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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Oct 15. 2020

새벽 3시가 되면 리스테린을 하기 시작했다.

#파랑



언젠가부터 새벽 3시가 되면 가글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다. 바다가 그리워서였을까. 짙은 파랑이 담긴 투명색의 액체를 갈망했다. 시원해진 입안을 머금고 다시 이부자리에 눕곤 했다. 입안은 파랑색의 향기로 가득했다. 꿈속에선 청량한 에메랄드 바다를 거닐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욕실엔 파랑색의 물품들이 늘어났다. 폼클렌징인지 클렌징폼인지 모를 얼굴을 닦는 신세대의 비누를 사러 갔을 때였다. 파랑에 이끌려 제주 탄산수 클렌징폼을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룰루랄라. 클렌징폼의 끄트머리를 잡고 흔들며 집으로 돌아와 욕실에 화장실에 올려뒀다. 그러고 보니 비누도 파랑색 칫솔도 파랑색. 온통 파랑색이다.


샤워를 시작한다. 파랑색 비누를 집어 들어 손을 마구 비빈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또다시 비빈다. 나는 샴푸를 제일 먼저 한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따른다. 아차, 아쉽게도 샴푸는 파랑색이 아니다. 파랑색의 클렌징폼으로 얼굴을 닦는다. 파랑색은 아니지만 하늘색에 가까운 바디워시를 집어 들어 분홍색 샤워타월에 뿌린다. 얼굴 아래부터 발 끝까지 거품을 묻힌다. 투명한 파랑색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몸을 헹군다. 작은 창문의 방충망 사이로 파랑색 바람이 들어와 몸을 감싼다. 싸늘하다. 파랑이 몸으로 날아와 꼳힌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나보다.


태평양이 보이는 절벽에 올라선다. 에메랄드와 코발트블루의 그라데이션이 적절한 바다가 보인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지금은 해가 지는 시간이다. 적절한 구름이 심심할 것 같은 하늘을 채운다.


언젠가부터 새벽 3시가 되면 가글을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바다였다.



그 많은 리스테린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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