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빈 Feb 20. 2017

뭐니뭐니 해도 소도시 여행이 제맛

포르투갈 여행기(5) : 신트라

당일치기? 이틀도 짧은데

보통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스페인과 묶어서 리스본, 포르투만 휙 둘러 보거나 그도 아니면 세비야에서 리스본행 야간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왔다 가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포르투갈에만 2주 정도 있을 계획이었으므로 비교적 잘 알려진 리스본과 포르투 외에 근교 도시나 이동 중 들를 도시들을 결정해야 했다. 일단 리스본 인 포르투 아웃이긴 했으나 리스본 다음에 어디로 갈지 숙소도 교통편도 전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리스본 근교 도시 중 가장 가볼만 한 곳은 역시 신트라(Sintra)다. 리스본 호시우 역에서 국철을 타고 30분이었나 한시간이었나. 오래걸리지 않는 곳이다. 호시우 역은 지하철 역과 기차 역이 위치가 달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척 헷갈리는데 우리도 호스텔에서, 길에서, 택시에서 몇번을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둘 중에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안나니 패스)

다른 사람들은 일정이 여유롭지 않으니 리스본에서 신트라와 서유럽의 끝이라는 호카 곶, 바닷가 마을 카스카이스까지 하루에 돌아본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버스 시간을 잘만 맞추면 가능은 하다고 하나 나의 여행 패턴을 고려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각이 나오지 않았다. 몇 안되는 여행기 중 누군가가 '나같이 느리게 여행하는 사람에게 신트라는 이틀도 모자랐다!'고 써 놓은 걸 보고 나도 용기를 내서 신트라에서 2박을 하고 3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신트라에는 페나 성과 무어 성도 있고, 호카 곶과 카스카이스도 다녀올 수 있으니 이틀도 짧으면 짧았지 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결국 우리는 호카 곶과 카스카이스도 가지 않았다. 느릿느릿 알차게 신트라를 누볐다.




한적한 숲길이 좋았던 헤길라이라 별장. 신트라는 당일치기로 들르는 관광객들이 많아 10시나 11시쯤 되면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떼로 쏟아져나오고 줄이 몇 십 미터씩 늘어진다.


무늬를 보아하니 너희 형제구나.




진짜로 여행온 느낌, 소도시 여행

정재찬 교수가 한 기고글에서 말했다. 영화 <시>에서 주인공 윤정희는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시로 써보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고. 영화에서의 의미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언젠가 버스 안이었나 지하철이었나, 파리에서 세느강의 다리를 지나는데 눈이 초롱초롱해서 강변의 야경을 눈에 담는 나와 달리 파리지앵들의 표정은 너무나 무심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고단함이 묻어있는 현실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강의 풍경이라야 동네 한강이 훨씬 폭도 넓고 웅장할 것이고 야경 또한 서울의 번쩍번쩍한 불빛이 훨씬 눈길을 사로잡을지 모른다. 외국에서 온 여행자라면 분명 감탄을 내뱉을 한강 다리 야경도 매일 지나는 나에겐 눈길 한번 줄 것 없는 퇴근길일 뿐이다. 어디든 일상을 보내는 곳에서는 그렇게 된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의 설렘과 일상의 권태가 한끗 차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주변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전엔 늦어서 뛰어 지나가기 바빴던 가로수길이 알고 보니 걷기 좋은 길이었고 원래 저기 있는 것인가보다 했던 남대문도 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700년 전 유적지니까.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고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에 씁쓸해져서 결국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상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기보다) 여행에서 일상처럼 보내는 게 더 좋다. 일상을 보내는 듯 하면서도 너무 유별나지 않은 적당히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그런곳이 나에게는 소도시다. 소도시 사람들은 일상을 살고 있지만 도시처럼 바쁘거나 야박하지 않다. 작은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동네에만 있는 것들을 소도시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트라 주민들의 삶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주었던 카페.




첫 에어비앤비 도전, 동네 맛집에서의 푸짐한 아침

신트라는 작은 마을이라 버스 배차 간격도 넓고 교통도 불편해서 기차역 중심으로 숙소를 알아보았으나 웬만한 괜찮은 곳은 다 차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에어비앤비에 도전하기로 하고 Lisa라는 호스트의 단독룸을 예약했는데, 기차역에서는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여행지에서 '역에서 도보 10분'은 때론 치명적이다. 심지어 언덕이라 여행가방을 끌고 올라가기에 꽤 힘들었고 한번 집에서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도 힘들어 이동도 무척 번거로웠다. 한편으론 기차역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바로 주택가라서 더 없이 아늑했다. 나무와 숲에 둘러 싸여 아침이면 차 소리 사람 소리가 아니라 새소리에 잠에서 깼다. 술 한잔에 취기가 오른 채로 남자친구 손을 잡고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골목길을 걸어 터덜터덜 같이 집에 가는 것도 또 막상 싫지만은 않았다.

소도시 여행의 여러 묘미 중 하나는 바로 그 동네에만 있는 맛집에서 먹는 소박한 한끼다. 신트라에는 기차역 주변에 수퍼마켓도 없고 우리 숙소에 조식이 제공되지도 않는데다가 주방도 쓸 수 없어 아침마다 카페에 음식을 먹으러 가야 했다. Lisa는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알려줬다. 처음엔 투털거렸지만 알고 보니 별것 아닌 그 카페 음식이 아주 근사했다. 샌드위치들이 하나같이 정성어리고 푸짐해 좀처럼 보기 힘든 퀄리티를 자랑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면 이미 오밀조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가정집에 온 것처럼 거실같은 홀의 작은 문 뒤로 방처럼 아담한 공간들이 이어진 것이 눈에 띈다. 손때 묻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친절하지만 과하지 않은 서빙을 받으며 아침을 먹었다.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아침을 먹으러 와 아이를 꺼내 놓자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나와 비슷하게 마음이 조금씩은 붕 떠있는 어중이 떠중이 여행자들과 함께 먹는 호텔 조식도 여행의 설렘이 느껴져 좋지만, 신트라 주민들과 하루를 시작하며 그 동네 사람이 된 듯 아침을 함께 먹는 그 기분도 좋았다.   



연어 샌드위치. 훈제 연어와 치즈와 비트가 듬뿍 들어갔다.


크기 또한 어마어마. 그리고 그날그날 달라지는 생과일주스. 저 날은 딸기였다.


그 카페 바로 맞은 편에는 신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도 있었다. 유럽은 도시에 있는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규모가 있어도 레스토랑마다 고유의 색과 취향이 묻어나서 재미있다. 여행책에도 나오고 길 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택시 아저씨도 한결 같이 추천하는 곳이라 너무 touristic place는 아닐까 했는데 여행자와 현지인들에게 동시에 인기 있는 곳이었다. 넓은 홀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브레이크타임도 없이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음식이 너무나 맛있어서 이틀 내내 먹었다. 워낙 바칼라우(대구)가 유명하지만 한번은 이름 모를 생선을 시켜봤는데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가 "그 생선 뭔지 알아? 먹어본 적 있어?"라고 물어봤다. 우리가 이걸 과연 좋아할런지 의문하는 듯한 말투였다. 도대체 뭘까 왜 물어봤을까,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엄청나게 궁금했는데 무지 크고 살이 많은 갈치 구이 한토막이 나왔다. "응 나 그거 알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먹어"라고 말해줄 걸. 좋아하는 남자가 나랑 같은 취미가 있다는 걸 알게된 것 처럼,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점점 더 반가워진다.

궁극의 맛의 절정 해물밥... 해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친구도 반해버린 맛. 한국에서 레시피를 구해 꼭 요리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지락 요리. 감자의 바삭함이 사진을 뚫고 나올것 같다.




무려 이것이 갈치. (사실 너무 커서 그런지 우리나라 갈치가 훨씬 맛났다.) 유럽의 저 알감자는 정말 쫀득하고 맛있다.




제대로된 수퍼마켓 보기 힘든 신트라에서 발견한 수퍼복 미니. 심지어 스타우트 미니! 다른 데에선 보기 힘들었다는.
작가의 이전글 혼자 여행해야 할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