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영 Mar 22. 2017

끝을 보았다

그날

난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릿속이 하얗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무엇이고 감당할 힘도 기운도 아무것도 없다

정신 놓지 말아야지, 만 생각하느라 분주하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른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떤 말도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난 잘못한 거 없다


내가 선택한 하루하루를 살았고 후회는 없다

아니, 어떤 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욕망에 충실히 하려고 애쓰고 애썼다

낯설고 무섭고 떨렸지만, 중독성이 높았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났고 확인했고 어쩌면 즐겼다

그냥 가보는 수밖에 없어서 그 길을 가봤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팽팽한 떨림이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 한다고 해도 그 순간 나는 했다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몸이 반응했고 고스란히 느꼈다

가슴 설렜고 떨렸고 미친 듯 웃었고 또 웃었다

안 쓰던 심신의 근육을 마음껏 꺼내어 써서 개운했다


달콤한 쾌감의 대가가 목 졸림이라면 받아야지 어쩌겠나

내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면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온전히 가질 수 있다면 감당하고 싶었다

목에 남은 손자국이 알려 준 나의 태도였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과 살 수는 없다

죽여 버리겠다고 목을 조르고 칼을 드는 남자였다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이 이렇게 죽는구나 했다

그저 그냥 아무것도 보지 않고 눈을 감고만 싶었다


내 기억의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남편의 외도에도 닿았다

아이들이 어렸고 결혼을 벗어날 자신이 없었던 그때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그 무엇도 참고 견디게 해 준 그때

그때 난 나를 죽이려고 했었고 죽였고 그래서 살았다


우린 이미 끝났지만, 오늘은 이제 진짜 끝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고 나도 참지 않을 만큼은 컸다 

내가 나를 죽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이 아니어도 남편이 아니어도 나로 살아도 된다


아이들?

그때 나를 살게 한 엄마라는 이름을 버려도 좋다

참고 견디는 이름이 엄마라면 그 이름을 놓고 싶다

내가 아는 엄마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모르겠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남편과 정리하고 싶다

다시 얼굴을 보며 눈을 마주치고 얘길 나눌 수 있을까?

제발 잘 헤어지면 좋겠다


바닥이다

인정한다

다 정리되면 난 뭐가 남을까?

결국엔 나를 만날까?



작가의 이전글 왜 그랬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