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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ug 12. 2020

지나갈 것들

<춘천, 춘천>, 장우진, 2016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ITX-청춘 열차를 타고 세 사람이 춘천으로 향하고 있다. 청년 과 중년의 남녀. 중년의 남녀는 서로를 이제 막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청년은 마음이 분주해 보인다. 그는 결국 중년의 남녀에게 짐을 봐달라고 하고 앵글 밖으로 나가버린다.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 세 사람에게 ‘고정된 것’이란 없다. 세 사람의 관계도 청년이 화면 밖으로 나가면서 흩어져 버리고, 중년의 남녀의 관계도 이제 막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사연은 모두 춘천에서 쓰이고 춘천에 남을 것이다.

  영화는 춘천의 공간 (춘천 마라톤, 소양강 댐, 청평사)을 공유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지현’(우지현) - ‘흥주(양흥주)와 세랑(이세랑)’ 순서대로 이어간다. 지현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춘천, 춘천>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이 뜬 후, 흥주와 세랑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구조다. 이 구성은 ‘춘천’, 그리고 춘천이 상징하는 ‘청춘’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는 청년과 중년의 다른 시선을 차례로 보여준다. 


  지현은 서울에서 면접을 보고 지금 막 춘천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에서 취업하기를 원하지만, 친구의 소개로 봤던 이번 면접에서도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낙담한 그와 술을 마시던 친구 ‘민중’(김민중)이 ‘서울에 회사가 얼마나 많은데, 너 하나 들어갈 곳 없겠냐’고 위로해도, 지현은 이렇기 미끄러진 일이 ‘한두 번도 아닌’ 현실에 더욱 막막하기만 한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공간은 재개발이 진행 중인 폐허다. 오랫동안 춘천의 풍경이었을, 그리고 그들이 자라오면서 보았을 춘천은 이제 무너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폐허가 된 과거에서 건질 것이라고는 팔아서 술 정도 사마실 수 있는 고물뿐이다. 

  지현은 춘천의 청춘이다. 그는 현재의 춘천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지현은 계속 되는 실패에 미래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는 서울에서 취직을 해 자리를 잡는 일반적인 삶을 절실히 바란다. 모두가 달리고 있는 그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삶의 단계에 편입하고 싶다. 아니면 하다못해 그것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달려갈 용기라도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는 끝내 편입하지도 뚫고 지나가지도 못한다. 그에게 놓인 가장 큰 과제는 ‘지나가는 것’이다. 지현은 불안정한 청춘을 어떤 방법으로든 지나가야만 한다. 

  지나가고 싶지만 지나가지 못하는 지현의 상황을 보여준 장면이 바로 ‘춘천 마라톤’ 장면이다. 민중과 밤새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 아침. 지현은 춘천마라톤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앞에 놓인 길을 건너가야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라톤 행렬에 결국 지나가지 못한다. 

  열차에서 지현과 함께 앉았던 중년의 남녀, 흥주와 세랑도 춘천 마라톤 현장에 있었다. 불륜 관계인 두 사람은 지현의 건너편에서 마라톤 행렬의 역방향으로 향한다. 그들은 모두가 따라가고 있는 삶의 라인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밖에서 둘만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행렬을 거슬러 걸어간다. 

  지현이 불안하고 막막한 청춘을 지나가는 일에 좌절한다면, 흥주와 세랑은 춘천에서 ‘지나간 청춘’을 추억한다. 그들은 지현보다는 훨씬 낭만적인 마음으로 청춘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지현이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았던 소양강 댐 앞에서 흥주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깊고 넓고 거대한 것 같았는데, 그런 느낌이 없네요.”라고. 그들이 세상에 치여 쪼그라든 만큼, 거대하고 막막하게 느껴졌던 풍경은 작고 초라해졌다. 

  지현이 경험하는 시간은 첩첩이 놓인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반면, 중년의 시간은 빠르게 시들어간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의 시간은 너무도 짧고, 마음은 빛이 들었다가도 금방 그늘이 진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지나가버리는 시간에 몸을 담그고 있기에 지나갈 순간들을 애써 붙잡지 않는다. 

  청평사에서 ‘지현’과 ‘세랑’은 기도를 한다. 지현은 청춘이라는 시간과 춘천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기를 기도했을 것이고, 세랑은 지금의 시공간이 멈추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흥주와 세랑은 사랑을 끝내기 위해 춘천으로 여행을 온 것이었으니까. 

  세 사람은 청평사에서 ‘사마귀’를 발견한다. 홍주의 말에 따르면, ‘사마귀는 계절이 가을로 바뀌면,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이 바뀐다.’고 한다. 흥주와 세랑이 본 사마귀는 ‘살아있는 초록색 사마귀’다. 두 사람은 지금 사랑이 이별로 변하기 전 가장 생생한 시간을 살고 있다. 반면, 지현은 ‘죽은 초록색 사마귀’를 본다. 그가 본 사마귀는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꼬꾸라졌다. 이렇듯 세 사람이 만난 서로 다른 사마귀는 그들의 상태를 보여준다. 흥주와 세랑은 변화의 직전에 서 있으며, 서로를 지나쳐 각자의 가을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지현은 자신이 변화에 편승조차 하지 못한 채로 땅에 처박힌 것처럼 느낀다. 

  지현은 댐 건너로 가는 배를 놓쳐, 면접을 소개해준 친구의 어머니네 가게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서 춘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종성’(모성민)에게 전화를 건다. 종성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던 음악을 관두고 서울에 취직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자빠졌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꿈을 잃고 살아가는 종성의 현재는 지현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꿈이다. 두 사람의 꿈과 현실은 엇갈렸다. 하지만 어딘가 처참하게 무너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만은 서로 공유한다. 지현은 종성의 노래를 듣고 싶다. 그가 꾸었던 꿈을 부르면서 자신도 퇴색되고 있는 꿈을 다시 그리고 싶다. 하지만 종성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이야기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유혹 뿐인 이 세상 위, 난 아무 쉴 곳이 없어”

  다음 날 아침, 돌아오는 배에서 지현은 갑판에 서 있다가 추위를 느껴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없고, 카메라 뒤편 위쪽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 그곳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그는 팔을 흔들어 본다. ‘누구를 부르는 몸짓’은 점점 더 커지지만 그가 몸을 뛰어 보아도 지현이 부르는 누군가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섬에 갇혀 하루를 보낸 지현과는 다르게 흥주와 세랑은 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다시 빠져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보낸 밤은, 세랑의 눈물과 흥주의 포옹으로 사랑의 농도는 더 짙어진다. 하지만 다음 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서 있다. 흥주가 예전 첫사랑과 했던 이별여행에서처럼. 예전이나 지금이나, 흥주에게 춘천은 사랑과 이별이 동시에 머물렀던 ‘묘한’ 곳이다. 세랑은 첫사랑과 가장 좋은 시절에 춘천을 찾았었다.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춘천에 두고 온 사랑에 머물고 싶다. 하지만 되돌아봐도 그녀는 계속해서 춘천에서 밀려날 뿐이다. 

  서울에 도착한 두 사람은 화장실에서 이별을 맞는다. 둘은 각자 화장실로 향한다. 흥주는 먼저 나와 서성대며 세랑을 기다리다 그녀가 나오지 않자 자리를 뜬다. 그리고 세랑은 끝내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흥주에게 춘천이 ‘묘한’ 이유는 그곳에 있었던 사랑과 이별 사이에 있던 ‘서성임’에 있다. 사랑이 지나갈 것임을 알지만, 혹시 붙잡을 수 있지 몰라서 주변을 맴돌던 마음. 그 마음을 두고 온 춘천은 언제나 그에게는 ‘묘한’ 곳이 될 것이다. 

  세랑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음으로써 과거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재에는 마침표를 찍는다. 흥주가 지나갈 때마다 감정의 꼬리를 남기는 사람이었다면 세랑은 지나갈 때마다 과거를 매듭짓는 사람이다. 그렇게 춘천에는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청춘’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고였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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