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상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휴가를 보내는 중입니다

어느 일상 무능력자의 여름 휴가

사진은 삼청동의 카페 쿠크에서 찍은 사진.  글과는 상관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방의 느낌과 비슷해서 :-)


오랜만에 여름 휴가를 냈어요.  그간 한참동안 무척이나 바쁘기도 했지만, 휴가에 딱히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지 않아서 내지 않았었죠.  ㅎㅎㅎㅎㅎ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긴 휴가 내기 보다는 그냥 하루 이틀씩 호캉스 다니기를 좋아하는 탓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튼 올 여름엔 아주 오랜만에 1주일 간의 여름 휴가를 냈습니다.  이번에도 별다른 계획은 세우지 않았어요.  "일단 침대에 딱 붙어서 잘거야.  전화도 뭐도 다 끊고 진짜 잘거야.  사흘 이상 잘거야."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일요일 하루는 정말 잤지만 월요일부터는 다 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올 가을에는 해야하는 이사 생각이 났죠.


이번 이사는 저에게 좀 특별해요.  이제까지는 거의 모든 일상의 일들을 제 옆에서 다 해 주시는 엄마가 있었는데, 올해의 이사는 엄마가 도와주시지 못하는 첫 이사거든요.  이제는 제 일상을 다 챙겨 주시기에는 엄마가 너무 나이가 드신 것 같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와~  역시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 표는 엄청 크다는 말이 진짜인 것이,  저는 이제까지 제가 이렇게나 일상 생활에 대해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학교 다닐 때는 공부만 하고, 회사 다니면서 부터는 회사만 다녔던 것 같아요.  이번에 이사를 하려고 생각하니 정말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집에서 나와 혼자 산 지 십 수년이 지났는데도, 하다못해 가구 하나도 제 손으로 산 적이 없었더라고요.  


휴가를 내고 침대에 누워 저~쪽 책꽂이에 잔뜩 꽂힌 책들과, 신발들, 선글라스들, 옷들, 그리고 이 회사 저 회사에서 나온 각종 iOT 기기들, 인형들과 기타 등등등을 보고 있다 보니, '와~  나 이거 어떻게 다 싸 짊어 지고 이사를 가야하지?' 라는 물음표가 머리 위로 쓩 떠올랐어요.



그런데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어떤 외국 워킹맘의 Kitchen restock reels를 봤어요.  우와~  정말 눈이 휘둥그레!!  진짜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냉장고와 팬트리의 비어 있는 용기들을 척척척 채워 넣는거죠?   이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나니, 아시죠?  인스타그램님의 추천력!  이후에 reels 를 넘길 때 마다 몇 개 걸러 하나씩 이런 Kitchen restock 영상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좀 더 계속 보다 보니 이제는 weekend clean house 영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잠깐동안 세계의 살림왕들의 솜씨를 둘러 보게 되었는데요.  어느 순간 '아! 이게 일상을 챙기는 일이구나~  일상을 챙기는 것이란 매우 중요한 일이겠구나.  내가 그동안 굉장히 오랜 시간 살면서 일상을 챙기는 것의 중요함을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벌떡 일어나 제 방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바쁘다는 생각 뒤로 미뤄 놓았던 제 일상의 짐덩어리들에 대해서 말이죠.  사실 살면서 차근차근 매일매일 잘 챙겨가며 지냈다면 이렇게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그리고 저 인스타그램 속의 척척 살림왕들처럼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조금씩 정리해 가면서 지낼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어쨌든 오늘은 저에게 역사적인 날이에요. 사실 척척 살림왕들이라면 별 일도 아닐테지만 머리 속이 너무너무 복잡해지는 이 와중에,  그 어느 것 중의 하나를 골라 잡아서 해 치워버렸고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일상이 좀 더 복잡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매니징하며 지낼 수 있을지 방법을 정리해 봤거든요.  지난 한 2년 간 엄마가 돌봐주지 못해서 처발처발 쌓여 왔던 일상의 짐들을 치워버리기 시작한 첫 날이 되었네요. 삶을 잘 매니징하며 지내오신 분들이라면 진짜 별 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굉장히 기념할 만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썼어요.  


그리고 오늘에서야 진짜 알게 되었는데, 오늘의 집은 정말 엄청난 서비스더군요.  저 오늘 머리 속이 정리됨과 동시에 순식간에 오늘의 집에서 어마어마한 자잘자잘한 살림들을 주문했고요. 그리고도 또 사고 싶은 물건들을 엄청나게 저장해 놓았어요.  진짜 역대급 카드 루팡 서비스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오늘 정말 실감하게 되네요.  그나저나 부동산은 또 어떻게 가는 것이며, 집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울 엄마와 잘 알고 지내신 부동산 사장님 만나러 가야겠어요.  아!  직방도, 집토스도 살펴봐야겠죠?  어쨌든 휴가는 참 좋은 것이네요.  남은 며칠 동안도 열심히 일상을 챙기는 법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 <꼬날이 간다 94번째 brunch. 끝> 


작가의 이전글 14분 안에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