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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어디일까

Find your real home

 잠시 한국이다. 2주 격리가 힘들듯해 안오려고 했는데, 11월을 건너뛰면 겨울엔 4차 팬데믹 웨이브가 올 것 같고, 그러면 내년 봄에나 한국에 올 것 같아 부모님께 얼굴이라도 보여드리잔 생각으로 왔다.

사람들의 반응은: 1) 쉬러 가는구나 좋겠다 (재택근무하러 갑니다...) 2) 어떻게 2주를 부모님과 집에서 있니 난 절대 못 있어 3) 지구상에서 한국이 최고지


내 심리는 2번 -------> 한국 좋아 --------> 나의 '집'은 어디일까


격리 3일. 코로나 검사차 보건소 가는 길


실은 9월~10월에 큰 우울증이 왔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원베드룸으로 이사를 했다. 사용공간은 예전보다 커진 반면 건물은 너무 더럽고 낡고, 매 시간 손잡이 소독하는 경비원도 없다. 집주인의 '비서'라는 홍콩 50대 여성은 퉁명스럽기 짝이 없고 컴플레인하면 빨라야 24시간 이후 짧게 답한다. 이웃 주민들의 행색도 예전에 살던 좋은 건물보다 초라하다. (남의 행색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떤 계층에 속한다'는 걸 실감나게 한다)

전에 있던 아파트는 바다를 면해서 습기가 지독했던 반면, 골목에 위치한 집에 오니까 햇볕이 안 들어 꽃이 금방 시든다. 조명 때문인지, 내가 인테리어를 잘 못해서인지, 집 어딘가가 우울하고 나의 내면도 어두워진다.

심지어 세 명의 가족이 사는 옆집은 문 열고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 걸핏하면 대낮에 문틈으로 담배연기가 스민다.


여기에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평생 안 겪어본 탈모가 왔다. 머리숱 많기로 미용실에서도 유명(?)한 나인데 6개월동안 4분의 1 정도 빠져 탈모방지 보조식품과 샴푸를 쓰고 있다.

집안에 생기를 주려고 화분들을  샀는데, 한국에 가자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화분 2개가 죽었다. ㅠㅠ
층간소음 언제 끝나냐고 물었더니 하루가 지나서야 '끝났다'고 답하는 집주인.

평생 별 관심이 없었던 '주거환경'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혼자 7평짜리 방에 산다고 가정하면, 홍콩섬에 살 경우 월 130~160만원을 방세로 낸다. 이직해서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벌나, 부업에 크게 성공하거나, 매우 부자인 남자분과 결혼해 넉넉한 살림을 차리지 않으면 내가 만족할만한, 즉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밝게 지낼 공간에서 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 어떡하지?난 이제 삶이 금방 변화하리란 기대가 없어. 이런 현타가 오고  갇힌 공간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는 듯 한달을 살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지금까지 Pride로 살아온 것 같아. 너는 처음부터 '홍콩'에 뜻이 있었던게 아니야. 그냥 한국을 벗어나, 가족을 떠나 너 자신을 시험하고 남들에게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그건 홍콩에서 버틸 충분한 이유가 아니야.

기분나빠하지 말고 들어봐. 너의 연료(fuel)는 이제 다 소모된 것 같아. 한국을 떠난 근본적 이유를 먼저 풀어.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말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풀어. 그러면 다른 이슈들은 처리가 아주 간단해질거야. 네가 업무능력이 부족하고, 집이 좁고 어둡고, 생활이 불편하고, 이곳 음식과 문화가 안 맞는 건 핵심 이슈가 아냐. 

너를 한국에서 떠나가게 한 원인을 먼저 최선을 다해 풀어. 그리고, 네 'home'이 어디인지 차분하게 생각해. 너가 주거하는 곳이나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네가 지금 원하는게 뭔지 몰라도 돼. 너의 기대수준이 명확히 뭔지 몰라도 돼. 하지만, 너의 '집'이 어딘지는 지금 잘 생각해봐."


외국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어떤가? 홍콩의 장점이라면 1) 글로벌 커리어 기회가 많은 곳. 2) 문화 다양성 수용도가 높은 곳. 3) 현재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좋은 인상을 가진 곳. 4) 현지인의 절반 정도는 영어가 통하는 곳.


하지만 홍콩은 여전히 내게 불편하고 말 안 통하는 '외국'이다. 나는 굉장히 언어에 의존하는 사람인데, 광동어를 모르니 현지인들의 말투나 뉘앙스를 읽을 수 없다. 물론 영어신문도 있고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나는 현지 고유의 언어를 알아야 그 땅에 비로소 발 딛고 그들의 감성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한국살이의 가장 큰 장점이 이커머스의 고객중심서비스, 빠른배송, 질 좋은 상품들일 것인데 홍콩에선 외국인으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이커머스를 사용하는 데 한국에서처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중국어를 모르면 가장 큰 쇼핑몰인 타오바오를 쓸 수 없으니 쇼핑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범위도 절반이다. 리하고 경제적인 소비생활은 실제 삶의 만족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홍콩의 청결 수준 - 일부 사람들은 '중국 본토인' 때문에 홍콩이 많이 지저분해졌다고 하지만 원래도 청결에 대한 인식은 꽤 낮았던 것 같다. 하루에 30~40마리도 더 보는 바퀴벌레와, 더러운 때와 먼지에 무심한 사람들...이사하려고 집을 찾아다니면 우울증이 올 지경

조깅 코스인 뱅크오브차이나 (중국은행) 건물 주변. 화려한 면은 홍콩의 극히 일부다.

그리고 사계절 - 홍콩에서 몇년 살아보니 사계절이 왜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홍콩에는 봄꽃도, 단풍도, 투명한 서리와 흰 눈도 없다. 나야 추운걸 싫어해 겨울이 없어도 좋다 생각했지만, 가을에도 가을바람만 있을 뿐 식물은 그대로 초록이다. 한국처럼 봄의 벚꽃, 개나리, 진달래, 매화, 가을 코스모스, 억새, 노랗고 빨간 단풍을 볼 수도 없다.

요즘엔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심약해졌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살기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홍콩은.


해외생활, 해외취업 하면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세계관을 넓히고, 성장하고, 인사이트와 영감을 주고받는  기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성장'을 가장 기대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한다고 언제나 성장하는 건 아니다.


격리 4일째인 지금은 한국이 좋지만, 장기적으로 있어야 할 '집'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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