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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큰철 Sep 22. 2019

냉정한 중식주의자

점심메뉴를 고르는 건 배고픔이 아닌 냉정이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요

 같은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는 동료의 물음에 머릿속 대뇌피질의 뉴런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오늘은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만족도가 높은 점심은 남은 반나절의 삶의 질을 30% 정도 올려주는 느낌이다. 100%의 삶의 질이 상승한 상태로 1년을 지냈을 때의 지수를 1 QALY라고 한다. 만족스러운 하루의 점심은 1 QALY의 하루치인  1/365 QALY(1년)에 반나절의 시간 1/2, 30%의 만족도 상승 0.3을 계산한 0.0004 QALY(0.000410959의 반올림)가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365일 내내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으면 얻을 수 있는 0.15 QALY는 1년간 소득이 두배로 늘었을 때의 만족감 상승폭보다 높다.

소득이 얼마건 두배로 늘 때의 만족감 증가는 일정하다

따라서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연봉을 높이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매일 맛있는 점심을 먹는데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맛있는 점심을 위한 고민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점심의 조건

만족스러운 점심의 조건은 무엇일까. 일단 맛있어야 하고 적당한 가격에 불쾌한 경험이 없어야 하며 음식의 여운을 즐길 시간이 충분하게끔 가까웠으면 좋겠다. 이런 집이 꼭 우리 동네에는 없더라... 그래도 동네마다 한 개쯤은 있다고 가정해 보자. 365일 주구장창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0.15 QALY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어제 가고 오늘 가면 맛과 서비스는 변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만족도는 현격히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맛집을 방문한 후 다시 같은 만족도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다른 식당을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최소 1주 또는 넉넉하게 2주의 텀을 둬야 만족도가 올라온다고 가정하면 10곳 이상의 대안 식당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계효용 체감을 피하려고 만족도가 낮은 식당을 전전하는 것이 더 비효율적인 행동이 아니냐 라고 묻는 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365일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는 것은 정녕 불가능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나의 대안책을 들어보시라.


공유하기

이론상 10곳 이상의 맛집을 알고 있어서 맛집만 다니며 한계효용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최선일 것이다. 그런 동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있다면 keunchol_toon@naver.com으로 메일 좀 우리는 나머지 식당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장깨기 하듯이 이곳저곳 무작정 가다가는 한 놈만 걸리길 바라는 음험한 식당에서 큰 내상을 입고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 점심!! 피 같은 돈!!

그러니 동료들과 맛집을 공유하자.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면 더욱 좋다. 다만 주의할 점은 공유할 동료가 SNS를 활발히 하고 있다면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어느 순간 나만의 맛집이 온 국민의 맛집이 되어 버릴 수가 있으니...


양보하기

혼자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파티를 꾸려 점심식사를 하곤 한다.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상사의 뒷담화, 주변의 연애 실패담들은 우리의 자존감을 상승시켜 준다. 이들의 취향은 각자 달라서 가끔씩 메뉴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땐 각자 찢어져서 원하는 식당을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랬다가 그들이 나누는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럴 땐 쿨하게 양보하도록 하자. 대신 자신이 양보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고 다음번 중식의 메뉴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2보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나 할까. 주의할 점은 이 방법을 써서 생긴 프레임은 오래가지 않으니 이틀 이내에 메뉴 선택권을 써야 한다. 3일이 지나면 오히려 뒤끝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본능에 충실하기

비 오는 날에 짬뽕과 파전이 당기듯이 어느 날은 본능이 미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럴 땐 본능을 쫒아 식당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운이 좋다면 맛집 이상의 만족도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끔 급하게 당기는 메뉴에 일일이 대응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갈구하는 0.15 QALY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 식당과 메뉴 DB를 꿰고 있어야 한다. 자 이제 다시 자신감이 차오르지 않는가.


 지금까지 효율적 중식주의로 내 삶의 만족도를 키우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나는 최근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었는데, 남들을 도울 때 이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일지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방식으로 내 삶의 효율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점심메뉴를 고르는 방식이 일정 부분 닮아 신기했다. 여러분도 삶을 돌아보면 내 경우처럼 각자 효율을 세심히 따지는 분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찾아보고 이름 지어보자.


"나는 냉정한 OO주의자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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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1) 책<냉정한 이타주의자>

                     3)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의 TV 공익광고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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