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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Aug 21. 2017

도쿄에서 치즈케익과 개를 좋아하던 A씨가 죽었다

일본 장애인거주시설 집단 살인사건 1년

퍼포먼스로서의 살인


2016년 7월26일 새벽. 일본 도쿄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사가미하라(相模原)시에 위치한 장애인복지시설 츠쿠이야마유리엔에 26살의 우에마츠 사토시가 침입했다. 그는 사건이 있기 한달 전까지 츠쿠이야마유리엔의 직원으로 근무했기에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한밤 중 시설 관리 직원들도 잠을 자고 있었다. 사토시는 먼저 이들을 급습해 손발을 묶고, 칼 세 개를 가지고 시설 전체를 돌면서 약 40명을 칼로 상해했다. 그 가운데 25명이 중상해를 입었고 19명이 그 자리에서 죽거나 병원치료를 받다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들이었고, 절대 다수는 중증 장애인들이었다.


사토시는 범행 후 "뷰티풀 재팬"이라는 트윗을 올리고 스스로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가 올린 트윗과 함께 경찰차량에 탑승한 그의 환한 미소는 섬뜩했다. 한편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지인들에게 자신이 장애인들을 죽이겠다고 말했고, 도쿄 도의원에게는 470명을 죽이겠다는 편지도 보냈다. 

 

범행 후 사토시는 트위터에 '뷰티풀 재팬'이라고 썼다. 그는 잘 차려입었고, 웃었다.


이 사건이 있기 두 달여 전, 한국 서울의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화장실에 숨어있던 남성의 칼에 수십 군데를 찔려 죽었다. 범인은 '여자들에게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두 사건은 특정한 사회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의 피해자가 됐다는 점에서 혐오범죄라는 유사성을 갖는다. 한편 범죄 이후 그 혐오범죄를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살인'으로 해석하려는 당국의 시도도 닮았다. 일본 정부는 사토시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한국도 마찬가지였다(물론 범인들은 정신의학적으로 질병을 가졌을 수 있고, 그 질병이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설령 질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그렇게' 전개되었는지라는 문제다. 이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그간 다른 곳에서도 논의되어 왔으므로 이곳에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두 사건은 이처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둘 모두 혐오범죄의 성격을 갖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과 달리 우에마츠 사토시는 단지 장애인을 혐오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장애인을 죽이면서 자신이 장애인을 구원한다고 생각했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는 자신이 (형사처벌과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구원했다는 그 사실을 전 세계에 공개하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그는 단지 장애인이 혐오스러워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구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전 세계에 '공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장애인시설들이 주로 그렇듯, 츠쿠이야마유리엔은 도쿄 중심부에서 1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사가미코역에 도착한 후, 산 속에 난 길로 20분 가량 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실제로 장애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퍼포먼스에 함께 출연하는 인기 있는 배우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장애인복지시설에 방문해 장애인을 목욕하는 장면을 '공연'한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주위를 둘러싸고, 알몸의 장애인이 욕실에 누워있다. 안쓰러운 표정, 선한 눈빛,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로 분장한 정치인의 이타성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덜 노골적인 공연은 사방에 널려있다.  유명한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휠체어 옆에 서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고교시절 나와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동기는, 기숙사에서 학교로 이동할 때 어쩐지 자신이 내 휠체어를 밀어주겠다고 말했다. 주로 가까운 친구들과 다니던 나는 어느 날부터 그 친구와 며칠을 함께 했다. 나는 시간이 흘러 그가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느덧 나는 무대 위에 섰던 셈이다. 


츠쿠이야마유리원으로 가는 버스는 이곳에서 내린다.


기호화된 삶


장애인을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무대 위에 세우는 공연들은 각각 스케일과 의도는 천차만별이지만,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공연에서 장애인은 철저히 익명화되는 반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수행하는 사람의 존재는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특정한 목표에 맞춰 알려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가미하라의 비극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는 우에마츠 사토시의 이름과 얼굴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애인들을 한 명 한 명 칼로 찔렀는지도 알려졌다. 그 행위들은 도덕적 지탄을 받고 법의 처벌을 받겠지만 그런 것은 사토시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한 시대의 질서에 반하는 신념을 수행하는 '무대' 위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츠쿠이야마유리엔에서 죽어간 피해자인 장애인들은 철저히 익명으로 남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넘은 지금도 피해자들의 삶이 어땠는지, 그들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을 꿈꾸었고, 욕망했고, 싫어했고, 감탄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도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경찰은 그 이유가 피해자 가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츠쿠이야마류이원은 폐쇄되었고, 거주하던 장애인들은 다른 세 곳의 시설로 전원되었다.  


강남역 살인은 여성에 대한 혐오가 기원이 되었고, 피해자는 끔찍하게 죽었다.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해 여성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꿈꿨는지를 알고 그를 기억한다. 가해자에 대해서도 상세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들은 그날 죽어갔던 구체적인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를 특히 기억한다. 세월호 사건의 비극을 기억하고 추모할 때에도 우리는 300명의 피해자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존재, 즉 안산시에 살며 단원고등학고 2학년 1반에 재학했던, 강아지 깜비를 사랑하고 유치원선생님이 꿈이었던 허다윤 학생을 기억하고 그를 향해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츠쿠이야마유리엔의 장애인들은 일본의 한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그저 "기호화"되었다. 이들은 죽을 때에도 '장애인'이라는 추상적 속성을 표시하는 그 기호를 이유로 죽었으며, 죽은 후에도 이들은 기호로만 남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츠쿠이야마유리엔은 폐쇄되었지만 이를 운영했던 법인은 다른 곳에 "더 안전한" 시설을 짓고자 준비 중이라고 한다. 도쿄도 가나가와 현 역시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안전한" 곳에서 익명화된 기호로 살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더 안전한' 곳을 만드는 일이었다. 일본의 장애인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시설을 해체하고, 장애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개별적인 인격으로서 살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도쿄도 세타가야구 시모기타자와시 23번지에 살며 영화를 좋아하고 일요일마다 연극을 보고 애완견을 사랑하며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던, 구체적인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A씨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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