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차차차
모든 작품은 저마다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그 아우라를 결정 짓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작품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햇살처럼 내 일상을 비추고 있는 작품이 있다. 딱 작년 오늘 2021년 8월 28일에 만난 이 드라마를 또 한번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오늘까지 내내 품고 살았다. <갯마을 차차차>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을 보며 분명 쟤 또 갯차 얘기 하네, 할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갯차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멋지게 나와서는 아닐 테다.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봐 왔고 가끔은 배우를 좋아해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드라마를 오랫동안 돌려보며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 건 처음이니까.
아마 그건 갯마을 차차차가 따스한 햇살 같은 작품이라서, 이 작품에 땀과 눈물을 쏟아 넣은 모든 사람의 진심이 가리키는 방향이 같아서, 그 방향이 바로 내 인생이 향하길 평생 바라온 것이라서, 그곳에 사람을 향한 다정한 시선과 사랑이 있어서일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기획 의도의 가장 첫 문장으로 배치해 놓은 드라마 답게, 갯마을 차차차는 내내 사랑만을 외쳤다. 그렇다고 그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세기의 사랑 같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강원도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작은 바닷마을이 부모의 품인 양 그곳에 폭 안겨서 살아온 남자와, 바닷가에서의 추억을 맘 한편에 품고 살지만 대도시의 편리함이 더 가치 있다 여겼던 여자가 만나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사랑해가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소소하고 '슴슴한' 이야기 속에서도 두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며 우리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이라 답할 수 있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게 어쩐지 손해를 보는 일 같은 게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했다.
내가 그때 너를 더 사랑했다면, 그때 너를 조금만 더 기다려줬다면, 그때 당신을 조금만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면, 당신의 못난 모습을 조금만 더 견뎌줬더라면.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한 것을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때 내가 더 먼저 손 내밀지 못한 것에, 후회 없이 사랑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작품이라서 고마웠다.
서른이 되면 어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긴커녕 나도 모르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더 영리하게 앞서가지 못한 것 같아 동동 구르고 있던 내 발을 ‘차차차’를 추는 스텝을 밟을 줄 아는 발로 바꿔준 작품이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이렇게 살아도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 함께 춤을 춰 보지 않겠냐고 손을 건네는 이 드라마가 뭉클하도록 반가워서 참 기껍게 내 마음을 다 내어줬다.
‘함께 나아가자’는 이름을 가진 공진에서 함께 성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워 내 인생에도 그 박자를 적용해보고, 나도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기로 했다. 그곳엔 실수를 다그치는 엄격한 눈초리 대신 넘어져 뒤처진 이를 기다려주는 따뜻한 품이 있다. 늘 세상에 그런 마음과 온기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은 그렇지 않은 인생보다 훨씬 풍요롭다는 걸 알게 됐다. 돈, 명예, 성공이 아닌 사랑, 우정, 평화 같은 것들을 믿으며 살아도 된다고 자신할 수 있어서 매일을 진심 가득한 웃음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춤추며 사는 것, 그게 복잡하고 어려운 인생을 풀어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답이 아닐까.
다가올 앞날이 늘 두렵고 아무리 살아도 인생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불안한 생이라 해도, 근심과 슬픔이 닥쳐올 땐 그저 내 곁에 있는 이와 다 함께 차차차를 춰 보면 된다. 그것 하나만 알고 있어도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 행복지기 위해선 세상 전부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걸 깨닫게 해준 이 드라마 덕분에 난 앞으로 내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하늘이 참 아름다운 오늘이었다. 마치 오늘의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서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뜻한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아직도 공진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고 있다. 참 신기하다. 이렇게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드라마 위에 사람들의 마음이 덧입혀진다.
처음엔 때로는 진주알보다 햇볕에 반짝이는 모래알들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작가의 손짓에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진심을 담은 채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의 인생을 물들였다. 그 진심의 모양과 크기는 모두 다를지언정, 진주보다 빛나는 모래알을 사랑하는 따뜻함은 모두 같아서 갯마을 차차차는 햇살 같은 드라마일 수 있나 보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그 아우라는,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홍반장의 눈빛과 인생이 내게 거는 말들에 답하고 싶어서 계속 글을 썼고, 갯차를 더 깊이 알고 기억하고 싶어서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사서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들었다. 여전히 갯차는 내 밥친구고, 지친 일주일의 끝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갯차의 1주년을 축하하는 카페에 가서 모든 피로를 잊고 행복해졌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 드라마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이 글을 쓴다. 이렇게 나도 갯차의 햇살 같은 온기에 작디작은 빛이나마 더할 수 있다면 나는 또 어제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
갯차, 바이칼 호수만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