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겹한겹 기록하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한동안 퇴근 후나 주말에도 일하는 시간이 반복됐었다. 꼭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끊기지 않았다. 평소에도 일이 잘되고 있다, 혹은 집중하고 있다는 현상중 하나가 이렇게 일과 휴식 시간의 구분 없이 고민이 지속되는 상태여서 이 상태가 꼭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스스로에 대한 부담, 그리고 지속시간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는지 어제오늘은 약간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시 일하지 않을 때는 확실히 OFF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져서 오늘은 운동도 가지 않고 푹 쉬어야지 다짐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이더라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또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가 집중력이 깨졌을 때 리듬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쉰다는 의미가 뭐더라.
예전에 쉰다는 것은 넷플릭스를 보면서 맛있고 살찌는 음식을 왕창 먹는 거였다.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하면서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 넷플릭스에 보이는 콘텐츠들은 재생을 누르기에 너무 부담스럽고, 피자는 살이 찔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다.
실수가 잦았던 업무시간이 끝나가면서 퇴근 후에 뭐하지 계속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퇴근 후가 기대가 되는 게 아니라 퇴근 후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니. 이것도 나한테 업무였나보다. 결국에는 아무 성장 없는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공허할 것 같아서 근성장이라도 하기 위해 운동을 하러 나갔다.
운동은 참 묘하다. 처음에는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운동을 하다 보면 더 하고 싶다로 늘 바뀌어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반복된다. 오늘도 운동 스케줄이 절반을 넘어가면서 애당초 세웠던 계획보다 더 운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저녁 재료를 샀다.나름 식단을 하고 있어서 일반식은 되도록 안 먹는 편인데, 오늘은(사실 늘) 푸짐하게 먹고 싶어서 돼지고기와 새송이버섯을 샀다. 큰 단위의 쇼핑은 아니지만 당장 내 기분을 배부르게 해줄 음식을 묵직하게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 오늘 저녁에 운동하고, 저녁 재료 사서 맛있게 먹을 거야.’ 이걸 특별한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다음 날 직장동료에게 특별한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일까? 내가 생각한 퇴근 후에 뭘할지 계획은 무언가 특별할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목적은 충분히 쉬고 충만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이렇게 일상에 충실했던 것만으로 기분이 꽤 만족스러워지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그러니까, 퇴근 후에는 그냥 하던걸 하는게 맘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