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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Apr 18. 2021

등산로가 집앞에서 2분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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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산세권

서울대생은 아니지만, 관악산의 정기를 받으러 짬짬히 등산을 한다. 우리 집은 엄청난 산세권이어서, 집 앞부터 등산로까지 2분밖에 안 걸린다. (역세권을 포기’당한’대신 산세권을 얻었다.) 우리 집 앞 등산로는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로 향하는 여러 길중 하나이다. 연주대로 오르는 길은 몇가지가 되는듯 한데, 내가 걸어본 길은 2개이다. 하나는 우리 집 앞에서,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정문 옆길에서. 참고로 이 두 길은 완전히 정상을 기준으로 완전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서울대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계단이 잘 놓인 초급자용, 우리집 앞에서 오르는 등산로로는 바위 언덕 고지를 몇 번 오르내리락하는 도저히 집앞에 있으면 안 될법한 난이도의 암살용.


원래는 등산 싫어했고, 지금은 -

등산은 싫었다. 물론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시기가 길었지만. 산을 싫어한 이유는 군대 때문이었다. 각 잡고 하는 훈련이라 하면 그게 무슨 목적이 되었든, 산을 올랐다. 최소 2박 3일은 산을 지겹게 오르고 내리면서 맡는 흙냄새라던가 풀냄새가 지겨웠다. 내리막길을 걸을 때 발보다 조금 큰 군화와 발바닥이 쓸리는 느낌도 불쾌하고 답답했다. 


등산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사실 딱히 없다. 나는 산을 싫다고 스스로 정의했을 뿐이지 정의한 나와 실제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차이가 생겼고, 사실 정의한 것에 비해 딱히 산을 싫어하지도 않았나 싶다. 마침 나와 비슷한 나이의 2~30대 사이에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거부감도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등산 시작 당시 살도 뺄 겸 안 쓰던 몸을 좀 움직이자는 목적이 강했다. 지금이야 일주일에 6번은 헬스장을 가니까, 딱히 등산을 가지 않아도 운동량이 충족 되지만 등산을 처음 다닐 당시에는 군대 전역 후 몸을 숙성시키듯 전혀 쓰지 않고 있었기때문에 젓갈마냥 몸이 늘 절(쩔)어 있었다. 때문에 등산은 내 당시 라이프 스타일 중 가장 격한 활동이자 유일한 운동이었다.


아, 그런데 문제는 첫 등산로가 암살용이었다. 친구가 관악산 정상에 많이 올라봤다며(어릴 때)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해서 그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이렇게 집 앞에서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날 엄청 많이 탔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도 산 중턱에서 먹는 김밥이 맛있고, 모처럼 시멘트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과 바위를 밟는 게 재밌어서 다음에도 산을 올라야겠다 생각했다.

겁이 많아서 무서운 것은 싫다.

산에 분명한 취향이 있는데, 그다지 정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상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등산로는 다 싫다. 저번엔 여자친구와 속초의 울산바위에 올랐다. 울산바위는 설악산 코스 중 하나로 가장 높은 곳은 아니지만, 꼭대기가 나무가 적은 암석지형이어서 멀리서 보았을 때 존재감이 상당하다. 문제는 이 산을 오를 때다. 


울산바위는 완벽한 암살용이다. 아무래도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다보니 사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산의 꼭대기에 오를 수 없었을 거다. 해서 울산바위의 등산로는 땅을 밟고 오르는 구조가 아니라 바위 옆에 사람이 인공적으로 설치해놓은 철제 계단을 오르는 구조이다. 계단 사이로는 아래가 보이고, 난간 바로 옆에는 하늘만 보이고. 물론 제일 미스터리는 이 미친 구조물을 어떻게 설치하셨는가이지만 두 번째 미스터리는 다들 어떻게 겁도 없이 이런 산을 동네 마실 다니듯 쉽게 다니냐는 것이다. 다들 겁도 없는지. 정상에서 나와 여자친구는 바람이 너무 불어서 가장 큰 바위 아래에서 서로 붙잡고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었다. 함께 올라온 등산객들은 난간에 기대고 매달려가며 누가 가장 겁이 없는지 겨루는 대회 마냥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 등산한다.

요즘은 산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고 집앞 산책로 초입부터 주변 동네의 공원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자주 걷는다. 생각해보니 나는 산에 오르며 정상에 올라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산책로를 걸으며 느끼는 평화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시간대가 적당해서 햇살이나 바람이 적당하고 그날 기분과 텐션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흙길을 걸으면 많은 생각이 정리된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가치는 균형이고, 균형을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의 시간 배분이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스스로 충분히 수렴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사람들과 있는 시간에서 사고를 발산할 때 실수를 한다. 등산은 컴퓨터 앞이나 핸드폰을 들고 있던 순간과 다르게 완벽히 다른 영향을 차단하고 풀과 흙 그리고 나만 온전히 있게 도와준다.


그러니까, 등산은 정상에 오르기보단 길을 걷는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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