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stories @ TSR, Russia 2
늦은 밤 기차에 올라 고압적인 자세의 젊은 차장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곯아떨어진 지 얼마쯤 되었을까. 부산한 소리가 가득한 객차 안에서 눈을 뜹니다. 만원 객차라 일행과 떨어져 예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고 탔지만 지난 여행에서의 여유로운 기차여행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빼꼼히 침대 밖으로 내민 귀여운 발 하나와 눈이 마주친 뒤
기묘한 풍경에 정신을 차려보니 객차 안은 아이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바이칼에서 사 온 생수 한 잔 원샷하고 주위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합니다.
아침도 먹고 친구들과 잘 잤냐는 이야기도 나누던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불호령에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일단 휴식시간을 갖습니다. 밀린 숙제도 하고 창가 풍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호사도 누리면서 말이죠.
친구의 침대 근처에선 새로운 손님을 만납니다. 토끼를 데리고 탄 손님이 있었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는 총각. 상실감에 제법 보드카를 마신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 동생들에게 선물하겠다며 토끼 한 마리를 들고 탔습니다. 차장은 못마땅했지만 주변 손님들이 봐달라고 함께 통사정 한 덕에 조용히 데리고 가겠다는 확답으로 넘어갔더군요. 물론, 친구의 러시아어 이해 범위 안에서의 해석입니다만:)
아이들과 여러 사연 있는 손님들이 모여 앉아 모두가 밤새 밀린 수다를 떨고 있는 플라츠카르타 (3등칸,6인실)의 아침. 아이들은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질려있던 차, 우리를 발견합니다. 놀릴 준비가 다 된 것일까요. 러시아어를 조금 하는 외국인을 만났으니 신날 법도 하죠.
"아저씨들 부리아트 사람?"
"아니"
"그럼 중국 사람?"
"아니"
"그럼 어디?"
"한국 사람. 한국 어디있는지 알아?"
"음... 아뇨 ㅋㅋㅋ 근데 러시아말 왜 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니까"
등등의 이야기로 시작한 아무말 대잔치 :)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이들이 내릴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이스하키 캠프를 다녀오던 친구 들었더군요. 플랫폼에서 짧게나마 이별했던 가족들을 만나 (우릴 놀리던 때와 다르게) 다들 천사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을 향하던 총각도 이 역에서 안녕. 제법 오랫동안 정차한 역이라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또 다른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하바롭스크로 향합니다.
그전에 일단 컵라면으로 지친 위장을 달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겠지만요 :)
언제나 여행에 큰 도움이 된 김홍준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연재는 태국국유철도 SRT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Location : TSR, Russia
Date : Mar,2014
Format : Digital (Color)
Camera : Nikon Df
Lens: af Nikkor 35mm f/2D, af Nikkor 16mm f/2.8D Fisheye
Editing : Adobe Lightroom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