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난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릿속이 하얗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무엇이고 감당할 힘도 기운도 아무것도 없다
정신 놓지 말아야지, 만 생각하느라 분주하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른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떤 말도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난 잘못한 거 없다
내가 선택한 하루하루를 살았고 후회는 없다
아니, 어떤 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욕망에 충실히 하려고 애쓰고 애썼다
낯설고 무섭고 떨렸지만, 중독성이 높았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났고 확인했고 어쩌면 즐겼다
그냥 가보는 수밖에 없어서 그 길을 가봤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팽팽한 떨림이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 한다고 해도 그 순간 나는 했다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몸이 반응했고 고스란히 느꼈다
가슴 설렜고 떨렸고 미친 듯 웃었고 또 웃었다
안 쓰던 심신의 근육을 마음껏 꺼내어 써서 개운했다
달콤한 쾌감의 대가가 목 졸림이라면 받아야지 어쩌겠나
내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면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온전히 가질 수 있다면 감당하고 싶었다
목에 남은 손자국이 알려 준 나의 태도였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과 살 수는 없다
죽여 버리겠다고 목을 조르고 칼을 드는 남자였다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이 이렇게 죽는구나 했다
그저 그냥 아무것도 보지 않고 눈을 감고만 싶었다
내 기억의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남편의 외도에도 닿았다
아이들이 어렸고 결혼을 벗어날 자신이 없었던 그때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그 무엇도 참고 견디게 해 준 그때
그때 난 나를 죽이려고 했었고 죽였고 그래서 살았다
우린 이미 끝났지만, 오늘은 이제 진짜 끝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고 나도 참지 않을 만큼은 컸다
내가 나를 죽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이 아니어도 남편이 아니어도 나로 살아도 된다
아이들?
그때 나를 살게 한 엄마라는 이름을 버려도 좋다
참고 견디는 이름이 엄마라면 그 이름을 놓고 싶다
내가 아는 엄마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모르겠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남편과 정리하고 싶다
다시 얼굴을 보며 눈을 마주치고 얘길 나눌 수 있을까?
제발 잘 헤어지면 좋겠다
바닥이다
인정한다
다 정리되면 난 뭐가 남을까?
결국엔 나를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