 빌 에반스는 스캇 라파로를 만나 재즈의 어법을 각각 새로 정의 내린 뒤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낸시 윌슨의 재즈는 온건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방식으로 연주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저 안에 없다고 해도 마땅히 항변할 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팝 가수면 어떻고 재즈 가수면 어떤가 말이다. 이렇게까지 노래를 잘해 버리면 말이다. 듣고 있자면 갑자기 내가 영어를 제법 잘하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왠지 모르게 가사가 한 단어, 한 단어 씩 귀에 박혀드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와 재즈를 연주하고 싶은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나이가 많이 든 조니 미첼이 노래한 <The Man I Love>는 기가 막혔었다. 아니면 데미안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이 감정 과잉 상태로 울 듯이 노래한 <Don't Explain>도. 





https://youtu.be/npFMr0IGYJA?si=PJqNplKUqhHlKZ7O&t=947

Nancy Wilson이 노래하는 <Guess Who I Saw Today>


https://youtu.be/hng-V6zwaIE?si=MnZnst_nSmYsR3vL

Joni Mitchell의 노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재즈가 되어 버린다.



https://youtu.be/52lQ-5I279I?si=rvXUyGgyDvljggJH

저렇게 엉엉 울 듯이 노래하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