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고

한국에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났고 홍콩 관련 포스트는 앞으로 약 10개 올린 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새로운 업무에 적응했고,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3년 만에 (조금은 달라진) 가족과 재결합하는 데 적응하는 시간도 걸렸다. 평일엔 일 끝나고 바로 강아지를 돌보다가 자는 일상이 반복됐다. 주말도 나름대로 바빴다. 마침 백신 휴가에 연이어 얻은 주말동안 내게 필요한 책, 동영상을 집중해 보며 간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책을 만났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영상. 세바시 동영상 


"생각해보니, 슬프지 않은 모든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었던 거예요."

"내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는게 행복이에요."


특별히 슬프지 않은 날이라면 행복한 날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 말에 공감했다. 서재가 이미 차고 넘쳐 이북을 살까 종이책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종이책을 사게 되었다. (제목만 봤으면 안 샀을것 같다. 세바시에 나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21년 12월은 내게 굉장히 힘든 한 달이었다. 울었던 날들만 열흘 이상이었던 것 같다. 3년만에 다시 같이 살게 된 아빠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자신의 여린 마음을 당당히 내보이지 못하고 가족 위해 봉사만 하시다가 수십년 동안 억눌린 감정이 왜곡되어 아주 이상한, 내가 평생 겪은 적 없는 태도를 보이셨다. 나는 몇 번이나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순간 실수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기에도 앞뒤와 파장까지 생각해야 하는 살얼음판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생활환경이 바뀐, 나만 온종일 기다리는 강아지를 훈육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툭하면 성 개 때문에 비관적인 심정으로 보낸 날들이 여럿이었다. 다행히 강아지의 행동은 12월에 많이 교정되었다.


15년지기 친구가 나는 네가 언제야 행복해질까...그런 생각을 늘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복해질 조건을 충분히 갖췄는데, 작은 충격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남들에겐 도리어 화를 내며 맞대응하거나, 상처를 안 받고 무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나는 당황하며 상처받고 운다고. 그 말을 며칠간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가끔 내 삶이 완벽까진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잘 충족됐고 크게 흠잡을 데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가까운 사람에게 비판이나 비난을 받으면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한 멘붕에 빠진다. 이 차이가 너무 커서, 조금만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크게 실의에 빠지는 것 같다.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과 완전히 헤어진 걸 알았을 때. 괜찮다고 믿었던 업무실력이 비판받을 때. 가족에게 예기치 못한 말과 태도를 받았을 때. 잘 되어가는 듯한 소개팅이 삐걱거릴 때. 이런 것들이 생존에 필수도 아닌데 왜 내 감정을 수시로 좌우하는 것일까. 생을 잇는 한 더욱 성숙하고 참되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데.


나의 삶은 삼풍 생존자 '산만언니'의 생에 비교도 안되게 평화로웠을 테다. 인생에 사고도 재난도, 기본적인 생존 문제도 겪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글을 깊게 읽었고, 남의 일에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는 예의를 지키자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됐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봉사활동도 빨리 하고 싶다.

다음은 발췌한 일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니 다들 하나같이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겠네요"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아니,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행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아프다. 세상에 아름다운 흉터는 없다. 올해 일흔을 넘긴 우리 이모는 어려서 친구들이 다들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자기 혼자 막내 외삼촌을 등에 업고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눈물 훔쳤던 이야기를 하면서 여태 운다. 지금까지 나한테 열 번도 더 이야기했는데도 말할 때마다 매번 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상처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어떤 슬픔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덧나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한다. ...(중략) 하지만 내게는 이 글을 통해 세상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따뜻했다고. 눈물 나게 불행한 시절도 있었지만, 가슴 벅차게 감사한 순간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살아만 있으라고. 그러다 보면 가끔 호사스러운 날들도 경험하게 될 거라고. (p.27-28)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너에게는 곧 엄청난 불행이 찾아올 거야. 네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불행이지. 피할 수 없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대신 부탁할 게 있어. 그 슬픔을 창고에 넣어두고 살면서 매일 감당할 수 있을 자신이 생길 때만 조금씩 따라 마셔. 걱정하지 마. 네 몫으로 정해진 그 불행은 어디 가지 않아. 그러니 절대로 한 번에 들이켜지마. ...(중략)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깊이 고민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p.55)


이렇듯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산다. 그러니 상대가 못났든 잘났든 따지지 말고 서로 존중하며 배려하고 살아야 한다. 한평생 넘어지지 않고 걷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라는 게 열심히 공부해도 도무지 오르지 않는 수학 성적처럼 온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는 법이다. 그런 이들에게 개인의 빈곤을 오로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몰고 가는 사회 분위기는 매정하기 짝이 없다. 운은 실력이 아니다. 또 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모른다. 함부로 타인의 삶을 속단하고 처지를 경멸해서는 안 된다. 사회 문화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인 이 시대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더 늦기 전에 '깍두기 정신', 그러니까 인정머리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p.131)


아픈 목소리를 힘겹게 내줘서 고맙고, 얄팍한 정치적 선동문구보다 이렇게 본질적인 위로를 건네는, 배려있고 겸손한 목소리들이 사회에 많아지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차디차가웠던 격리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