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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ul 14. 2022

집들이 선물, 오미크론

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긴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

2월 초에 시작했던 공사는 3월 말이 되어서야 끝을 봤다.


계약 전에는 공사 기간이 넉넉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장님께서도 막판에는 주말을 반납하셨고 최종 점검 전에는 밤샘하다시피 마감에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디자이언 황승호 실장님!




죽음의 마지막 주 스케줄


사실 우리가 겪었던 막판 일주일 스케줄은 말 그대로 '미쳤다' 스케줄이었다.


마지막 주 직전의 주말에는 사실상 공사가 덜 끝난 상태였다. 7일 후에는 정상적으로 입주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태일 정도.


"미쳤다. 이거 이래 가지고 입주 못한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날짜를 맞춰"

"빨리 이삿짐센터에 전화해서 이사 날짜 조정 가능한지 물어보자"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면 실장님이 말씀하시겠지, 기다려보자"


전기 공사는 당연히 안 돼 있었고, 문짝 조립, 부엌 환기 후드, 화장실 천장도 완성이 안 됐다. 마감이 덜 된 것이라 보기에는 공사가 마무리가 안된 느낌이었다.



마지막 한 주가 시작하기 직전 일요일 저녁의 모습이다.




계약 종료까지 남아있는 기간은 월/화/수/목 단 4일. 막판 4일은 죽음의 스케줄이었다. 


월요일은 공사 마감이 허락된 단 하루,

화요일은 입주 청소가 있는 날이었다.

수요일은 그동안 주문했던 가전제품, 가구, 이케아, TV 등이 배송 오는 날이었고,

목요일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라서 현장에서 최종 마감 점검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상 화요일 입주 청소가 끝나면, 다음날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마감 점검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제사가 끝나면 밤늦은 시간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목요일은 현장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계약서 마감 날짜 후에 잔금을 드리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무엇보다 최종 마감 점검을 하지도 않았는데 잔금을 건넬 수도 없어서 공사 하루를 남겨 놓고 마무리 점검을 해야 했다.


입주 청소 2일 전인데 아직 이랬다.




그런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도움 아닌 도움이었을까. 


아버지께서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버리셨다. 아버지께서 격리 해제가 되는 날이 하필 어머니 제삿날 밤 12시라서 제사는 다른 날로 미뤄졌다 (양력에서 음력으로). 그 덕에 마지막 날 목요일에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서 '여유 있게(?)' 점검을 진행할 수 있는 행운(?)이 뒤따라 왔다.


마무리는 대 합격. 하지만 점검이 끝나고서도 실장님은 끝을 모르셨다. 다음날에도 현장에 나와 마무리를 또 하셨고, 밤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멋진 현상 사진도 촬영해 내셨다.


"저는 사진 다 찍고 이제 불 끄고 들어갑니다."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

"내일 이사 잘하시고요."


그냥, 그렇게 공사는 끝이 났다. 너무 자주 가서 조금은 익숙해져 버린 새로운 공간. 이사를 온다 해도 어떤 느낌일지 가늠이 안 되는 날이었다.


부엌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짐이 들어오는 토요일이 되었다.


묵혀놨던 보관 짐이 하나둘 씩 들어왔다. 짐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잡지 속에서나 볼 것 같았던 우리 집은 금세 사람 사는 집이 되어버렸다.

책이 가득 차 버린 서재


이사는 모두 끝났지만 예전 집에 있던 여러 짐은 완전히 달라진 공간에서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리와 재 배치는 이사 당일 토요일 밤늦게 까지 계속됐다. 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요일 오전 일찍부터 이삿짐 정리는 계속됐다. 그날 저녁에는 드디어 아이들이 '입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몸이 녹초가 되도록 쉬지 않고 이삿짐 정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미뤘던 어머니 제사를 치르고서 새 집으로 향하는 길. 몸은 녹초였지만 빨리 새 집을 만끽하고 싶은 생각에 힘든 것은 잠시 잊을 수 있는 컨디션이었다. 그날 저녁에도 집 정리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점프하듯 새롭게 구매한 안방 침대에 누워버렸다.


"킁킁"

"역시, 아직 새집 남새가 나는 것 같지?"

"창문 조금만 열었다가 나중에 자기 전에 닫자."


하지만 눈 떠보니 해가 밝아져 있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많이 따뜻해진 4월 초였지만 밤바람은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는 시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 집에서, 새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몸이 약간 이상했다. 특히 찬 바람 맞고 잠 잔 사람처럼 목이 너무 따갑고 칼칼했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새로 고친' 화장실에 들어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하려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이 몰려왔다.


'에이 설마 코로나겠어'


두둥!


"으악!!!!"


믿을 수 없었다. 한 개 더 검사.


역시나 두줄이었다. 어찌나 독한 상황인 것인지, 시약을 뿌리자마자 그 즉시 테스터기는 색깔이 변해버렸다. 매뉴얼대로 15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던 것 일만큼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였다.


거실 화장실에서 출근 준비 중이던 와이프에게 조용히 갔다.


"여보, 아프던 몸은 어때."


사실, 이런 큰일이 닥쳤을 때는 호들갑을 떨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침착해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와이프에게 두 줄이 떴다는 것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와이프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보, 나도 검사해봤는데 당신도 혹시 검사해봤어?"

"... 엉. 두줄이 나오네.."

"헐, 나도..."





새 집에 입주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그날 즉시 다시 10일간 집에 돌아오지를 못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감염이 되지를 않았기 때문에 와이프와 나는 새 집에 감금되게 되었고, 새로 산 85인치 TV를 원 없이 조작하면서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덕분에 이삿짐 정리를 이렇게 빨리 끝낸 사람은 없었을 거라며 무탈하게 회복했지만 집들이 선물로 오미크론을 받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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