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s Oct 15. 2020

[OB'sDiary] 나의 라임 오렌지 고양이 03

6.5kg 짜리 우주

라임이는 내가 오늘을 살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제제의 가장 듬직하고 좋은 친구였던 밍기뉴가 어느 날 하얀 꽃을 피워내며 작별 인사를 건넨 것처럼,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인 라임이도 언젠가는 무지개 다리 너머 고양이 별로 떠나갈 것이다. 라임이를 만나기도 전부터 나에겐 그날을 떠올리며 미리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것도 습관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날 것이 아무리 분명해도, 그것이 아무리 두려워도, 내가 언젠가 겪어야 할 슬픔을 미리 예측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오늘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언젠가 찾아 올 그날 내가 가장 많이 갖게 될 감정은 ‘미안함’일 것이다. 내가 없으면 물도 밥도 챙겨 먹을 수 없는 저 연약한 생명에게는 아무리 잘 해줘도 부족한 것만 같다. 게다가 대학생이 되면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생겨 내 반려동물과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내겐 언제나 시간과 돈이 부족했다.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 내년의 내년의 내년으로 계속 유예한 일들도 참 많았다.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버려둔 날도, 나에게 놀자고 다가오는 라임이를 대충 달래주고 잠들었던 밤도 많았다. 그래도 늘 라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며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 각종 동물 이야기를 보고 울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라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다른 동물 이야기를 보고 울 동안 우리 라임이는 뭘 할까.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라임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라임이와 눈이 마주쳤다. 라임이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라임이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기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걸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달까. 내가 아무리 라임이를 사랑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이렇게 나 혼자 그 마음에 취해 울고 웃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일 뿐이었다. 내가 그러고 있을 동안,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라임이는 내가 집에 돌아온 후에도 나만 오매불망 쳐다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내가 많이 울게 될 그 날 오늘, 지금을 떠올리며 더 많이 울게 될 것이었다. 


그 사무치는 후회를 견딜 자신이 없어서 바로 스마트폰을 치우고 라임이에게 다가가 장난을 걸었다. 라임이는 바로 놀 자세를 취하며 내 장난을 받아준다. 그러다 가끔 나를 물어버리기도 하지만 아직 야생의 본능이 짙게 남아 있는 고양이라는 동물을 키우고 있으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잘 피해본다. 동공이 확장되고 꼬리가 두꺼워진 채 한껏 흥분해버린 라임이와 숨이 찰 때까지 놀아준 후 라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라임이를 쓰다듬었다. 그저 이런 날들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라임이를 돌보는 일 만큼은 내일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힐 죄책감을 줄이고 싶어서, 지금 내가 내 고양이를 맘껏 쓰다듬으며 편안히 누워 있는 이 순간을 최대한 오래 누리고 싶어서.


혹시라도 잊고 지나가는 날이 생길까봐 알람을 맞춰 두고 라임이의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라임이에게 장난감을 흔들었다. 외박과 늦은 귀가를 최대한 줄였다. 주말 중 하루는 무조건 집에 머물며 라임이와 오전부터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볕이 좋은 날 오전의 라임이는 나를 깨워 함께 거실로 나가 베란다를 탐험하며 광합성을 하고, 나와 함께 동물농장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가끔 스마트폰 액정에 비친 햇빛이 벽이나 천장에 다시 비쳐 움직일 때 그 빛을 잡기 위해 흥분한 채 쫓아다니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라임이의 뜀박질, 나를 웃게 하는 라임이의 채터링(*고양이가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 내는 독특한 소리) 소리를 더 많이 보고 듣고 싶다. 마치 부모가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자식과도 같은 라임이의 소중한 순간을 최대한 많이 포착하며 함께하고 싶어서 내가 오늘 라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걸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놀아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끔 화장실을 치워주는 걸 잊어버리기도 하는 불량 집사이지만 말이다. 


라임이 때문에 자취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힘든 통근을 이어가고, 라임이와 떨어져 살 수 없어서 통근이 불가능한 거리의 직장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지원조차 하지 않고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지금 네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짜 자식도, 사람도 아닌 동물 때문에 나의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자식도, 사람도 아니라서 더더욱 내 욕심을 더 내려놓고 싶어진다. 그때 엄마가 회사 다니느라 내 공개수업에 못 와서 속상했다며 울며 나를 원망할 수 있는 자식이 아니라, 집사가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집사를 기다리며 인간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고양이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보고도 쉽게 실천하지 못한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나와 사느라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견디고 있을 고양이를 위해서. 또, 언젠가 꼭 하게 될 후회를 최대한 덜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내 일상이 서서히 변화해온 걸 떠올리며 새삼스레 실감한다. 저 (고양이 치고는 크지만)작은 고양이가 나에게 몰고 온 세계가 참 커다랗다는 걸. 고양이를 위한 선택을 하나 늘려갈 때마다 나는 수많은 격언들이 말하는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 같다. 정답은 없는 인생에 정도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라임이를 위해 내가 선택한 삶의 자세가 이끄는 길들이 그렇다. 내 외로운 밤을 채워주길 바라는 지엽적인 마음으로 들여놓은 작은 생명체는 10년 동안 나에게 그 어떤 사람도 열지 못했던 차원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앞으로도 이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다. 


라임이와 함께 하는 매일엔 그저 우리가 모두 살아 맞이하는 오늘을 충실히 함께 하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다. 지금까지 흐른 10년보다 앞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더 촘촘히, 충실하게 쌓여가면 좋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마트폰 화면 대신 라임이를 바라보고, 점점 그 어떤 장난감에도 즐거워하지 않는 라임이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라임이가 나를 덜 기다리고, 더 많이 뛰어다니며 행복해하는 세월이 나와 라임이의 미래에 흐르길 바란다. 

 

오늘도 내 배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고 있는 이 고양이를 보며 행복을 손에 쥐어본다. 사랑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나의 고양이. 나의 전부.  







작가의 이전글 [OB'sDiary] 나의 라임 오렌지 고양이 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