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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Apr 16. 2021

밍밍한 취향으로 시작해서

한겹한겹 기록하기

- 나는 취향이 있는 사람이 좋더라.
- 어떤 취향?
- 글쎄, 나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에서 이상형을 물을 때 줄곧 취향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동시에 나도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스스로 분명한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각했다. 막연하게는 있긴 하지만 사실 구체적이지 않아서(또 시간에 따라 바뀌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싶을 때가 많다. 자주 쓰는 물건이나 옷은 심플한 게 좋지만 집은 맥시멀리즘의 끝이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만, 시끄러운 곳은 싫어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친해질 자신이 있지만, 애매하게 가까운 관계들은 불편하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지 내향적인지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몇년째 유행하는 MBTI가 나의 취향(혹은 성격)을 정의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세상 ENTJ가 다 나랑 같은 음식을 좋아할 것도 아니고. 한겹 한겹 내가 무슨 취향을 가졌는지 보자. 그래서 난 무슨 음식을 먹고 있더라.


위트빅스

식단을 관리하면서 최대한 음식을 깨끗하게 먹기 위해서 쿠팡에서 닭가슴살, 바나나, 훈제란 등등등을 사 먹는다. 주로 사 먹는 건 이 3가지고, 그때그때 보이는 음식을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담아서 먹어본다. 저번에 인상 깊었던 음식은 낫또였다. 겨자와 간장소스에 비벼 먹는게 인상적이었다. 최근 가장 꽂혀있는 음식은 위트빅스이다. 호주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던데 우선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1.2kg에 1만 원 정도. 파란색 배경에 시원하고 볼드한 폰트 때문인지 세탁세제같이 생긴 패키지에 Bar 형태로 위트빅스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들어보니 묵직하다.


생으로 먹기

보통 아몬드브리즈나 우유 등에 바나나, 견과류등을 함께 말아서 먹는다는데 이게 호주식 국밥인가보다. 다음 날 아침에 호주식 국밥 레시피로 말아먹으려 했으나 맛이 너무 궁금해서 뜯어서 생으로 하나 먹어보았다. 맛은 조미료나 당분이 첨가되지 않은 통밀 그 자체를 빻아서 얼기설기 붙여놓은 것을 씹는 맛이다. 고소한 맛 조금, 퍼석한 맛 가득. 


미스터 초밥왕에서는 좋은 초밥은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는 형태를 유지하되, 입에 넣는 순간 밥알이 흩어져야 좋은 초밥이라던데, 위트빅스가 약간 그런 느낌이다. 입에 넣자마자 퍼석. 손에 들고 있을 때 조금만 방심하면 가루파티다.


말아서 먹기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운동을 다녀오면서 아몬드브리즈 한 팩과 바나나 한 송이를 사왔다. 국그릇에 위트빅스 2조각 하루견과 1봉지, 바나나 1송이를 숟가락으로 잘라 넣고 아몬드 브리즈에 말았다. 비주얼이 정말 건강해 보이는게 #healthy 등으로 태그검색을 하면 보일만 한 모습이다. 이것저것 섞어 먹어보니 확실히 맛이 좋다. 견과류 맛이 가장 강하고 젖은 위트빅스가 단 바나나 맛과 함께 배를 묵직하게 채워주는 느낌이다. 포만감이 훌륭하다. 퍼석한 식감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아몬드 브리즈에 마는 순간 수분을 쭉쭉 빨아들인다. 잠깐 업무를 하고 다시 숟가락을 뜨려면 시리얼 형태에서 곤죽 꼴이 되어있다. 


아까 말한 낫또도 그렇고, 평양냉면, 닭곰탕 등 심심한 맛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밍밍한 맛이 입에 맞는다. 최근 3일은 연달아 먹었는데 물리는 감도 전혀 없다. 사실은 밍밍하다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인터넷 후기에서 골판지상자 젖은 맛이 난다(보기에도 그렇다)는 말과 호주에 오래 생활하신 팀매너지분께서  그거 맛없어서 꿀 잔뜩 뿌려먹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이게 다른 사람들에겐 다소 심심한 맛이겠구나 자각했다.


이유식으로도 먹는다며?

꿀을 뿌려 먹는다는 팀 매니저님께서 호주에서는 이유식으로 많이 먹는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우유에 젖은 위트빅스는 치아가 하나도 없어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촉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나 자극이 없다. 게다가 높은 식이섬유, 그리고 도대체 어떤 사유로 들어갔는지 모를 단백질까지 모든 영양소를 두루두루 갖추었다. 패키지를 훑어보긴 했지만, 저 무거운 상자안에 위트빅스가 몇조각이나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꾸준히 먹은 것 같은데 양도 잘 안 주는걸 보니 아직 먹으려면 한참 남았다. 당분간 탄수화물은 저 녀석으로 채워야겠다. 냠.


그러니까, 난 심심한 맛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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