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연습한다는 것은 제법 길고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는 어린 시절에 이 음악을 접하고 연습을 시작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저처럼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이 음악을 배우려 한다면, 배움의 과정을 단축하고 싶은 조바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건너뛸 수 없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재즈가 종종 매우 신나기는 하지만, 가벼운 음악은 아니니까요.
백 년이 훌쩍 넘어가는 재즈의 역사를 통해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연주를 수없이 남겼습니다. 역사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 주변에서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또한 엄청난 숫자입니다. 마치 어깨를 단단히 걸고 행진하는 것처럼,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수준의 성취를 해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의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그들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수없는 시간을 골방에서 보내는 것이 재즈 뮤지션의 초창기입니다. 몇 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끝없이 음반을 듣고, 그들의 연주를 채보하고 따라 쳐 보는 것, 무한해 보이는 곡들을 외우고 또 외우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그럼에도 자신보다 훨씬 앞서 간 이들과 연주하는 순간에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그 기간을 보내며 한편으로는 단단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덤덤해집니다. 건조하다고 해야 할까요, 시큰둥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연주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연주를 하다 보면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듭니다.
처음 재즈에 매료되었던 때에는 함께 스윙 리듬을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블루스 프레이즈 하나에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하다 못해 권태로울 지경이 됩니다. 주변의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한다고 해도, 어느새 어떤 연주를 하게 될지 다 알 것만 같습니다. 적당히 잘 솔로를 하고, 적당히 흥분하는 리듬섹션과 늘 똑같은 연주를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연주의 현장에 감정이랄 게 있나 싶기도 하고, 만약 있다면 흥분, 그 하나만 남은 것도 같습니다.
그런 연주를 이십 년 넘게 반복하다가, 어떻게 하면 로스코의 그림처럼 추상적이지만 철저히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연주를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말 가사가 담긴 노래라면 훨씬 더 전달하는 내용이 구체적이니 구상적인 면이 강한 음악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연주곡이라면 제목 외에는 창작자가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힌트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곡이 즉흥 연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더더욱 추상적인 경험입니다. 찰나의 청각적 이미지를 전달하고는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그 소리 뒤편에 어떤 거대한 감정 같은 것을 담을 수 있다면, 그래서 로스코 채플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게 되듯, 제가 연주하는 즉흥 연주를 들으며 숨이 멎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면 어떨까 늘 상상해 봅니다. 이런저런 스케일 연습이나 열두 키로 릭을 돌리는 것으로는 그런 세계에 도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관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연주가 가능할까요? 가능하긴 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