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3화.
오늘도 바쁜 하루가 끝났다.
입사면접, 결혼식, 장례식, 상견례, 연주회, 연극 공연, 학회 발표, 사진촬영....
각양각색의 이유 때문에 정장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몸에 잘 맞는 정장을 차려입고 당당해진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또한 그만큼의 사람들이 찾아와 대여했던 정장을 돌려주고 간다.
모두 돌아가고 나면 하루를 결산하는데 열린옷장의 결산방법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정장대여점이라면 오늘 몇 명의 대여자가 왔는지, 오늘 얼마의 대여비가 들어왔는지를 정산하겠지만, 우리는 ‘오늘의 수익’이 아니라, ‘오늘의 편지’를 결산한다.
어떤 기증자가 옷에 담긴 이야기를 보내왔는지, 어떤 대여자가 잘 입었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는지, 한장 한장 읽고 또 읽는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손편지들이 열린옷장의 진짜 자산이기 때문이다.
옷을 대여했던 사람들이 기증자에게 보내온 감사편지를 보면, 그 내용도 참 다양하다.
"갑자기 면접통보를 받았는데 한 벌 뿐인 정장이 작아져있어 멘붕에 빠졌었습니다. 다행히 기증자님의 정장이 저한테 맞춤처럼 잘 맞아서 정말 기분 좋게 면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취업을 하게 되면 저도 누군가를 위해 꼭 기증하고 싶습니다."
"사촌형의 결혼식에 입으려고 옷을 빌렸습니다. 친척들에게 근사해보인다는 칭찬도 듣고 깔끔해보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정장이 여러벌 생기면 꼭 기증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어린 신혼부부에요.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벌써 32주차! 만삭사진을 찍으려했는데 번듯한 정장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기증자님 덕분에 예쁜 사진, 멋진 추억 만들었습니다."
"생애 첫 세례식, 기증해주신 옷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격식을 차리는 자리라 입고갈 옷이 없어 당황했었는데 이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세례식을 잘 했습니다."
"단편드라마에서 실장 연기를 하게 되어 정장을 빌렸는데 너무 잘 입었습니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갑작스레 친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상을 가야하는데 아직 학생이라 정장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덕분에 친구 아버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렸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기증정장과 함께 도착하는 기증자들의 편지에도 수 만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가 첫 출근하던 날 입었던 옷입니다. 설렘과 기분좋은 에너지 가득 담아 보냅니다. 이 옷 입고 기분 좋은 일들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꼭 꿈을 이루시길 바라며...화이팅!!"
"이번에 보내드리는 정장은 제가 인턴 하던 시절에 입던 건데, 막상 양복을 안 입는 직장에 입사했어요. 또 직장생활 3년 만에 체형이 변해서 전 이젠 입을 수도 없게 되었네요. 그래도 그렇게 운 없는 정장은 아닌 듯합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직장생활 12년차입니다. 저도 백 번이 넘게 서류를 내고 떨어졌었답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도전하세요!"
“저는 고등학생이에요. TV에서 취직 때문에 힘든 형, 누나들을 보고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힘내시라고 부모님 옷장에 있는 정장을 기증합니다. 형, 누나들 화이팅!”
옷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는 편지도 있고, 청년구직자를 응원하는 편지도 있다. 면접준비에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여러 장에 걸쳐 알려주시는 사회선배님도 있다.
이 편지들을 보면 혹자는 말한다. "감동적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소중해?"
우리가 이 편지들이 돈보다 더 소중하다는 이유는 뭘까? 이것이 바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열린옷장 만의 차별점이기 때문이다.
열린옷장보다 더 저렴하게 정장을 대여하는 곳은 앞으로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더 품질 좋은 정장을 대여하는 곳도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응원과 감사의 이야기가 쌓인 옷은 오직 열린옷장에서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합격 이야기가 많이 쌓이면 ‘합격 정장’이 되고...
행복한 이야기가 많이 쌓이면 ‘행복 정장’이 되고...
슬픔을 함께 한 이야기가 많이 쌓이면 ‘위로 정장’이 되고...
대부분의 의류는 시즌이 바뀌고 유행이 바뀌면 가치가 뚝 떨어지지만, 열린옷장의 옷은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쌓일수록 옷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리라 믿는다.
이것이 바로,
정장이 이야기를 입으면
아이언맨의 수트보다 강해지는 이유이다.
Tip for your start.
스타트업은 스토리다!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강력한 스토리보다 큰 자산은 없다. 그런데 스토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활동의 내용도 아이디어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3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