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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Nov 01. 2023

CEO 글을 쓴 이력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출간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언제부터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어?” 꾸준히 쓰고 있으니 ‘잘’ 쓴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걸까. 내가 글을 잘 쓴다고 느낀 건 언제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 우선 질문에 집중했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노라 결심했으니, 타인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니까.    

  

처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벗어나 시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상 받았을 때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가 나를 인정했던 때는 언제일까를 떠올렸다. 나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니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노라 결심했을 테니까.     

 

회사원 시절 CEO 블로그 운영이 업무였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CEO께서 참석하신 회의의 녹음 파일을 듣고 CEO 말씀을 글로 바꾸는 것만 했다. 어렵지 않았다. 녹취록을 써서 문장을 매끄럽게 손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지시가 있었다. CEO 블로그에 ‘소프트한 글’을 올리라는. 무섭고 어려운 분이라는 CEO의 이미지를 개선해 보자는 전략이었다. 지시는 덩그러니 ‘소프트한 글’이라는 말뿐. 어떤 소재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내 몫이었다. “CEO처럼 생각을 제일 많이 하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쓰면 어렵지 않지.” 상무님의 말을 믿고 ‘나는 CEO다.’를 되뇌었다.      


CEO가 아침마다 하는 일은 신문 보기. 나도 신문을 읽었다. 모든 기사를 다 읽을 수는 없으니 칼럼 위주로 살폈다. 그러다 ‘한강종이배경주대회’를 소재로 한 칼럼을 발견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 칼럼의 주제가 ‘혁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대회에서 ‘혁신’을 발견했다. CEO께서 열렬히 외치는 혁신을 말이다.      


부장님, 상무님, CEO까지 모두 OK를 받은 뒤 신문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올렸다. 직원들 반응은 뜨거웠다. 관련 현안을 담당하는 직원이나 회의에 참석했던 직원들의 의무적인 댓글이 아니라 자발적인 댓글이 올라왔다. 긍정적인 반응을 타고 ‘소프트한 글’을 계속 쓰게 됐다.      


남의 생각을 남의 문체로 남이 쓴 것처럼 쓰는 일. 이 일을 거듭하다 보니 내 글에 자신감이 생겼다. 남의 글도 쓰는 마당에 내 생각을 내 문체로 쓰는 일은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게다가 CEO 블로그 글을 유심히 읽었던 직원의 추천으로 CEO 조회방송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스스로의 인정에 외부의 인정까지 더해졌다.


공저로 낸 첫 책, ‘퇴근할까 퇴사할까’를 출간할 당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CEO 조회방송 원고를 쓰고 있었고, 사내 방송에서 ‘수요기획’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원고를 썼다. 남의 이야기를 계속 쓰다 보니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이 넘실거렸다. 회사가 시킨 이야기를 쓰느라 저당 잡힌 시간을 내 마음이 시키는 이야기를 쓰는데 쓰고 싶었다. 스스로의 인정과 외부의 인정까지 있으니 용기를 냈다. 작가로의 전직과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는 바람을 안고 퇴사했다.      


2023년 10월 31일, 내 마음이 시킨 내 이야기를 담은 나만의 책이 나왔다. 서점에 책을 입고하는 과정에서 CEO 글을 쓴 내 이력이 관심을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남의 글을 쓰며 내 글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처럼 서점 담당자도 남의 생각을 남의 문장으로 써본 사람이니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문장으로는 더 잘 표현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만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를 바라며 썼다.

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도록 많은 사람의 마음에 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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