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과 단둘이 마신 첫술

청하

by 여유수집가

팀장님과 신입사원이 고급 일식집에 마주 앉았다. 점심 식사가 아닌 저녁 식사로 단둘이 마주 앉기는 처음이었다. 같은 식사임에도 점심과 저녁을 구분하는 이유는 저녁 식사에는 ‘술’이 등장할 여지가 있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은 평소 즐겨 드시는 소주가 아닌 청하를 주문했다.


“청하 마셔봤어?”


쓴맛 없이 깔끔해서 회랑은 소주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팀장님의 평가에는 주저함이 실려있었다. 맛에 대한 주저함이 아니라, 뒤에 해야 할 이야기에 대한 주저함이.


1인당 7만 원짜리 저녁 식사를 예약한다고 자랑하는 나를 보며 선배들은 걱정했다. 분명 뭔가가 있다며. 내가 생각하는 핑크빛 격려가 아닐 거라고. 7만 원이면 심각한 사안일 거라며 사무실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노라 했다. 회를 몇 점 먹었을까. 청하는 몇 잔을 넘겼을까. 선배들의 예상은 너무 빠르게 적중했다.


“민주임, 하반기 고생 많았어. 근데 팀 막내고, 아직 기회도 많고 하니 이번에는 고과를 ‘C’ 줄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C’라면 A, B 상위 고과 다음에 C+ 평고과 다음인 하위 고과다. 연봉이 삭감되는 고과. 부서는 수도권 1등이었지만, 부서에서 내 실적은 매번 하위권이었으니 당연했다. 누군가 하위 고과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내가 돼야 하는 것이 맞았다. 첫 고과를 받는 주임. 하위 고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리 없었던 나는 ‘네!’라고 답한 뒤 청하를 가볍게 넘겼다.


고급 일식집을 나서 단골 호프집 문을 열었다. 선배들의 시선은 모두 내 입에 모였고, 내 말이 끝나자 선배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박.


“야, 니가 맡은 데는 절대 실적이 나오지 않는 데야. 그걸 어필했어야지.”

“너 CS 실적은 중상위권 아니야?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는데 ‘C’는 아니지.”

“전국 아니다. 수도권 아니지. 너 부서에서도 꼴등은 아니잖아.”


다음 날 아침, 선배들과 팀장님은 나를 빼놓고 회의실을 오갔다. 회의실을 나서는 무거운 침묵 위로 열기가 피었고, 그 열기는 나를 향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파티션 너머로 고개만 들었다 내렸다 할 뿐이었다. 퇴근 직전, 팀장님께서 나를 회의실로 부르셨다.


“민주임, 인사랑 잘 협의해서 ‘C’ 고과 대신 ‘C+’를 주기로 했어. 노 대리한테 고맙다고 하고.”


하룻밤 사이에 ‘C’가 ‘C+’가 되다니! 노 선배한테는 왜? 의혹, 기쁨, 당혹, 안도, 의아. 여러 감정이 요동쳤다. 회의실을 나서니 모든 선배의 눈이 내게 모였다. 당혹이 제일 앞줄에 서 있었지만 기쁨이 새치기해야 했다. 내가 싱긋 웃자 선배들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됐다 됐어! 노 대리가 A 고과 반납한다고 했거든. 노 대리는 B, 너는 C+로 조정해 달라고.”


노 선배는 전국 5등 안에 드는 Top 중의 Top이었다. 그런데 B를 받다니. 그것도 나를 위해! 미안했고 의아했다. 매번 Top인 선배라 매번 A 고과를 받아왔기에 B 고과 한 번은 괜찮다고 했다. 사실 이때는 선배의 희생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과 부자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선배의 희생은 지나고 보니 대단한 것이었다. 돈 버는 수단인 회사에서 연봉과 직결된 고과를 낮춘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때 내가 하위 고과를 받았더라면 나는 몇 년 뒤 대리 승진에서 누락했을 것이고, ‘일 못 하는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혔으니 직무 변경의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해 준 신입사원 합숙 교육의 지도 선배로도 선발되지 못했을 것이다.


희생의 의미를 전부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다시 또 민폐 후배가 될 수 없었던 나는 이 직무가 내게 맡지 않는다는 탓을 벗어나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실적표를 보면 등수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고 파일을 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적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어떤 지표에 취약한지, 어떤 지표를 높일 수 있을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 일의 결과만 걱정하던 내가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고, 결국 CS 지표를 전국 3위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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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희생이 아니라 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평고과를 쟁취하던 날, 나는 청하를 주문했다. 오늘만큼은 내가 사겠노라 외쳤다. 비록 1인당 7만 원짜리 밥을 사지는 못하지만, 늘 마시는 소주보다 비싼 술은 살 수 있다며. 물론 선배들은 내게 카드 꺼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그대로 알아채 내 덕분에 깔끔하고 부드럽게 마신다며 앞으로도 계속 맑은 날이 가득할 거라고 나를 한껏 키워줬다.


무거운 말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마셨던 팀장님과의 청하는 맑은 날을 바라는 선배들과의 술자리로 깨끗하게 넘어갔다. 냉각 여과장치를 이용해 술의 쓴맛과 알코올 냄새를 없앴다는 청하. 내게는 선배들의 애정이 냉각 여과장치가 되어 회사생활의 쓴맛을 없애줬다. 물론 마셔도 마셔도 맑기만 한 머리는 안타까웠지만.




사진은 모두 롯데칠성음료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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