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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0. 2022

아침 라디오 시사PD로 2년

<김현정의 뉴스쇼> 2020년 3월 22일 ~ 2022년 3월 19일

2020년 3월 22일에 <김현정의 뉴스쇼> 첫 근무를 시작했다. 내일부터 새로운 보직을 맡았으니 딱 2년 일한 셈이다. 그런데 근무 첫 주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지금 모습’이 꽤 재밌다.


2020년 3월 25일,
박지현과 이준석 같은 날 출연


근무 첫날인 22일 일요일은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 다음날인 23일 월요일은 새벽 6시부터 밤 12시, 그 다음 날인 24일 화요일은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해 8시에 퇴근했다. 원래 힘든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이 주에 유난히 늦게까지 아이템 변경과 섭외, 원고에 힘을 썼던 이유는 바로 n번방 이슈 때문이었다.



내가 첫 근무일이었던 일요일에 섭외한 인물은 바로 지금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인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 씨였다. 당시에는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추적단 불꽃의 한 분’이었지만, 2년이 흐른 지금 그는 민주당의 지도부가 되었다.



섭외는 일요일에 했지만 인터뷰는 이런저런 이유로 25일 수요일에 방송됐는데 바로 그날 방송에는 2020년 총선에 출마한 이준석 당시 미래통합 노원병 후보도 출연했다. 전혀 다른 이유로 같은 날 <김현정의 뉴스쇼>에 목소리를 실어보낸 두 사람은 지금 각각 원내 1당과 2당의 지도부다.



0.73% 차이로 승부가 갈린 이번 대선, 막판 민주당의 추격전에 박지현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20대 여성표 결집에 부정적이었던 이준석 대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사실 이대남들이 그나마 이 정도라도 결집했기 때문에 윤석열 후보가 0.73%라도 이겼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민주당에서도 이재명이니까 이 정도 했다는 해석과 이재명이어서 여기까지 밖에 못했다는 해석, 어느 쪽이나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결국 어떤 해석에 힘을 실어서 앞으로 밀고나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각 당에서 두 사람이 각각 상징하는 바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2년 뒤 총선과 5년 뒤 다음 대선의 성적표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겠다.


범죄심리학자 → 정치인?
이수정 교수

이수정 교수는 n번방 이슈로 그 주에만 두 번 출연했다, 그 뒤로도 주로 성범죄나 아동학대 범죄와 관련된 인터뷰를 많이 했고, 국민의힘 선대위에 합류한 뒤로는 정치 이슈에 대한 인터뷰도 자주 했다. 이수정 교수가 국민의힘과 본격적으로 ‘정치적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2020년 10월이었다. 2021년 4.7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에 합류한 것이다. 그 전에도 성폭력 TF에 들어가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경선준비위원회는 좀더 ‘프로 정치인’으로 가는 길로 비쳤다. 다만 그때만 해도 이수정 교수는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본격적인 대선국면을 맞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에 합류했다가 선대위가 선대본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정책자문으로 역할이 조정됐다. 짧게나마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시절 인터뷰를 보면, 프로 정치인들에 뒤지지 않는 정쟁의 화력을 선보였는데 과연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일각에선 이수정 교수가 국민의힘에 합류한 이유로 ‘검찰 가족’이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난 그보다는 애초에 범죄를 다루는 시각이 엄벌주의에 가깝기 때문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게 검찰 가족이어서라고 하면 또 상관관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또 본인이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명분은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성범죄인데 이번 안희정 부친상 조문 논란을 보면 딱히 지금의 민주당이 이수정 교수에게 손가락질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 전문가들을 빨아들이는 구조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지만, 모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그럼 정치꾼들끼리만 정치하게 둘 거냐”는 시각도 타당하다. 중요한 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 아닐까 싶다. 아직 이수정 교수가 윤석열 정부에서 무슨 역할을 맡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뭐든 맡게 된다면, 부디 사회의 어둠을 조금이나마 걷어내는 쪽으로 쓰임받으시길.


담당 코너의 기억


라디오 재판정


첫 주부터 맡았던 건 지금은 사라진 <라디오 재판정> 2015년에 생겼으니 <뉴스닥>과 함께 뉴스쇼 최장수 코너 중 하나였다. 2020년 10월 20일에 마지막 방송을 했으니 7개월 정도 한 셈이다. <재판정>은 언시생 시절 가장 애청했던 코너인데, 특정 사회이슈에 대해 대립하는 양쪽의 논리를 가장 확실하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만드는 입장이 되니 상당히 고역이었던 게, 출연하는 두 변호사의 입장이 서로 다른 사안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뜨거운 이슈를 다루자면 보통 답은 정해져있고, 서로 입장이 다른 이슈를 다루자니 대중적인 관심도가 떨어지고, 게다가 정말 ‘법적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이슈도 있고.. 아이템 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정해지고 나면 법조문 들여다보고 판결문 구하고 온갖 쇼를 다했던 코너였다. 소재고갈로 폐지되긴 했지만 그 뒤로 ‘재판정이 있었으면 거기서 다뤘을텐데’하는 아이템들이 눈에 보일 때면 아쉽기도 했다.


아참 두 패널의 토론 뒤에는 청취자들이 보낸 문자를 집계해서 뉴스쇼 청취자들만의 판결을 발표하곤 했는데,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오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조작은 없었다. ^^;;




뉴스닥


<라디오 재판정>이 폐지된 뒤엔 <뉴스닥>을 맡았다. 국회의원들로는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강훈식 의원,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과 성일종 의원이 고정 패널이었고, 원외의 정치인들로는 민주당 현근택 전 부대변인과 이준석 대표, 그리고 이준석 대표가 당대표가 된 후로는 김근식 전 비전전략실장이 고정 패널이었다. 워낙 방송꾼(?)들이셔서 퍼포먼스가 걱정된 적은 한번도 없는데.... 그냥 정치코너를 계속 하다보면 사람이 정치병자가 될 수밖에 없다.


2021년 4월부터는 <뉴스닥>이 월요일로 왔지만 그 전까지는 월요일에 <7선 클라스>라는 여야 중진 의원들의 토론 코너도 있었는데, 이것도 격주로 맡아서 하다보니 사고회로가 온통 정치... 대립... vs.... 이렇게 돌아간다. 2018년 6월부터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만 4년이 조금 안되는데.. 그 사이 정치권은 물론 정치 고관여층 시민들의 진영대립은 계속 심해졌다. 과연 윤석열 정부와 21대 하반기 국회는 이 갈등 지수를 줄일 수 있을까?



윤태곤의 판


정치병자라서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 고관여층 전용(?) 코너를 맡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코너는 담당자가 뭘 잘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냥 윤태곤 실장님 믿고 가는 건데 어쨌든 수요일 방송을 앞두고 월요일 저녁부터 이번주엔 무슨 주제를 다루면 좋을까 고민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침 라디오의 모든 코너를 통틀어서, 정치판 돌아가는 상황을 가장 좋은 뷰에서 조망할 수 있는 코너다.




계간 박노자


코너라기보다는 잊을 만할 때쯤 한번씩 했던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박노자 교수와의 인터뷰. 뉴스쇼에서 맛볼 수 있는 빨간 맛... 아침 라디오는 한국사회의 주류담론 중심으로 아이템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보니 튀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놓치면 안되는,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고비마다 전해준 코너다. 고정코너라기엔 애매해서 언제부턴가 사라졌지만 앞으로는 박노자 교수의 이야기도 좀더 자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전쟁 치르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2년의 기록을 훑어보니 나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2018년에 시사자키로 시작해 지난주 뉴스쇼까지, 4년 조금 안 되는 기간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안 한국 사회의 뉴스면을 장식하는 이야기들은 분명히 더 나빠졌다. 뉴스의 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하지만, 글쎄.. 이렇게까지 나빠야 할까? 보다 듣기 좋은 뉴스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건강검진을 받을 시기가 되어 지난 몇 년 사이의 기록을 훑어봤다. 뉴스쇼를 시작하고 나서 첫 해에는 2kg, 두 번째 해에는 6kg이 더 쪘다. 이건 사실 코로나 때문에 그전까지 꾸준히 다니던 운동을 끊어서...(+그만큼 스트레스를 홈술로 풀어서)겠지만, 지나친 장시간 노동이 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얼마 전부터 운동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나마 1kg 정도 뺐다. 코로나의 정점이 지나가면 수영이든 크로스핏이든 빡세게 달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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